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 강령개정으로 속셈 드러냈다?
        2011년 02월 26일 01: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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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노당이 강령개정을 한다고 한다. 강령개정의 타이밍, 강령개정의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진보정당 통합을 말하면, 당연히 강령도 통합정당의 것을 말하면 될 터인데, 그게 아니다. 기존 민주노동당의 강령이 분당 전의 것이니, 분당 이후의 상황에서 현재의 민주노동당 사람들에 맞게 고치겠다는 것이다.

    다시 살아나는 패권주의?

    통합을 말하면서 분당 이후의 상황에 맞게 강령을 개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모순이다. 당연히 통합의 대상들을 자극한다.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

    통합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통합정당에서 민노당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하기 위해 민노당의 강령을 개정하는 것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건 과거 민노당 분당의 중요 원인이었던 패권주의, 패권욕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김창현 민노당 전 사무총장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패권주의 극복의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먼 행동이다.

    그게 아니라 통합과 상관없이 예정되었던 일인데 모양 사납게도 통합논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처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그걸 믿겠는가? 더구나 그 내용이 분당 이전에 많은 논란이 있었던 부분이고,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문제들이라면.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곧 통합을 말하면서 사실상 통합을 부정하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말로는 진보대통합을 말하면서 사실상 그것의 성공을 원하지 않고,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는데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노당 핵심세력의 일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도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통합 과정이 피곤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양보하기 힘든 문제들을 양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토론 필요할 때 밀어붙이기

    정치 행위는 자신의 주관적 해석과 상관없이 객관적 의미를 획득한다. 특히 첨예하게 충돌하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조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민노당이 진정으로 통합에 관심이 있다면 강령개정을 통합논의 이후로 미루거나(상황에 따라 통합정당의 강령논의 속으로 포함되거나), 통합을 촉진시키기 위해 통합의 상대방이 문제시하고 있는 패권주의 문제, 북한 문제, 민주노총 문제 등에 대해 성실하게 답하거나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민노당 6월 당대회에서 개정하려고 하는 주요 강령 내용을 검토해보자(레디앙 기사 참조)

    1) "사회주의운동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하고"를 삭제 : 분당 전부터 민노당 주류인 ‘자주파’들의 입장이었다. 그들은 사회주의 문제, 계급문제보다는 반제자주화, 민족해방의 문제를 더 중시한다. 그들은 복잡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대중적 정서’, ‘수권정당’을 말하면서 과감히 ‘사회주의’를 삭제하려고 한다.

    그 의미는 이중적이다. 통합과정에서 사회주의 문제를 논외로 하려는 것이거나, 통합과 상관없이 민노당을 사회주의와 관계없는 급진적 개혁정당으로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통합과 상관없는 것이기에 논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라고 한다면 통합의 상대방을 자극하고, 통합논의에서 사회주의 문제(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포함)에 대한 토론을 봉쇄하고자 하는 의도와 연결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문제는 대중적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대중적 표현을 어떻게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사회주의운동의 역사, 그 성과와 한계, 그 현대적 존재가치를 묻는 문제이며, 그 미래적 상을 잡아 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걸 ‘대중’의 이름으로 난도질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2) "북한사회주의의 경직성이 극복되면서"를 삭제 :  이것은 북한에 대한 비판적 언사의 소멸로 읽혀지는 부분이다. ‘북한사회주의’라는 말은 사회주의에 대한 사고와 북한에 대한 사고를 연결시키는 표현이다. 두 가지 차원을 담은 개념인 것이다.

    결국 북한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출발점에 해당되는 것인데, 그걸 없애버림으로써 비판의 강령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뭘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 민노당과 북한 문제에 대한 여러 기억과 경험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민노당 분당 과정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오를 것이다. 만약 민노당이 진보정당의 통합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은근슬쩍 북한에 대한 비판적 문구를 삭제하는 식이 아니라, 진보신당이나 사회당 측에서 제기하고 있는 북한 관련 쟁점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북한문제는 평화와 통일을 설계하고 준비해 나가는 일체의 정치활동, 정책대안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고, 분단된 현실에서 끊임없이 떠오르고 쟁점화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정말 진지하고, 성실하게 토론하고, 정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북한인권의 문제, 북한의 핵개발 문제 등에 대해서 우리는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진보의 보편적 기준을 갖고 말할 수도 있고, 남북관계의 실용적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고, 통일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말할 수도 있다. 그걸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의도라고, 남한 보수파나 미국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말해 버린다면 더 이상 대화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3)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 명확화 : 기존 강령은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연합-연방제, 낮은단계 연방-연방제통일, 또 국가연합과 연방제를 결합시키는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물론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친북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특정한 논쟁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게 되면 민노당 주류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북한체제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적 문구를 삭제하는 것과 연결된다면 문제의 성격은 더 분명해 진다.

    이제는 연방제냐 아니냐는 식의 논쟁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문익환 목사가 제안했던 8도연방제를 매력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다. 또 남한의 국가연합방안도 특정 시점에서는 의미있다고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노당의 강령 개정은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배제시키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그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행위가 일정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민노당 강령 개정에 신경을 쓰는 이유

    사실 진보대통합, 진보신당, 사회당과의 통합문제가 아니라면 민노당의 강령 개정 문제는 크게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다른 정당의 문제이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제하고 대응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이 할 사람들의 문제, 같이할 정당의 문제라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과연 민노당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구별하고는 있을까?

    나는 진보정당 통합만이 아니라 급진적 자유주의자 혹은 사회적 자유주의자들과도 통합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다.(그럴려면 사회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은 급진적 자유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고, 거꾸로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역시 사회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을 자신들과 다르면서도 공존공생하는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실현가능성이 쉽지 않기에 진보정당 통합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물론 그 역시도 쉽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민노당의 강령 개정 논의가 걱정스럽다. 이는 민노당만의 논의가 아니라 진보신당, 사회당의 논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의 당 대회에서는 민노당과의 통합을 둘러 싼 문제가 당의 심각한 분열을 야기할 정도로 부각되고 있는데, 민노당의 당 대회에서는 오히려 그런 분란을 즐기는 듯한 강령 개정 논의를 한다는 것이 묘하게 대비된다. 진보신당의 3월 당대회와 민노당의 6월 당대회가 절묘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노당이 설령 진보대통합에 대한 결의를 수백 번 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것인가? 진보신당과의 선통합을 주장한 이유와 지금 강령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태도는 상식적으로 본다면 전혀 일관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중적이고, 자기모순적이다.

    아니 애초부터 통합에는 관심이 없고, 통합의 정치적 효과만 가져오고 진보신당을 분열주의자로 낙인찍기 위해 통합 논의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진한 진보신당만이 분열주의자가 되고, 내부 분란에 휩싸여 지리멸렬해지고 있는가?

    민노당은 어느 길로 가려는가?

    그러나 통합하지 않으면 함께 망할 것이다. 단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통합을 말하는 것은 서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기초를 만드는 것을 통해 운동의 질을 한단계 끌어 올리고, 한국사회를 바꾸는 실제적인 힘을 키우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길은 관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관성은 분열의 길이고, 공멸의 길이다. 통합은 숱한 장애물을 이겨내는 과정이며, 운동의 새로운 질을 창조하는 과정이며, 새로운 대중적 동력과 기운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니나 이 엄혹한 현실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기에 접어 들고 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물론 나는 힘들 거라고 본다. 지금 민노당과 진보신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말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노력해야 한다.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민노당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과연 민노당은 어느 길로 가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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