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비아내전, 중동혁명 새로운 분수령
    서방, 군사 개입 목적은 구질서 회복
        2011년 03월 01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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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 내전이 카다피측 정부군과 반카다피 혁명군 사이에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리비아에 대한 유엔 제재 결의가 통과되었고, 뒤이어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 논의가 흘러 나오고 있다.

    분수령을 향해 가다

    대표적으로 카다피측 정부군의 반가다피 혁명군에 대한 폭격을 막기 위한 비행금지 구역 설정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이미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전에 이라크에서도 실시된 바 있는 조치다) 또한, 미 해군의 일부가 리비아 수역으로 이동 중이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리비아 내전이 두 가지 점에서 분수령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중동 혁명이 본격적인 반제국주의적 저항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중동 혁명의 세력별, 계급적 분화의 문제다. 

       
      ▲반카다피 혁명군이 리비아 동부 토부르크를 장악한 후, ‘지역 민중 방어위원회’ 소속의 한 시민이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대공미사일 앞에서 승리의 사인을 내보이고 있다. 

    우선, 서방이 카다피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가할 도덕적, 정치적 자격이 있는지부터 말해야겠다. 카다피가 미국과 화해한 이후에 서방 국가들은 리비아 내에서 그가 자행하고 있던 잔혹한 반대파 탄압에 침묵했다.

    더 나아가 각종 무기들과 시위진압용 물품들을 리비아로 수출하기도 했다. 리비아와 서방간의 이런 밀착은 카다피가 지난 2009년, 유엔 총회에서 미국을 맹비난하는 96분짜리 연설을 할 당시에도 그랬다.

    서방은 군사제제 가할 자격이 있나

    지난 2009년에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은 미국과 리비아 양국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킬 분야에서 리비아가 그러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리비아가 요청한 미국 군사 무기 구매 요청을 검토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위키 리크스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당시 카다피는 미국측에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반테러 전쟁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은밀하게 제안했는데, 아마도 이런 것이 ‘양국 상호간의 이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양측간의 교류로 당시 미국산 F-16 전폭기와 아파치 헬리콥터, 군용 차량들이 리비아에 들어왔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었다.

    또한, 카다피와 막역한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정부를 통해 이탈리아 출신 공군 조종사들이 리비아 공군에서 복무하고 있다거나, 리비아 정부가 미국과 유럽의 보안회사(사실상 용병들)들과 계약을 고려 중이었다는 정보도 돌출되었지만, 더이상 서방 언론들에서 다루어지진 않았다.

    또한, 리비아 국가안보 보좌관이자, 카다피의 아들인 무타심은 지난 2009년 4월 미국을 방문하여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당시 힐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미 국무부에서 무타심 카다피 장관을 맞이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우리는 미국과 리비아간의 관계에 대해 깊은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양국은 상호간의 협력을 넓히고 그 심도를 깊게 할 기회가 많은데, 이러한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이 때문에 장관님을 여기서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최근에 힐러리 클린턴이 카다피에 대해 드러낸 적의와 너무나 다르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그 정치적 도덕성이라는 면에서 파산을 면할 수 없다. 

    군사적 개입 논의의 배경

    다음으로, 서방의 군사적 개입 논의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서방은 카다피가 미국 등 서방과 타협한 이후로 다시금 리비아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마음껏 추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리비아 석유 부문에 대한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진출이다.(이외에도 카다피 정권이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 순응하면서 국유기업의 민영화, 식량과 연료에 대한 보조금 삭감 등이 동반되었다)

    그러나, 중동 혁명에 연이어 발생한 리비아 혁명은 이러한 서방의 구도에 큰 타격을 가했다. 앞서 혁명이 발생한 튀니지나 이집트와 달리 리비아는 중요한 석유 생산국인데다가, 카다피 측의 과도한 폭력 사용으로 인해 리비아 민중들이 무장했기 때문이다.

    카다피가 서방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중요한 석유시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무장한 리비아 민중들이 이러한 시설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서방에겐 엄청난 압박일 수 밖에 없다. 카다피가 무너진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서방의 우려는 사실 이런 시설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세력에게 돌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터키 에르도안 총리조차 지난 26일 유엔의 제제안을 두고, "제재로 인해 리비아 정권이 아닌 국민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며, 리비아 국민들은 이미 허기와 폭력에 대응한 투쟁을 벌이고 있기에 어떤 제재라도 리비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제사회는 리비아 국민들의 안녕보다 현지 석유 가치에 대해 더 우려하는 것 같다"며 서방측의 의도를 꼬집었다)

    더군다나 명목상 반서방 국가인 리비아에서 서방측 석유회사들이 리비아 석유 자원에 대해 전면적으로 접근하고, 이 회사들에 대해 정부가 터무니없는 특혜조치들을 베풀자, 리비아 민중들 사이에는 반제국주의적 감정이 확산되었다.

    리비아 민중의 반제국주의적 감정

    이 때문에 리비아 혁명은 다른 중동지역 시위보다 더 분명하게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띌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 벵가지나 기타 도시들에서 반카다피 혁명군들이 자신의 저항을 상징하여 과거 이탈리아의 식민지에 저항했던 한 독립운동가(영화 <사막의 라이언>의 주인공)와 동일시하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다.

    국내방송에서도 반카다피 혁명군들이 서방 기자의 카메라 앞서 "서방은 석유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군의 개입을 반대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하는 장면이 반복되어 나오기도 했다. 사실, 서방 언론들은 무슬림 형제단 같은 이슬람세력이 집권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이집트 혁명이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띄지 못하도록 사전에 통제하려 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리비아 혁명은 그 출발과 격렬함이 이들 두 국가보다 더 급진적이었다. 이 때문에 서방언론들은 리비아 혁명의 진정한 모습을 감춤과 동시에 혁명의 급진성을 거세하기 위하여 무슬림 형제단보다 서방에 더 공격적인 알 카에다 같은 세력의 발호를 우려 사항으로 집중보도한 것 같다.

    (카다피도 반카다피 혁명군들이 미국이나 서방의 첩자가 아니라 알 카에다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라고 비난했는데, 이는 사실 서방에 아첨하면서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다피가 알 카에다에 의해 접수되었다고 주장한 리비아 동부의 토부르크의 경우, 현지 보도로 인해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해방된 도시들마다 반카다피 혁명군들은 서방 기자들에게 자신들은 알 카에다와 상관없는 ‘순수 리비아인’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서방 언론이 알 카에다를 집중 보도하는 이유

    결국, 리비아 혁명은 아직까지는 잠재적인 성격으로 가지고 있는 중동혁명의 반제국주의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예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방 국가들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기타 다른 중동 국가들의 혁명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태에 개입해야 하는 압력을 받은 것이다.

    카다피를 몰아붙이고 있는 반카다피 혁명군들 내에 입지를 구축하여 향후 구성될 리비아 정치 체제에서도 여전히 서방의 이해관계가 충실하게 이어지도록 하고, 리비아 혁명이 인근 국가로 확산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인디펜던트>지 2월 27일자에 따르면, 영국 업계는 겉으로는 독재정권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가다피의 몰락으로 2000년대 들어 지속되는 양국간 교역 확대기조의 역행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카다피 일가의 측근들도 이 점을 이용하여 영국 업계의 사업계약은 안전하게 보장된다는 입장을 피력, 영국이 자신에 대한 지지의 끈을 놓지 않게 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것을 위한 효과적인 핑계가 바로 ‘인도주의적 개입’이다. 그러나 이런 ‘인도주의적 개입’은 그 자체로 효과도 의심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리비아 혁명의 반제국주의적, 급진적인 성격을 통제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즉, 서방의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근본 목적은 사실 리비아 민중들의 무장을 점진적으로 해제하고, 석유 시설에 대한 이들의 통제력을 탈환하며, 구 질서를 회복하는데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방의 압도적인 군사력이 리비아내에서 행사된다면, 반카다피 혁명군은 서방의 군사적 권위에 의존하게 되는 일이 잦을 것이다.

    군사적 개입 목적은 구질서 회복

    이런 상황은 서방 군대의 위계 질서 하에 다른 반카다피 혁명군들을 줄세움과 동시에 서방군대에 밀착한 정치체가 권위를 가지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이 주변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과정은 점차적으로 기층으로부터의 민중 동원 동기를 약화시켜, 기존 가다피 구체제의 일원이었던 인사들 가운데 반카다피 인사들과 세력들이 혁명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구질서를 일정하게 회복하게하는 촉매제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도 무장한 민중들이라는 ‘호랑이 등에 탄 신세’이기에, 이러한 상황을 무한정 이어간다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리비아 과도정부 수반을 자처한 압델 자릴 리비아 전 법무장관-그러나 그는 가다피 구체제의 일부였고, 지금은 서방에 손을 벌리는 미심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점에서 현재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 세력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류 언론들이 놓치고 있는 점 가운데 하나는 현재 리비아의 반카다피 혁명군이 계층 혹은 계급적으로 하나의 단일한 세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류 언론들은 주되게 이들 반카다피 혁명군의 지역간, 부족간의 차이만 주목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현재 리비아의 반카다피 혁명군들이 기존의 카다피 정권 하에서 요직을 역임했지만 그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과 이들 모두로부터 억압받던 평범한 리비아 민중 출신들이 일시적이지만, 같이 섞여있다는 점이다.

    이는 카다피에 등을 올린 리비아 군 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카다피 정권 하에서 고위 장교 역할을 했던 자들과 하급 장교나 하사관, 사병같이 민중들의 정서와 생각에 더 동정적인 세력들이 같이 뭉쳐있다.

    지금 이들 사이에 반카다피 투쟁이라는 급박한 과제 때문에 긴장이 전면화되고 있진 않지만, 일부 드러나고 있다고 해석할 만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반카다피 무장세력의 계급 구성

    예컨데, 지난 26일에 리비아 <쿠리나> 신문은 카다피에게서 등을 돌린 압델 자릴 전 법무장관이 해방된 벵가지에서 과도정부 구성을 주도했다고 보도했었다. 당시 자릴 전 법무장관은 이 과도정부는 미국의 지지를 받았으며, 3개월 후에 실시할 정부 구성 투표 이전까지만 유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자신이 과도정부 수반을 맡게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하피즈 고가 국민위원회 대변인은 다음날,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 원수와의 협상 여지는 없다”며 “국민위원회 구성의 주목적은 혁명의 정치적 얼굴을 갖는 것”이며, “이를 과도정부로 부르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국민위원회다”고 말했다.(국민위원회는 동부 도시 벵가지에서 카다피 반대 세력이 모인 후 발족됐다)

    그러면서, 그는 자릴의 발표를 “자릴의 개인적 차원에 불과하다”로 평가하면서, “아직 선거를 말할 때가 아니다. 트리폴리는 아직도 포위 공격을 받고 있다. 국민위원회 회원도 아직 형태를 갖추는 중이다. 분열된 리비아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해방된 모든 도시를 중심으로 국민위원회가 창설됐고, 이는 과도기 리비아를 대표하는 기구가 될 것"이며 "국가위원회 멤버 간에 어떤 서열도 없다”고도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비교해보면 미묘한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카다피에 대한 타협 여부, 리비아 혁명의 범위와 혁명을 대표할 기구의 구성과 대표 방식, 누구로부터 우선적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 차이가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국민위원회의 하층 차원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해방된 지역의 사회질서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이냐의 문제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계층, 계급별 긴장이 날카로워질 것이다. 이미 지금도 정부군으로부터 해방된 지역들에서 자체 방어와 도시 운영을 위해 다양한 위원회가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를 둘러싼 조율문제가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이런 조율 과정에서 지역별 부족별 차이뿐만 아니라, 계급별 계층별 특징을 반영하는 상이한 목표들이 논쟁과 갈등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계급, 계층별 긴장 날카로워질 것

    그런데, 자릴 전 법무장관의 태도에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또 있다. 미국 매케인 상원 의원은 CNN방송에 출연, 카다피 정권의 항공기를 이용한 반정부 시위대 공격을 막기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을 미국이 도와야 하고, 반정부 세력이 장악한 리비아 동부지역에 구성된 과도 정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릴 전 리비아 법무장관은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우리는 국제법과 조약을 준수하는 민주국가를 세울 것임을 전 세계에 선언합니다…..현재 외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우호적인 나라들이 우리를 도와주길 간절히 바랍니다…..일부 주변 국가들이 카다피를 도우려고 용병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차량에 올라 토부르크 해방을 축하하는 리비아 반카다피 혁명군들과 시민들.

    여기서 자릴 전 법무장관은 ‘국제법과 조약을 준수하는 민주 국가’를 만들겠다고 말했는데, 그가 자신이 세울 국가의 근본적인 제일원칙으로 ‘국제법과 조약 준수’를 언급한 것은 시사적이다. 이런 언급은 한편으로 자신이 세울 국가에 대한 서방의 불안을 불식시키고, 기존 서방 기업과 맺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뜻이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릴 전 법무장관은 서방 언론에서 카다피 정권 하에서이긴 하지만 매우 양심적인 법 집행을 한 사람으로 추켜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카다피 정권하에서 부역한 사람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2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리비아 국민이 죽어간다"며 눈물을 흘렸던 압둘 무함마드 샬람 유엔 주재 리비아 대사 같은 사람도 사실 이번 사태 초기에는 카다피 편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반카다피 구체제 인물들이 걱정스런 이유

    또한, 이번에 카다피에 등을 돌린 리비아 고위 외교관리들 가운데 한 명이자, 혁명에 ‘동참’하기로 한 압델 모나임 알 호니 아랍연맹 리비아 대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1969년에 카다피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장교였는데, 1975년엔 가다피를 밀어내고 자신이 권력을 잡고자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리비아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가다피가 나중에 사면을 하자 지난 1990년 재빨리 리비아로 돌아와 구체제에 합류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자릴 전 법무장관의 말에서도 암시하는 것처럼, 이들이 바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개입을 돕고 은연 중에 리비아 혁명을 통제하는 ‘제5열’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에서 비행금지 구역 실시는 주지하다시피, 이라크를 3등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당시 비행금지 구역 하에 있던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지역은 미국 정보기관원과 특수부대원들이 활개치는 사실상의 미군의 기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는 이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혁명이 진행중인-서부 지역을 통한 이집트 간섭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회적 변동이 그렇듯이 리비아 혁명 역시 가다피와 그의 아들들 같은 인사들을 권좌에서 축출하는 것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 혁명은 아직 그런 물리적 단계로 완벽하게 나아가지도 못했다.

    리비아 혁명의 과제들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 혁명은 카다피와 카다피에 반대하지만 카다피 체제의 일부 수정만을 바라는 구체제 인사들과 그 세력들, 더 나아가 제국주의와도 대결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리비아 내전은 한편에서는 카다피와 반카다피 진영 간의 내전이라는 양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 제국주의 군대와 이에 순응하는 반카다피 진영 내의 구체제파들과 반제국주의-반구체제파 기층 민중간의 계급적 대결이 감겨들어가는 복잡한 투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야흐로 리비아 내전은 중동혁명의 또다른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될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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