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조선은 남한의 스승이었다?
        2011년 02월 18일 11: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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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보수 일간지와 국내 보수 일간지를 비교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아무리 같은 보수라 해도, 노르웨이 보수는 파업하는 지하철 노동자들에 대해서 "시민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하기가 힘들어요. 그런 식으로 나오다가는 지하철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나머지 ‘시민들’마저도 그 보수 신문을 보지 않을 게 하도 뻔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우파신문들의 북조선 보도

    그런데 적어도 한 가지 차원에서는 노르웨이 보수 신문들도, 국내 보수 신문들도, 그리고 세계 대다수의 ‘주류’ 언론들도 상당한 유사함을 과시합니다. 그들 모두가 북조선을 희화화하는 것을 특기이자 주된 판매 전략 중의 하나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방법에 있어서는 또 상당한 차이가 발견됩니다.

    남한의 경우에는, 멸시와 희화화는 꼭 증오와 뒤섞여 있는 것이지만, 노르웨이 보수 신문들은 그저 "세계와 담을 쌓아 사는, 옛날 왕과 같은 독재자가 다스리는 아시아 국가"를 이국화시키면서 "재미난 볼거리"로 삼는 것이죠.

    예를 들어 몇년 전에 노르웨이의 주요 보수 일간지 <아프텐보스텐>의 특파원은 평양에 정박돼 있는 미국 정탐선 <푸에블로>호를 방문해 그 기행문을 신문에 실었어요.

    제목은 ‘김 대좌가 미국을 이겼을 때에’였어요. "우리가 미제에 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안내원 ‘김 대좌’의 이야기를 유머화시켜서 "너네들이 정말 미국을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하하하"와 같은 표정을 은근히 짓는 것이죠.

    특파원이 기사 말미에 특필한 것은 "미국을 이겼다는 김 대좌"가 <푸에블로>호 안내 비용으로 10유로를 요구했다는 것에요. "미제를 이기는 것도 좋지만, 돈이 다 빠진 국고에 약간의 외화를 넣는 것도 무시 못할 일이죠?"와 같은 식으로 오슬로에서 10유로로 커피 한 잔 살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노르웨이 기자는 ‘김 대좌’의 자존심과 그 공화국의 빈곤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마는 것이죠.

    배부른자 오만 보면 북조선 민족주의 숭고해지기도

    정말이지, 배부른 자들의 이와 같은 오만을 목격할 때마다 차라리 극도로 호전적이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북조선식의 민족주의와 반제주의는 더 숭고하게 보이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민족주의에 문제제기할 수 있고 민족주의와 논쟁할 수 있지만, 배부른 자들의 오만을 보면 논쟁할 기분도 안나죠. 그저 역겨울 뿐입니다. 그러나 좌우간, 그 기사에서는 이국화와 오만은 느껴져도 별다른 증오심 따위는 없었습니다. 이 측면에서는 <조선일보>와 상당히 다르다고 봐야 하죠.

    그런데 한국을 ‘최첨단 기술의 나라’, ‘한류의 발상지’ 등으로 극찬하고 (그리고 물론 삼성과 엘지의 광고도 많이 많이 받는) 이들 국내외 보수 신문들이 북조선을 증오의 대상이 아니면 그저 단순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요?

    지금이야 상상이 잘 안가는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남한에 비해 분명히 경제력 등 종합 국력이 더 강했던 북조선은 양쪽 분단 국가들 사이의 경쟁에서 리드하고 있었어요. 지금이야 북조선의 연간 국내총생산(약 260억 달러)은 삼성전자 연간 수익의 약 5분의 1에 해당되지만, 적어도 유신시대 말기까지 남쪽 지배자들도 지식인 사회도 은근히 – 그리고 때로는 거의 노골적으로 – 이북을 참고하고 이북을 배우고 또는 이북을 ‘창조적으로’ 모방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렇게 하게끔 만들어주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양쪽 지배 체제의 공고화 과정이 상당 부분 병행했으며 서로 닮았다는 것이죠. 양쪽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형적으로 비슷한 궤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분단 체제의 구조적 특징이라면 특징이죠.

    예컨대 이북에서 남로당에 이어 소련파와 연안파 해체 과정이 거의 완료돼갔던 1958년에, 이남에서는 1956년 대선에서 23%의 표를 얻은 조봉암 선생의 진보당을 말살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북이 박헌영 등을 죽여가면서 ‘동구식 사회주의’라는 대안을 묻었듯이, 이남이 조봉암 등을 죽여가면서 공공성이 강한 국가  위주의 ‘제3세계형 사민주의’라는 대안을 매장시키고 말았습니다.

    남북 체제는 일란성 쌍둥이

    본인이 볼 줄 몰랐던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쓰여진 책들을 참고문헌으로 내세운 ‘학위 논문’을 제출하여 ‘박사님’이 된 이승만이 ‘총잡이’ 김일성을 멸시했지만, 양쪽 체제는 많은 측면에서는 일란성 쌍둥이이었습니다.

    1972년에 이남에서 유신체제가 선포되는 반면 이북에서 주체사상의 ‘유일화’가 이루어진 것은 과연 우연입니까? 크게 보자면 – 비록 정도의 차이 등은 있지만 – 1995~98년 이북의 대기근에 이은 부분적 시장경제 도입과 1997~1998년 환란 이후의 남한의 신자유주의화도 같은 거시적 과정(한반도에서의 개발국가식 조합주의의 위기와 시장주의로의 전환)의 일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북을 멸시한다면 결국 우리 자신들을 멸시하게 되는 꼴이죠.

    더군다나 1950~60년대에 이북이 이남과의 경쟁에서 완전한 리드를 해서 이남으로서 모방의 대상이 됐던 시절까지 생각해보면 더더욱도 멸시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소련,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민족적 자존심’을 살리고, 소련과 중국의 힘을 크게 빌렸던 새 정부의 민족주의적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던 이북은, 이미 1950년대 초반부터 국학 진흥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특히 주요 문헌(<조선왕조실록>, <고려사> 등등)의 쉽고 정확한 국역과 실학 등 ‘근대 맹아적’ 전통의 ‘재발견’에 주력했습니다.

    뭐, 다산이나 연암에 대해 ‘근대 맹아적’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근대지상주의적 견강부회의 측면이 강하지만, 좌우간 그 시의성 덕분에 <열하일기> 국역이 아주 잘 나와 지금 남쪽에서도 잘 읽혀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남쪽의 국역보다 <고려사>의 북역은 훨씬 읽을 만하고 정확하죠.

    이승만 정권이 이북의 이 성과들을 보면서도 아예 별다른 대응할 능력조차 없었지만 박정희는 겨우 1965년에 민족문화추진위원회를 문교부 산하에 두어 고전국역 사업을 좀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학 ‘재발견’의 중요성을 남쪽에서도 일찌감치 천관우 선생 등이 주장했지만, 특히 다산에 대한 본격적인 재조명이 이루어진 것은 이북보다 훨씬 늦은 1970~80년대입니다.

    ‘이북 따라잡기’ 진땀빼다

    뭐, 개인적 회상을 이야기해보자면, 제가 학생 시절에 향가 연구의 권위자이었던 지도 교수의 강요(?)로 <악학궤범>을 봐야 했는데, 당연히 1956년 북역으로 봤습니다. 1980년에 ‘민추’에서 뒤늦게 낸 본역본보다 훨씬 보기가 쉽고 정확하다는 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학은 그렇다 치고, 1960~70년대의 이남은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면에서 이북을 ‘따라잡기’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박정희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들은 만주국 경험도 염두에 두었지만, 은근히 이북의 5개년계획을 능가해보자는 속셈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포항제철 건설 등 군수 공업의 기반이 될 철강 산업 진흥은 분명히 철강 생산이라는 전략적 부문에서 북한을 압도해보자는 계산 없이 그 추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는 이북이 꼭 먼저 발을 들여놓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이북의 핵무기가 문제된 것과 관련해서 기억해두어야 할 부분은, 김일성이 1959년에 소련과 핵연구 관련 협정을 맺은 것은 1956년 남한과 미국의 핵 협력 관련 협정에 대해 알고 남한에 의해 압도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미있게도 핵과 원자력의 분야에서는 오히려 남한은 처음에 훨씬 더 많은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컨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국학 등 연구를 국가의 직접적 지원 및 통제 밑에 두는 데에 있어서는, 1978년에 창립된 이남의 정신문화연구원은 분명히 이미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이북의 사회과학원을 은근히 벤치마킹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들으면 자존심 상할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이남과 이북은 한반도적 근대성의 많은 성취(예컨대 문맹 퇴치 등)도, 많은 비극들(특히 전 사회의 병영화)도 같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데에 서로 지원해주는 게 정상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정상적 세계에서 살지 못하는 것,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정상적 사고를 보유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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