• '독자파 판정승'이라고? 천만에…
        2011년 03월 02일 1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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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파의 판정승’이라고? 아니다. 통합파의 완패다. 문제는 통합파가 왜 자신들이 완패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의 초반 ‘선거제도 개편’ 수정동의안이 통과되었을 때 이미 판세는 결정되었다.

    선거제도 개편 수정동의안 통과의 의미

    수정동의안의 핵심 내용은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 아래에서 제3당인 진보정당의 제도적 존립 근거가 보장될 수 없으니 결선투표제-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당직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참석률 때문에 무려 두 시간 동안 요추염좌에도 불구하고 서 있어야 했던 참관자 중에 하나였던 나는 이 수정안에 반대 토론하는 통합파 대의원을 보지도 못했다.

    이 안은 78명 출석에 58명이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독자파가 전국위원회 초반에 기선을 완전히 제압했고, 제안자들이 주장하듯이 ‘독자파 대 통합파의 대립 구도’를 허구로 만들어주었다. 그 뒤 전국위원회 의제를 누가 주도할 것인지는 이미 그때 결판났다.

    하긴 누가 이 제안 내용에 반대할 수 있었을까? 몇몇 미심쩍은 통합파만이 이 안에 반대 표결했지만, 이 안이야말로 ‘트로이의 목마’이고, 독자파 전략의 승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몇몇 당원들이 이 수정동의안이 진보신당의 힘으론 어림도 없는 것으로 비현실적인 몽상에 불과하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이 수정동의안의 진정한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이 안은 보수파 내부의 ‘개헌 논의’와 비견할 만한 것이다. 이 나라 헌법에 문제가 많지만, MB정부의 실패가 개헌 부재에서 온 것이 아니듯이, 선거제도에 문제가 많지만 진보파의 실패가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또한 선거제도를 진보파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선 진보파가 권력을 쥐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노무현의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노무현 정부의 선거제도 개편이 실패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다.

    룰라도 못했던 일

    정치개혁은 제안자의 정치력 수준을 절대로 상회할 수 없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정치력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편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모든 정치인들의 반대를 제어할 만큼의 압도적인 국민 지지를 구축할 수 있는가 여부다. 요컨대 선거제도 개편은 한국 상황에서는 사회경제적 개혁의 성공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게다가 선거제도 개편은 통치에 성공을 거두어도 추진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룰라의 경험이 잘 보여준다. 87%라는 현대 세계정치사에 전무후무할 국민 지지를 받았던, ‘세상에서 가장 인기 많은 대통령’ 룰라조차도 재임 8년 내내 브라질 선거제도 개편 의제를 만지작 거렸지만 결국 포기해야 했다.

    물론 브라질의 선거제도 문제는 한국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엔 제3당의 안정적인 존립을 위협하는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가 문제라면 브라질의 경우엔 30여개의 정당이 난립하게 만드는 결선투표제-완전비례대표제가 문제이지만, 룰라 정부가 선거제도 개편을 포기한 것은 그 의제가 정치권만 뜨겁게 하고, 정치적 대립을 부추기지만,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안자들이 모를까? 아닐 것이다. 이들도 자기 제안의 비현실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즉 이같은 비현실적인 주장이 가져오는 실질적 정치적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민주파와의 선거연합, 연립정부 등 모든 종류의 협력을 거부하기 위한 명분 쌓기일 확률이 농후하다. ‘선거제도 개편’에 합의하지 않는 한 선거연합도, 연립정부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이들은 전국위원회 민주파가 신자유주의적 노선에서 이탈해 탈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전환해도, 민주파 정당들의 의결단위에서 과거를 명확히 반성하지 않는 한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독자파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즉 결론적으로 민주파가 반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선회해도, 이들과는 통합도, 연합도, 연립정부도 구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엔 ‘신자유주의’를 문제삼았지만, 요새 좌클릭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이니 지금은 ‘선거제도 개편’을 문제삼겠다는 발상이다. 그렇게 비민주통합론의 핵심 근거를 모두 부정한다.

    진보대통합론에 대한 우회적 공격

    둘째, 진보대통합론에 대한 우회적 공격이다. 이들은 진보대통합의 핵심 의제로 기존의 ‘종북주의’, ‘패권주의’ 문제에다가 ‘선거제도 개편’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진보대통합의 장애물을 하나 더 설치한 것이다.

    앞으로 이들은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패권주의뿐만 아니라 민주파와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하지 않는 정당으로 낙인찍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진보정당의 독자적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며 민주당으로의 흡수를 의미한다고 공격할 것이다.

    이 같은 공격의 결과는 무엇일까?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독자파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진보신당의 독자화’로 대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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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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