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동 내 친구, 결혼하고 중국간다
한국살이, 힘들어…그래도 샤넬백은
    2011년 03월 02일 08: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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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좀 일찍 결혼한 친구 L의 딸아이 돌잔치가 있었다. 간만에 면목동 양아치들이 모두 모였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친구들은 차 3대를 가지고 L의 집이 있는 구미로 향했다. 내 차에는 S와 그의 결혼할 여자 친구, 그리고 내 여자 친구가 동승했다.

둘이 벌어도 전세방 하나 구할 수 없어

기름 값을 대충 추산해보니 왕복으로 10만 원이 조금 안 들 것 같았다. 톨게이트비도 왕복으로 만 원이 조금 넘을 것 같았다. S와 가기 전에 모여 견적을 내고 기름 한 번은 넣어 달라고 말을 했다. S는 가볍게 무시한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식사를 내고 톨게이트비를 내겠다고 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밑지는 장사다. 하지만 결혼 준비에 사람들 만나 먹는 데만 쓰는데도 카드 값이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계속 나가고 있다는 S의 이야기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러겠다고 한다.

전문대에서 ‘스타일리스팅’을 전공한 S는 신용대출업체에서 수금을 하러 다닌다. 3년을 일했고, S의 여자 친구도 작은 회사에서 몇 년 간 경리를 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하지만 4월에 결혼할 그 커플은 전세방 하나를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직업을 유지하고 교육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에 중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중국에 있는 S의 여자 친구의 오빠가 나와서 일을 하라고 했다. 중국어를 배우려고 S는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수금을 마치지 못하면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그는 학원에 매번 결석이다. 5월에 중국 간다는데.

돌잔치가 저녁에 있어서 출발하기 전에 압구정동에 S의 옷을 보러 갔다. 옷을 맞추는 데 얼마나 들었을까. 예복 수트 한 벌을 맞추면 결혼식 당일 날 턱시도를 빌려준다고 한다. 매번 30~40만 원짜리 기성복 수트도 덜덜 떨면서 사서 입다가 결혼이라 생전 처음 ‘맞춤 수트’를 입게 되었다.

결혼이니까 ‘기본’은 해야 한다며 압구정동의 ‘숍’에서 옷을 하게 되었단다. 그 ‘기본’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야, 죽여주는데?” 정도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기본은 해야, 근데 기본이 얼마지?

S의 커플이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갈 돈을 매달 모은다고 말한 지 2년이 되었다. "하와이 정도"는 갔다 와야 신혼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이야기한 지도 2년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동남아로 가기로 했다. 4박5~6일에 드는 하와이 경비는 2명에 400만 원 남짓.

착실한 커플인 그들은 500만 원을 넘게 모았지만, 대신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하고, S는 남은 돈으로 ‘샤넬 백’을 여자 친구에게 사주기로 했다. S는 내게 지금부터 한 달에 따로 20만 원씩 모아서 결혼할 때 여자 친구에게 샤넬 백을 선물하라고 말한다.

명품의 경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는 입어줘야 하고, ‘어느 정도’의 스타일은 갖춰야 맘이 편한 나는 ‘지방시Givenchy’ 정도를 사주고 남은 돈으로 하와이를 가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그의 말을 받아준다.

신혼여행과 전셋집, 그리고 명품 백. 어차피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융자를 끼고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안 그래도 부모에게 기댈 돈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보금자리를 포기하고 다른 방식의 ‘호사’를 누려보겠다는 걸 별로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즘의 면목동도 전세를 구하려면 그래도 깨끗하고 볕 잘 드는 공간은 1억은 있어야 한다. 보금자리를 포기한 상태에서 남는 선택은 명품 백과 신혼여행. 그들은 명품 백을 선택했다.

중산층 이하 명품소비의 합리성

우석훈의 『디버블링』에 나온 말마따나 현재 중산층 이하의 명품소비가 어차피 기본적인 삶의 품위를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물론 밖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혼자서 계산기를 돌려볼 뿐이다. 둘이 모았다는 돈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떡라면과 우동을 4명이서 사 먹었다. 으레 사먹는 떡라면과 우동은 휴게소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원래 맛이 있을 리가 없다. 조립하듯이 옆에 쌓여있는 라면 무더기에서 면 몇 개를 집어내고, 국물에는 스프가 이미 풀어져있었고, 적당한 비율의 계란이 들어가고 너무 짜 보이면 뜨거운 물을 부어서 적당히 간을 맞춘다.

우동은 그나마 레시피가 있지만 맛은 딱 ‘표준화’되어 있고 그냥 그렇다. 조립하듯 만들어먹는 휴게소의 라면과 우동. 그래도 요새는 ‘맛있는’ 라면과 우동, 그리고 한식 메뉴 등이 많이 있다. 주요 인기 요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진출해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와 휴게소 직영 식당에 고용되어있는 아줌마들의 임금과 고용관계는 어떠할까? 우동이나 라면 정도는 24시간 계속 사먹을 수 있는데, 밤중에 우동과 라면을 만드는 사람들은 월급을 얼마 받을까? 최저임금은 받을까?

분명 용역 업체를 통해서 외주화되어 간접 고용되어 있을 것 같은데, 1월에는 망향 휴게소에서 아줌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 협약을 이루었던 것 같던데. 퇴역 장성들과 퇴역 공기업 간부들이 많이 휴게소를 산다는데 분명 노조가 파업하면 진압도 ‘빡세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할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서도 50대가 넘어가는 아줌마들 역시 집에 가서는 자식들을 결혼시킬 때에는 ‘기본’은 해주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돈 잡을 때까지 하는 돌잡이

구미에 좀 늦게 도착을 했다. L은 회사랑 계약되어 있는 산중에 있는 호텔 홀을 빌렸다. 뷔페가 식사로 준비되어 있었고, 저녁 6시에 시작이었는데 6시 반 쯤 도착하자 50대는 넘는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은 안주거리로 이것저것 음식들을 한두 접시 앞에 덜어놓고 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돌잔치의 식순은 좀 빤했다. 행사 전문 진행자로 보이는 30대의 여성이 분위기를 띄운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메인이벤트인 돌잡이를 시작한다. 돌쟁이 아기는 마이크를 잡고 청진기를 잡고, 마지막으로 돈을 잡았다.

난 마이크를 잡았을 때 끝난 줄 알고 “가수 되는 거야?”하고 있었는데, 청진기를 잡게 하고 돈을 잡게 한다. "돈을 잡아야 끝나는 거"라고 친구가 귀띔해준다. 돌잡이가 끝나자 뷔페에 들어가기 전에 받았던 쿠폰을 추첨하는 시간이다. 쿠폰들은 미리 각각의 물건들(실패, 청진기, 마이크, 돈, ……) 중 어떤 것을 아기가 집을지를 예상해서 두 장 중 한 장을 넣어두는 방식으로 쓰였다.

아이가 마이크와 청진기와 돈을 집었으므로 추첨은 그 세 개 상자에 있는 쿠폰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뽑혀 나간 사람들은 진행자가 틀어준 음악에 둘 씩 춤을 추고 선물을 받아갔다. L의 회사 동료들 중 한 명과 나 역시 뽑혀 나갔는데 진행자는 둘을 ‘맺어’ 주려고 안달이다.

벅적벅적한 이벤트가 끝나고 우리 무리는 L이 정리하는 틈을 타 시내로 가서 선술집을 찾았다. 돌쟁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이어지고, 돌잔치 비용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결혼하지 않은 커플들이 기본을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식 자금 모으는 데도 빠듯

결혼식과 달리 돌잔치에서는 ‘돈’이 계속 화두다. 그리고 ‘기본’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변변한 직장에 다니는 녀석이라고는 J 한 명이었고 우리의 이야기는 겉도는 느낌을 피하질 못한다. 지금의 벌이로는 전세를 구하기는커녕, 결혼식 자금을 모으는 데에도 빠듯하다.

가장 많이 배운 먹물인 나부터, 여전히 알바와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는 B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상황이 타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법적으로 결혼하는 데에는 별 돈이 필요 없다. 또 옛적 70년대~80년대 내 부모의 또래들이 살았던, 노래 <사노라면>에 나오는 그런 장소에 살고 돈 없는 낭만을 즐기려 맘을 먹는다면 결혼 생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본’의 기준은 계속 높아져간다. 예전의 내 부모의 또래, 내 삼촌의 또래, 사촌 형의 또래가 준비해야 했던 것들은 줄어들지 않고 그 비용은 물가가 올라갈 때마다 함께 올라갔다.

주택 값은 ‘부동산 불패’ 신화 덕택에 고공행진을 거의 멈추지 않았다. 부모가 집을 쪼개서 만들어준 돈이나, ‘종잣돈’이 없이 집 한 채를 얻든 사든 하려면 대기업에 다니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럭저럭 사교육 없이 적당히 고등학교, 전문대 정도 다닌 녀석들에게 대기업은 이미 ‘머나먼 당신’이다.

그 외에도 부과되는 ‘기본’들은 많다. 명품 백도 이제 슬슬 예물 물품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괜찮은 여행지를 가는 것보다 무엇을 입고 단장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기본’을 하지 않는 것은 주요한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

내가 후진 생각을 하는 걸까?

상층 계급은 그 기본에 더 많은 옵션들을 부과하고, 그 이하의 계급은 그 떨어지는 옵션까지를 대체로 소화해야 결혼의 ‘기본’을 한다고 생각한다. 구미에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 L은 언제고 돈만 좀 모이면 아이와 아내를 서울로 ‘유학’ 보내고 싶어 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회사에서의 복지 혜택이 좋고 집값이 싸서 벌써 집 한 채를 마련했지만, 그래도 애들이 ‘사투리’를 쓰면서 ‘지방’에 사는 것은 싫단다. 교육시킨다는 것의 ‘기본’이 L에게는 서울에서 학교를 보내서 서울에서 대학을 보내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의 조건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 우리 무리 중 한둘을 제외하면 제대로 돈을 모으고 있는 녀석도 없고, 앞으로 안정적으로 돈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다 은연중 알고 있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매번 ‘대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지금 청년들이 집이 없고, 직업이 없고, 결혼(혹은 섹스)이 없을 것이라고 했던 이야기는 정확하게 관철되고 있다.

하룻밤을 L의 집에서 모여서 자고 난 우리는 다음번에는 또 누가 ‘좋은 소식’ 들려줄 것이냐는 L과 L의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는다. 하지만 L, 그리고 S 이후에, 우리는 또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 결혼한 부부와 아이가 함께 사는 핵가족이라는 시대가 만들었던 불안정한 기준에 지금도 집착하는 것이 후진 생각인 걸까? 차는 막혔고, 비가 한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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