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품 가게, 인사동 습격하다
    By mywank
        2011년 02월 21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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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공예품점·골동품점 등 ‘전통상점’이 밀집한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최근 우리의 전통문화와는 거리가 먼 화장품 가게들이 집중적으로 입점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화장품거리’로 변한 인사동

    인사동 거리는 지난 2002년 서울시가 ‘문화진흥예술법’을 근거로 ‘서울특별시 문화지구 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문화지구’로 지정됐으며, 이곳에서는 단란주점, 유흥주점,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등 식품접객업과 복권판매나 기타 도박성 업체 같은 사행행위업은 입점이 법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서울시의 관련 조례에서 화장품 가게(자유업종)는 ‘입점 제한’ 대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최근 인사동거리에 입점한 유명 화장품 업체들 (사진=손기영 기자)

    한편 관련 지자체 조례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문화지구 성격에 맞지 않는 상점(지구단위계획 용도 이외의 상점)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법)을 통해서 입점 제한이 가능하다.

    하지만 종로2가 방면의 남인사마당에서 인사동사거리를 거쳐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방면의 북인사마당까지 이어진 인사동 거리 중에, 남인사마당에서 인사동사거리 구간은 지난 1978년에 재개발 지역(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상태여서 ‘국토법’의 적용도 불가능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2009년부터 화장품 가게들이 인사동거리의 남인사당에서 인사동사거리 구간에만 집중적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16일 저녁 찾아간 인사동 거리의 해당 구간에는 ‘아리따움’, ‘더 페이스 샵’, ‘미샤’, ‘에뛰드 하우스’, ‘네이쳐 리퍼블릭’, ‘토니모리’ 등 9개의 유명 화장품 업체의 브랜드들이 ‘가맹점’ 형식으로 들어선 상태였다.

    거액 권리금 받고, 가게 자리 내줘

    종로2가 방면 남인사마당을 통해 인사동 거리를 찾을 경우, 인사동사거리 부근까지 대로 주변을 따라 약 10~30m 간격으로 화장품 가게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또 화장품 가게가 들어선 자리는 대부분 이전에 부채, 붓, 칼 등 민속공예품을 팔던 전통상점이었으며, 권리금이 4천만 원 수준이던 한 전통상점의 경우 업체 측으로부터 6억 원의 권리금을 받고 자리를 내줬다고 이곳 상인들을 전하기도 했다.

    인사동사거리 부근에서 생활 도자기를 팔던 상인 김영국 씨(67)는 “오늘도 물건을 10만 원 정도밖에 팔지 못했다. 물건을 사러 가게에 오는 손님보다, 길을 물으러 오는 분들이 많을 정도”라며 “주변에서 장사가 잘 안 되는 전통상점들이 적지 않은데, 화장품 업체 측에서 몇 배에 달하는 권리금을 제시하면 상인들이 돈을 받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곳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인사동 거리에 있는 ‘전통상점들’ (사진=손기영 기자)
       
      ▲인사동에서 생활도자기를 팔던 상인 김영국 씨(오른편)와 그의 형수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또 “인사동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이를 국내외 사람들에게 알기 위한 장소인데, 화장품은 아무래도 전통문화와 거리가 멀지 않느냐. 화장품 가게들이 인사동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부나 서울시, 구청 측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옆에 있던 김 씨의 형수도 “한두 곳 정도 들어오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들어오니까 인사동거리가 ‘화장품거리’가 돼 버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화장품 가게들의 인사동 입점 문제와 관련해, 남인사마당 부근에서 금속공예품을 팔던 상인 이영무 씨(53)씨도 “물론 시대적인 흐름은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사동을 아끼지 않은 것 같고 물질만능주의가 인사동까지 침투한 결과”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지난 16일 저녁 인사동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대부분 화장품 가게 입점에,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아들과 함께 인사동 화랑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던 윤지영 씨(38)는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인사동 거리까지 들어와서 화장품을 팔 필요가 있느냐”며 “차라리 다른 업종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로 인사동 상권을 특화시키는 게 더욱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며 생각을 밝혔다.

    한국인 사업자와 함께 인사동 거리를 찾은 영국인 존 루이스 씨(40)는 “지금 인사동 거리를 10여m 정도 걸었는데 너무 좋았다. 하지만 화장품 가게 등 ‘현대적인 상점’은 다른 곳에 가더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종종 외국을 방문하게 되면,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인사동 거리를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독특한 거리’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그 지역만의 풍경이 매력적"

    오랜만에 인사동 거리를 찾은 뒤, 이전과 달라진 풍경에 당혹감을 나타내는 시민도 있었다. 최태원 씨(34)는 “2년 만에 인사동을 찾았는데, 예전과는 달리 화장품 가게들이 많이 생겨서 좀 놀랐다. 인사동의 풍경이 달라진 것 같고, 화장품 가게는 이곳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사동 거리를 관할하는 자치구인 종로구청 측은 화장품 업체들의 무분별한 입점을 제한할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종로구청 문화공보과 관계자는 <레디앙>과의 전화통화에서 개인 입장을 전제로 “현재 인사동 남인사마당부터 인사동사거리 구간에서, 화장품 가게 입점을 제한하고 행정조치를 내리려고 해도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존의 법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문화지구 관리특별법’이라도 시급히 제정돼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제재 수단을 갖고 화장품 가게 입점 제한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에는 지난 2002년 인사동 거리와 2005년 대학로 등 2곳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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