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족사회 대 귀족사회
        2011년 02월 25일 09: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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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아주 재미있는 특강을 듣고 왔습니다. 영국에서 주로 고대 중동의 역사를 연구, 교수하는 오스트리아계 라이크 교수(http://www.chelsea.arts.ac.uk/17228.htm)는 모스크바의 레닌 묘부터 금수산 기념궁전까지, 각국의 ‘죽은 통치자에 대한 숭배’를 종교학적 관점에서 비교, 고찰한 것이었어요.

    죽은 통치자들의 묘

    라이크 교수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죽은 통치자의 묘’의 구조가 갖는 상징성이나, ‘죽은 통치자 영정’의 상징성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북조선 사례는 여러 모로 특수하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레닌 묘와 비교하면 물론이고, 모택동 기념당이나 손문 선생의 묘와 비교해도 금수산 기념궁전은 확실히 가장 크다는 것이죠.

    소련/러시아나 중국이라는 ‘위압적인 우방’들과 국력을 갖고 겨룰 입장에 있지 않은 북조선은, 적어도 ‘선왕’에 대한 기념사업의 차원에서는 세계 최고를 기록한 셈입니다.

    또 하나는 ‘선왕’의 표준 영정입니다. 진지한 혁명가 레닌의 그 어떤 (널리 유포된) 사진이나 초상화를 봐도 파안대소하거나 미소 짓는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습니다. ‘혁명’이라는 코드는 무엇보다 진지함,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데, 굳이 문화적 계통으로 따져보면 이는 복음서에서 한 번도 웃었다고 기록된 적이 없는 야소 기독의 진지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대중성이 강한 농촌 출신의 모택동의 일부 사진에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표준적’ 이미지들 역시 진지해 보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희생을 많이 해야 하는 혁명사업은 숭고하면 숭고하지, ‘우스운’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한데, 김일성의 표준 이미지는 바로 활짝 웃는 이미지입니다. 바로 그 이미지는 금수산 기념궁전에 걸려 있죠. 이는 ‘진지한 혁명가’라기보다는 차라리 ‘따뜻한 아버지’, 또는 백성을 ‘어루만질 줄 아는’ 유교적 ‘성군’의 이미지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사실, 이 ‘유교 코드’를 빼고 북조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봐야죠.

    북조선은 일종의 ‘왕국’

    북조선의 사회 경제적 형태는 초강력 중앙집권성을 특징으로 하는 국가 자본주의적 (스탈린주의적) 개발국가인데, 그 정치 문화적 형태는 바로 성리학적 유산을 듬뿍 담아 있는 강경 민족주의적 (주체적) 세습 통치, 즉 일종의 ‘왕국’입니다.

    남한이 개발국가이었던 시절, 그리고 특히 1970년대 유신 시절에, 남한 통치집단도 강경 민족주의적 종신 집권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적은 있었으며, 그 때에 친일파와 친미파에 의해서 세워진, 애당초에 유교적 유산과 꽤 사이 멀었던 남한은 일종의 ‘2차적 유교화’ 과정을 겪은 바 있었습니다.

    예컨대 1972년 이후의 남한 지폐를 보시지요. 유신 시절에 접어드는 대한민국에서는 최고액 은행권에서는 세종대왕이 나타났는가 하면, 보다 작은 은행권에서는 퇴계와 율곡이 나타났습니다. ‘성군을 돕는 현자들’, 그건 종신 집권을 도모했던 독재자가 ‘재발견’한 ‘전통’이었으며, 이 전통은 남한의 미래를 위한 일종의 청사진을 제공해야 됐습니다.

    1950년대나 1960년대초와 달리, 1970년대에 성장기를 보냈던 이들은 현충사를 순례하여 ‘성웅’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야 됐으며, 텔레비전에서는 <세종대왕>과 같은, 세종을 일종의 ‘전근대 개발국가 지도자’로 만드는 드라마를 봐야 됐으며, 국책 과목으로 부상되고 1972년 이후에 강화된 국사에서 ‘김유신 장군의 헌신적 노력에 의한 삼국 통일’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를 배워야 됐습니다.

    장군, 성군, 성웅들의 세계에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 불우하게도 – 본의아니게 보내야 했던 이들의 일부는 1986년 이후에 운동권 일각에서 유행해진 ‘주체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과연 우연입니까?

    박정희주의에서 김일성주의로

    이북 정권의 유교적이다 싶은 외피를 은근히 벤치마킹해서 열심히 베꼈던 박정희의 퇴행적인 독재는, ‘인자하신 주인님’에 대한 지향성을 몸에 밴 사람들을 길러낸 것이죠. 물론 다들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주의에서 김일성주의로 개종(?)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쉽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뭐, 반대의 경우들도 있죠. 고 황장엽씨나 <조선일보>에서 그 필봉을 휘두르는 강철환씨를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일언이폐지하자면, 옛날에 빌헬름 라이히(1897-1957)선생이 이야기하셨던 ‘권위주의적 인격’이라는 게 실제 존재한다고 봐야겠습니다. 자연의 부름대로 아이들을 15~16세부터 섹스를 하게 놓아두고 부모들의 말에 얼마든지 거역하고 얼마든지 대들 수 있게만 해주면 ‘새끼 박정희’와 ‘새끼 김일성’들이 더이상 그리 많이 안나올 터인데, 우리는 라이히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새끼 박정희’들을 계속 대량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경제력 증강 차원에서 김일성을 능가했다 해도 ‘강경 민족주의 종신통치 수립’ 차원에서는 – 다행스럽게도 – 북조선의 수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외향성이 지나치게 강한 경제는 1979년에 과잉,중복 투자와 외부적 쇼크로 심하게 삐딱거리자 그 정권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 결국 붕괴되고 만 것이죠.

    그 뒤로 무수한 굴곡을 겪은 남한은, 이제 개발국가라기보다는 (1997~1999년부터) 차라리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의 모델에 더 가깝습니다. 국가라고 하지만, 공공성은 대단히 취약하며, 실제로는 그저 재벌들의 ‘심부름꾼’ 정도입니다.

    오세철 교수 같은 분을 붙잡아 몇년 동안 재판한다면서 괴롭힌 끝에 집행유예 유죄 판결을 내릴 만큼 명시적 반대자들을 끈질기게 탄압하는 ‘공안형 국가’지만, 믿고 살 수 있는 국민 노후임금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는, 그런 국가입니다.

    사적 패거리 중심 사회

    공교육 제도가 있음에도 유치원부터 40~50대의 나이까지 거의 전국 전국민이 사교육, 즉 학원가의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은 이 국가의 수준을 단적으로 말합니다. 사적 패거리, 각종 ‘사회 귀족’ 중심의 사회다 보니까 ‘죽은 통치자’ 숭배도 어디까지 사적 패거리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남한이 그 와중에서 전적으로 소멸돼도 어차피 자유세계의 보루인 미국이 남을 터이니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위대한 애국자’, ‘건국 아버지’ 이승만을 기리는 소집단이 있는가 하면, 유권자의 적어도 15~20%가 지금도 – 이북인들이 김일성을 마음 속에서 기리듯이 – 박정희를 기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한 현상이 없다면 ‘공주님 표’들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재벌마다 창업주 ‘회장님’ 중심의 소규모 숭배가 있는가 하면, 또 학맥마다 모 ‘박사님’, 모 ‘교수님’ 등은 열렬한 숭배를 계속 받는 것입니다. 북조선 왕족이 ‘충성’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인다면, 남한 귀족들은 ‘효성’ 중심입니다. 자기들의 ‘위대한 조상님’에 대해서 말이죠.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로서는 북쪽 ‘왕실 조상 숭배’를 흉볼 것도 없습니다. 남쪽의 근대적 합리성의 수준은 그것과 그리 다를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 초강경 중앙집권의 북쪽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인 만큼 권력이 어느 정도 분산돼 있을 뿐이지, 그 어떤 공공성도 합리성도 찾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부하로 하여금 ‘회장님 어록’을 달달 외우게 하고,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리는 남한 사회귀족들은,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대착오적입니다. 그런 유형의 ‘호족’, ‘권문세가’들은 사실 마땅히 역사박물관에서 박제화돼 전시돼야 합니다.

    북조선의 권위주의가 스탈린 시대 소련을 능가했다면, 남한의 기업국가는 어쩌면 미국 수준 이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민중 본위의 근대가 창출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이 서로 서로 평화공존하고 대결을 접어야 양쪽 민중이 이 왜곡돼버린 근대성을 바로 잡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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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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