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적 소년-청년운동 필요하다"
        2011년 02월 23일 1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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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산자 생협 아이디어의 기억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에 모두들 아파할 때, 나는 두 해 전에 준비했던 20대 문화생산자 생협의 기획팀을 떠올렸다. 방학 동안에 모였던 한 스터디그룹에서 만난 학생들로 형성된 그룹이었는데, 20대 당사자운동을 세대-계급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20대 세대의 삶과 노동조건의 상징을 잘 보여주던 독립 문화생산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요건을 찾는데 주력했었다.

    독립문화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을 준비해보기도 하고, 생활협동조합의 형태로 조합원을 모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조합원 회비로 월 2만원을 지불할 수 있는 20대 생협조합원 1만 명을 모으자는 것이었다.

    월 2억을 모으자는 소박한 기획이긴 했지만 당시 우리의 계산으로는 독립문화 향유에 월 2만원을 지불할 1만 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식비를 아끼는 20대 프레카레아트(불안정성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친 신조어)의 지갑 중 월 2만원이라는 액수는 실로 엄청난 액수였기 때문에 차라리 국가에 20대 전부에게 문화비로 월 2만원씩 지급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20대 계급의 경제현실에서 오히려 현실적인 주장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청년 문화생산자에게 기본소득을 우선 지급하라”는 문구로 정리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우리와 시너지를 일으킬만한 그룹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금전적인 도움이나 정당의 도움을 받는 것도 세대론이 막 발발했을 당시에는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6개월 가량 매주 3회 이상 긴 분석과 회의를 이어갔지만 결국 팀은 해체됐다.

    2. 혁육동의 조직론

    ‘혁명적 육식주의자 동맹’은 그 이후로 처음 주기적으로 만나 간간이 공동작업을 하게 된 모임이다. 장난스럽게 보일 수 있는 이 모임명은 또래들이 서로 모였을 때나 배부르게 고기를 먹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름인데, 언젠가 자취집에 옥상이 있다는 이유로 한 채식주의자의 집에서 고기를 먹게 되면서 ‘혁명적’이라는 수식어가 굳어졌다. 여담이지만 그날 채식주의자들은 고기 대신 고구마를 구워먹었고, ‘혁육동’은 당연히 채식주의자를 존중한다.

    맛있는 술 한 잔에 고기를 먹으면서 만담이나 하다가 집에 돌아가면 될 터이지만, 한국사회 술자리 종결자는 연애 얘기도 아니고 정치 얘기였다는 게 문제였다. 다들 대식가에 말술인 까닭에 술을 먹으면 일이 하나씩 늘어나는 과정이 이어졌다.

    투쟁사업장에 연대 방문을 다니고 도발적인 현수막을 거치하는 일, 3개월 째 매주 일요일 두리반에서 열리고 있는 원탁강좌 프로그램인 ‘삼층강좌’가 기획된 일 등이 모두 술을 마시면서 제안되고 결정되었다. 물론 필요하면 따로 회의를 소집하기도 하고, 발제를 곁들인 토론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여전히 ‘식사’는 혁육동의 중요한 모임순서다.

    원탁강좌와 밥상모임. 초기 공동체 조직가들이 주로 사용했던 이 기본적인 형태의 조직론은 아직도 근본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혁육동’과 같은 느슨한 모임이 작은 시도에 머무르지 않고 광폭으로 복제될 수 있는 조직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조직가로 정체화하는 활동가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런 활동가들에게 요구되는 점은 원전과 기존의 프로토콜을 ‘커버’하되 카피하지 않을 것과 자기 일상에서 운동의 지향을 찾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3. 좌파적 세대운동의 기원

    설 연휴가 끝난 일요일, 혁육동은 ‘어린이날 뭐 할래’라는 주제로 토론모임을 가졌다. 레디앙에 "청년운동 ‘땡처리’할 시기가 온다" 는 글로 소년운동의 필요성를 주장하기도 한 김슷캇은 발제를 맡아 소년(少年)의 인권문제가 의제화된 1차 세계대전 직후 국내외의 소년인권운동을 되짚어가며 소년운동이 현재에 시사하는 바를 암시했다.

    발제문(http://cafe.daum.net/duriban/9hjA/38)에 따르면 소년인권이 국제사회의 의제로 등장한 것은 1924년의 제네바선언. 이 선언의 주장은 ‘아동의 심신발달 보장, 요보호아동에 대한 원조, 위험에 처한 아동의 최우선적 구제, 생활보장과 착취로부터의 보호, 인류동포에 봉사하는 아동 육성’ 등의 5개 조항으로 세계대전으로 소년층의 기아와 질병 등 피해가 급증하는 시대상황에 대응해 발의된 것이다.

       
      ▲일본식민지 시대 어린이날 포스터. 

    이에 앞서 한반도에서는 1922년 천도교소년회가 단독으로 어린이날을 주최했다. ‘항상 십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와 같은 슬로건에 맞춰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십시오.”, “어린사람에게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장가나 시집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종로 일대를 가두행진하고, 자동차 선전대로 시내 선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소년운동은 이듬해인 1923년에는 한반도 내의 소년단체들이 공동으로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해 5월 1일을 제1차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어린이에게 유상 무상의 노동을 폐할 것, 어린이에게 경어를 사용할 것” 등을 요구하며 소년의 인격적 경제적 해방을 주장하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개최된 1차 어린이날 주장의 문구들이다. 위의 천도교소년회의 주장을 포함하면서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와 기관” 등을 요구하거나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라는 소년의 자립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어른에게 드리는 글>에 포함되어 있었다.

    또 소년을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물건같이 여기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로 받아들여 자식을 소유하려고 하지 말 것과 “가정교육은 엄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그 자녀의 인생을 망쳐놓습니다. 윽박지를 때마다 뻗어가는 어린이의 기운은 바짝바짝 줄어듭니다. 그렇게 길러온 사람은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크게 자라서 뛰어나는 인물이 못 되고 남에게 굴리고 뒤지는 샌님이 되고 맙니다.”라는 문구 등이 <어린이날의 약속>으로 선전물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렇게 어린이날을 창립해 정례화된 운동으로 개최하던 조선소년운동협회는 우파계열의 문화운동적 접근과 좌파의 계급적 접근이라는 입장 차이, 여기에 스며들어 있는 민족주의계열과 사회주의계열의 입장차를 원인으로 갈등하다가, 1925년 무산소년계급운동노선을 주장하는 반도소년회를 주축으로 하는 오월회가 분리독립해 오월회와 조선소년운동협회가 개별적인 소년운동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곧이어 운동진영의 분열에 대한 사회의 강렬한 질타를 받았고, 이에 대한 부담 때문에 지방에서는 중앙지침을 어기고 어린이날을 동시에 개최하는 등 혼잡한 상황이 펼쳐져, 3년 만에 다시 통합조직인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게 되는데, 여기서 방정환 등의 민족주의 문화운동계열이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좌파계열의 조선소년총동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조선소년총동맹은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18세 이하의 모든 회원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급진적 지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프로계급의 의식을 반영한 내용들을 적극 수용하여 당시의 사회운동 전반과 맥을 같이 했다. 1930년대 중반 전시동원체제로 강제해산되기 전까지 당시의 소년운동은 계급으로서의 소년을 해방시키는 운동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4. 계급의 상징으로서의 소년운동 

    혹시 위에 요약한 발제문을 보고 ‘환상놀음’이라며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반면에 ‘재미’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후자의 한 사람이고, 그 ‘재미’에서 가능한 상징을 꺼내먹으려는 사람이다. 소년은 각종 억압의 종결자다. 운동의 각 분야에 소년을 대입해 보라. 거기서 소년은 사회를 구성하는 책임과 권리를 갖지 못하는 타자가 되어 홀로 우두커니 서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소년시기를 겪기 때문에 소년기의 특성을 알고 있다. 또한, 인간의 실존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식이 독립된 하나의 인간으로 대우받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사회적 시간을 길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음 세대가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는데 합당한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하지만 첨단의 진보가 속속들이 소개되는 한국의 진보판에서도 연령 문제와 세대-계급에 대한 분석은 실제로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소년 의제는 청소년보호법을 비롯해 몇 개의 법이 겹겹이 에워싼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아찔함에 갇혀 있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소년 의제와 같은 맥락에서 고려되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 앞에는 언제나 ‘넘사벽’이 버티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젊은)세대/농업/문화 부문의 빈곤은 사회적인 ‘퍼주기’가 없다면 살릴 수 없는 사회의 빈곤으로 이해하는 편인데, 농촌진흥법이나 문화예술진흥법의 골자는 자유경쟁 기반에서 ‘돈 되는 산업에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처럼 유기농업과 유기축산을 미리 시작해 수려한 자연경관을 유지하면서 식량자급도와 수출활로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흉내는 못낼망정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고비용 실패작으로 끝날 것이 거의 확실한 기업형 농축산이나 아이돌 중심의 연예수출품을 지원한다.

    더나아가 시장에서 먹히는 창작자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말을 얹는 사람들이 독립문화시장을 논의하는 토론회 패널로 나오고, 구제역 감염으로 살처분된 돼지의 유해에서 나온 침출수를 두고 ‘돈 안되는 산업’ 운운한 아찔한 논리를 집권 보수당이 내뱉는 사태를 ‘넘사벽’ 말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도무지 답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빈곤의 대상 그 자체가 급진적으로 일어나는 방법 말고 다른 방도가 없다.

    5. ‘넘사벽’에 갇힌 분야 잠재력

    하지만 1920년대의 소년운동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넘사벽’은 해방 후 집권세력에 의해 동원되거나 조잡하게 조합된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은 이를 얼마나 자신감 있게 해체할 것을 요구하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같이 ‘넘사벽’에 갇혀 있는 분야가 바로 현재의 진보운동이 외연을 넓히고 힘을 축적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년운동은 기본적으로 소년인권의 확장을 요구하는 부문의 권리운동이기도 하지만, 계급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운동으로 본다. 게다가 ‘넘사벽’에 갇혀 있는 분야는 아직 진보진영에 합세하지 않은, 즉 새로운 주체를 발굴할 수 있는 부문이 된다.

    좌파적 소년운동이라면 소년에게 경어로 말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거나 연령이 어리거나 자식이라는 이유로 유무상의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 조치 등의 인권운동 이외에도 소년이 계급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부분에 대한 요구가 필요하다. 즉 소년에 대한 기본소득의 우선 적용, 현재 부모에게 일임되어 있는 소년의 거소를 친권자가 지정하는 거소지정권 등에 맞서는 소년주거권 등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조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주장하는 단체나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과 이를 사회 전체적으로 보장하는 참정권 운동도 계급운동에 중요한 요구사항이 될 것이다. 사회 전체에 대한 위와 같은 요구는 물론 사회 각 분야, 그리고 당연히 이를 추구하는 운동진영에서부터 요구해야 하는 사안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방정식에서 소년이 위치한 자리에 다른 부문을 대입해 보자. 1920년대의 어린이날 개최운동은 “늙은이”는 물론 “젊은이”마저도 뇌신경의 말초가 소멸됐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당시의 기존운동권의 계급감각을 비판하는 논리였으므로, 현재의 구도에서는 ‘권력에서 배제된 연령’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해야 할 것이므로 청년층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청년운동의 계급화는 청년기본소득의 우선 적용이나 대학등록금의 사회부담,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청년들이 주로 수행하고 있는 노동부문에 복지의 우선 순위를 주는 것 등이 포함될 것이다. 문화와 농업 부문에 대한 혜택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런 계급연대가 있었더라면 우리는 올해를 젊은 작가의 죽음으로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들을 산업간 자유경쟁의 컴퍼넌트로 보는 대신, 사회관계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는 계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계급 내에서도 환경의 차이보다 계급적 유대감을 먼저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한 시야가 있다면 부문의 발굴과 확장은 계급성의 혼탁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연대의 강화를 만드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다.

    6. 누가 할 것인가

    얼마 전, 진보신당의 대의원/전국의원 선거가 끝났다. ‘통합-독자’라는 거대한 선전문구에 가려지는 것 같긴 했지만, 다행이 장석준의 혁신진보정당 건설론에는 새롭게 조명해야 할 부문에 대한 운동전략에 대한 언급이 등장했다.

    장석준은 “1세대 민주노조운동의 유산에만 의존해온 기존 진보정당운동과 달리 혁신진보정당은 대중운동 자체의 재구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비정규직-정규직 연대, 여성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 국제주의를 중심으로 새 세대 진보운동을 일궈나가야 한다."(레디앙, 2011년 2월 14일 연정 노선 맞서 ‘혁신진보정당’ 건설을)고 언급했다.

    하지만 나는 이 같은 노선을 기존의 진보운동 주류나 주류를 담당한 세대가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는 90년대 이후에나 한국에 유입된 신좌파의 노선을 말하며, 그의 말처럼 ‘1세대 민주노조운동의 유산에 의존하는 기존 진보정당운동’에서 이러한 부문은 여전히 진보진영의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거 역시 기존의 통합논의를 이행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결과를 보여줬다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이들에게는 통합 이후에도 ‘혁신노선’을 선택하기 전에 선결되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남아있을 것이다.

    진보세력이라면 그 누구라도 2012년을 무게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까지의 길은 2012년을 기점으로 시작될 길에 대한 하나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주체들이 조직적으로 그들의 의제를 들고 정당에 자리를 잡거나 초당적으로, 그러나 할 말을 똑바로 외치며 시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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