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주거권 위협하는 전세대란
        2011년 02월 23일 03: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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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의 전세값이 23개월째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과 중반의 ‘버블쎄븐’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이나 2008년 초 서울 강북지역의 전세값 상승과 달리 전국의 모든 평형에 걸쳐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주택을 막론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세입자 동맹을 맺듯이 임대인들도 심리적 동맹을 맺은 것 같다. 서울의 잠실이나 반포 등에서도 재계약 시점이 되자 전세가격이 폭등했다. 마침 주택가격이 안정되면서 투자수익률을 확보하려는 임대인의 욕구와 맞물리면서 이같은 확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수치상으로는 전세가격 상승률이 2009년 3.4%, 2010년 7.1%에 불과하여 높지 않지만, 세입자가 느끼는 고통은 엄청나다. 전·월세계약은 주로 2년 단위로 이루어져 재계약시에는 2년간의 상승률이 적용되며, 전세금은 규모가 커서 작은 비율의 상승만으로도 인상액이 수천만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면 미래에 주택을 구입하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부른다. 그러나 전·월세가격이 치솟으면 당장 전세자금 인상분을 마련해야 하거나 더 작은 집 또는 더 먼 집으로 옮겨야 하고, 월세 지출을 위해 소비를 축소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집값 상승보다 더 무서운 전·월세 상승

    이번 전세대란의 심각성은 ‘전세가(價) 월세’ 혹은 ‘반월세’로 불리는 보증부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중이라는 데 있다. 전세가격이 급등하자 세입자는 인상된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부족한 전세보증금만큼 월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고, 임대인은 저금리 상황에서 시장이자율보다 높은 월세수입을 선호하게 된다.

    전세금은 강제저축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소비를 줄이더라도 장래의 주택구입이나 주거안정에 어느정도 기여할 수 있는 반면, 전세의 월세화 및 월세의 상승은 가계의 지출확대를 강제하므로 가계의 원시축적을 불가능하게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킨다.

    그런데 최근의 정부 대책을 보면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전세 문제에 대해 이사철 수요가 몰린 탓이라거나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대책을 발표할 것도 없다고 수차례 밝힌 적 있다.

    정부가 발표한 2.11대책에서는 최근의 전세 문제가 주택가격의 안정으로 매매수요가 위축되어 있어서 매매 잠재수요가 전세수요로 전환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른 대책은 주택공급을 확대하되, 민간임대사업자를 육성하여 주택의 매입수요를 늘리고 임대주택의 공급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세대란이 주택재고나 임대주택의 공급부족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급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면 공급이 많아서 미분양주택이 쌓여 있고 매매주택가격이 안정된 지역에서 전세가격이 오르고 월세로 전환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바로 2년 전까지도 공급과잉과 미분양주택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동안 소득이나 인구가 급격히 늘거나 주택이 멸실된 것도 아니라면 원인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의 엉뚱한 진단과 안일한 대책

    또한 전세제도가 우리나라 민간임대주택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민간임대사업자는 매매차익이 목적이 아니라면 임대주택시장에 주택을 계속 공급할 이유가 없다. 집값의 반도 안되는 금액을 전세로 받아서는 도무지 자산의 수익률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임대사업자는 임대사업자 의무기간 동안 주택가격이 상승한다는 기대하에 단기적으로만 민간임대사업자로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일시적 다주택자를 민간임대사업자로 포장함으로써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를 감면해주는 특혜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임대사업자가 늘면 주택가격은 오를지라도 전세시장은 안정될 수가 없다.

    우리나라 가구별 거주형태를 보면, 전체 가구의 55.6%만이 자가주택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전세나 월세, 기타 비주거용 거처 등에 살고 있다. 전체 주택재고 중 장기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4.7%에 불과하니 가구를 기준으로 보면 공공임대주택 거주가구는 4%를 넘지 못한다.

    전체 가구의 40% 이상은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민간임대주택시장의 임대료나 임대계약기간을 규제 또는 개입할 수단이 거의 없다. 이런데도 민간임대주택만 공급하면 전·월세가격이 안정되라 기대한다면 너무나 안일한 발상이다.

    정부가 매매시장에 비해 가격등락폭이 큰 민간임대주택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다음의 정책수단 중 최소한 한가지는 확보해야 한다. 첫째, 공공이 민간임대주택의 임대료나 임대계약기간을 법률로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임대료의 절대금액이나 상승률을 제한하든지 아니면 임대주택의 장기거주가 가능하도록 임대계약기간을 장기화하는 것이다. 최근 야당이나 주택정책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이 그 대표적인 수단이다.

    민간임대주택 확대와 안정화 방안

    둘째, 공공이 공공임대주택의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여 임대료를 저렴하게 책정함으로써 민간임대주택의 임대료를 안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공공임대주택이나 사회주택 같은 공공주택을 20% 이상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지 못한 가구를 수용하거나 민간임대시장을 간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반면 이명박정부는 참여정부의 국민임대주택계획을 축소했고, 재건축사업에서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공급하던 제도를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했으며, ‘보금자리주택’에서도 분양주택을 우선적으로 공급하여 공공임대주택 확보에 게을렀다.

    셋째, 공공부문이 민간임대주택의 임대료를 저렴하게 책정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인쎈티브 제도가 있어야 한다.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임대료 상승률을 낮게 책정하거나 임차인과 장기계약을 하는 경우 재산세나 양도소득세 등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임대인에게 저렴한 임대료와 장기임대차계약을 유도할 수 있다면 공공이 관리하는 임대주택의 재고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세대란을 통해 그동안의 주택정책이 분양주택의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왔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전체 가구의 40~50% 이상을 차지하는 세입자의 주거안정에는 소홀했음이 드러났다. 냉혹한 민간임대주택시장의 현실에 시민의 약 절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정부가 헌법에서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 국민의 주거권과 주거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저소득층의 주거권 보호를 위한 사회적 관심

    따라서 앞으로 주택정책은 분양주택의 총량적인 공급 확대보다는 공공임대주택이나 환매조건부주택 같은 공공자가주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울러 저렴한 주택을 급격히 멸실하여 저소득층의 주거불안정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도록 정책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입자의 안정적이고 저렴한 주거생활을 위해 최소한 세입자가 자녀의 학령연한까지는 거주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높이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저소득층의 주거권 확보와 세입자의 권익 보호가 국가나 가옥주의 시혜를 통해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주거 약자의 투쟁과 연대, 지식인과 전문가의 지원, 언론의 주거환경에 대한 관심과 여론 조성 등이 모여 사회적인 주거안정의 기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라도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고 연대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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