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복지강령은 "독점재벌 국유화"
        2011년 02월 16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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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근 복지논쟁의 전면화는 한국 진보진영의 공로

    최근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그간 사회운동 일각에서 줄기차게 ‘복지’ 화제를 제기해온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보수야당인 민주당도 이번엔 일찍부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재미있는 것은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도 ‘박근혜식 복지’니 하면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복지 메뉴야 "의약품 리베이트, 실종아동, 다문화가족" 등 별반 돈 안드는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떻든 이번 복지논쟁이 그 어느 때와는 달리 제법 뜨겁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처럼 이번 복지논쟁은 제도권의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공통의 화제라는 점에서 과거 어느 때와는 다르다. 이전에도 몇몇 정당이나 정파들이 복지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선거를 무려 1년 이상 앞둔 시점에서 자신들의 주요한 선거공약으로 미리부터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영향력 있는 대부분의 정치세력들이 이렇듯 복지논쟁에 뛰어드는 것과 관련하여, 각자의 정치적 의도나 복지강령의 성실성 여부는 둘째 치고라도, 필자는 일단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간 우리 사회는 너무도 오랫동안 항상 경제성장의 논리에 밀리어 복지문제는 아무래도 부차적인 자리로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현재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내용상으로 볼 경우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양육" 등 서구사회에선 이미 60여 년 전인 2차 대전 직후 제기된 바 있는 현대 사회의 초보적인 공공복지이념에 기초한 것이다. 또 지정된 보험료 납부라는 일정한 의무를 수행해야 만하는 사실상 제한적 복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이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이라는 인류의 궁극적인 이상사회 실현을 향한 발걸음에 있어 갖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는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듯 역사적 의미를 갖는 복지 논쟁이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을 통해 제출된 ‘무상급식’ 논쟁으로부터 발단됐던 사실을 감안할 때, 금번 복지논쟁의 전면화는 순수하게 한국 진보진영의 공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부유세’로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는가?

    필자는 최근의 복지논쟁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자칫 선거용의 일회성 복지논쟁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진보진영의 정당들을 포함하여 각 정치세력들이 주장하는 실천방안들을 보면, "과연 저렇게 해서 복지국가가 이루어 질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지을 수 없다.

    보수야당인 민주당의 경우, 앞으로 예견되는 부유층의 반발을 고려한 듯 손학규 대표는 소위 ‘창조형 복지국가’ 건설을 운운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국가 구현"이라는 정말 ‘창조적인’ 복지명제를 내세우고 나왔다.

    이에 대해 같은 당 최고위원인 정동영 의원은 "순자산 30억원 이상 보유자와 1조원 이상 보유 법인에 자산 1~2%를 세금으로 부과하자"는 파격적인 부유세의 신설을 주장하면서, 당내 유력한 대선주자로서의 차별화에 나섰다. 이쯤 되면 이미 상당히 진보진영과 가까워진 셈이다. 아니 거의 차별이 없어졌다고 보아야겠다. 왜냐하면 현재의 진보진영 내 어느 정파도 복지국가 건설을 위하여 ‘부유세’ 신설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진영의 분위기를 보면 부유세나 세율조정을 통해 증세만 이루어지면 마치 ‘보편적 복지’ 실현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증세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가 현 시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현재 진보진영 내에서 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대부분 서유럽의 앞선 복지국가들의 경험적 사례들이다. 진보신당의 김정진 부대표(조세 전문 변호사)는, "EU 15개국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한국과 GDP 대비로 약 10% 이상 차이가 나는데, 이것은 어림잡아 계산해도 1년에 100조에 달하는 금액이다. 결국 유럽 수준의 복지를 하려고 하면 한국의 경우 최소한 1년에 100조에 달하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증세론을 뒷받침한다.

    한국이 EU국가만큼 조세부담률을 높이면 그들과 같은 수준의 복지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그들 국가들의 상당부분은 실업률이 거의 항상적으로 7~8%를 넘어서 대충 10명 중의 한명은 실업자고, 또 그들의 국가 부채 수준도 날이 갈수록 우려를 자아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사정이 있기에 EU국가들의 소위 "그들 수준의 복지"는 고정된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수정 변화의 과정 속에 있으며, 그것도 신자유주의 논리에 계속해서 밀리면서 앞으로 재정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복지비용이 날로 축소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악화’의 길을 갈 것이 예측되는 복지인 것이다.

    때문에 현재 한국 진보진영이 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를 실현코자 하는 노선은, 무엇보다도 파산한(혹은 파산하고 있는)서유럽 국가들과 인구 및 자원 등에 있어 특수한 조건을 갖는 북유럽의 몇 개 소국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3. ‘재벌 주도 경제’라는 한국적 현실

    "증세를 통한 복지국가 실현" 주장이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은, 이들이 한국 경제의 현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경제 현실의 최대의 특징은 재벌 주도 경제, 즉 "30대 재벌 매출액이 GDP의 80%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우리 증세론자들이 ‘증세’를 통해 한국도 서구와 같은 복지국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증세’의 물적 기반은 바로 이 같은 재벌 주도 경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듯 “GDP대비 80%” 매출액을 갖고 한국경제의 전체 분업구조를 사실상 ‘총화’하고 있는 재벌그룹 자산이 결코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의 공동자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엄연한 사유자산이며, 그것도 비율로 볼 때 한국 전체 국민 중 얼마 되지 않은 주주들과 외국인 주주들의 소유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단지 4.8%의 지분율(2010년 기준, 재벌닷컴)만을 가지고 있는 30대 재벌 총수가에 의하여 경영권이 확실하게 장악되어 있는 ‘그들’만의 자산인 것이다.

    이렇듯 국민경제 분업구조의 대부분을 포괄할 수 있는 매출규모와 핵심전략적인 산업부문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이것이 극소수 지분율의 총수가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재벌경제는 필연적으로 한국경제 전체를 ‘재벌내부경제’와 ‘재벌외부경제’ 두 개의 부문으로 이원화한다.

    이 ‘이원화’에는 전자에 의한 후자의 지배와 수탈, 소수의 부유집단과 대비되는 절대 다수의 빈곤화, "자본간 세계시장경쟁 전면화" 시대에 있어 대외의존성 심화, 약탈적 하청관계와 ‘비효율성’의 경제(30대재벌의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계열사는 702개에서 1069개로 367개나 ‘폭증’하였다)와 같이 현재 한국경제와 사회일반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차별과 불평등의 원천적 내용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현재의 한국경제의 기본적 특성이다. 이러한 ‘재벌 주도 경제’라는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복지논쟁도 허상에 불과하며, 아무리 그럴듯하게 짜놓은 복지망도 이 같은 재벌주도경제의 이원화 구조가 만들어 놓는 사회적 불평등 앞에 무력화 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복지정책 실패경험의 근본 원인을 뒤 돌아 보아야 한다)

       
      ▲중국 국무원 ‘전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회의 모습. 

    4. 현 시기 진정한 복지강령은 ‘독점재벌 국유화’

    필자는 현재의 ‘재벌 주도 경제’를 ‘국유기업 주도 경제’로 재편하는 것을 통해서만이 현재의 고질적인 한국병을 하나씩 고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재벌국유화를 통해 현재 극소수 재벌 총수가와 노동계급의 4%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바꾸어서, 전체 국민이 경제과실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독점재벌이 점유하고 있는 핵심 생산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초과이윤은 그간 우리 한국 국민 전체의 피와 땀의 공통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를 복지재원으로 돌려 전 국민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기존 독점재벌의 초과이윤의 국고화를 통해 마련된 재정을 통해 교육 및 인적자원개발에 힘을 기울임으로써 지금의 왜곡된 교육현실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회발전 원동력을 폭넓게 키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과도한 사교육비와 상위 5%만을 위한 왜곡된 교육은 재벌 주도 경제의 사회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근시안적 편식 취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혹자는 현재의 ‘재벌 주도 경제’를 ‘국유기업 주도 경제’로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 과거 실패했던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주도주체를 ‘재벌’에서 ‘국유기업’으로 바꾸자는 것이지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현 단계 한국경제가 갖는 생산력 수준을 감안할 때, 지금 당장 계획이 주도하는 경제를 실시하는 것은 무리이며, 시장경제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긍정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명제이며, 그 분명한 실례가 바로 현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경제이다. 중국은 지난 1978년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하여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한편, 국민경제에 있어 ‘국유기업의 주도성’ 원칙도 확고히 하였다.

    이러한 국유기업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그간의 중국경제의 안정적이고 장기간의 고속성장이 가능하였고, 또한 최근 급속히 완비되어 가고 있는 중국의 사회보장제도 건설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와 같은 요란한 ‘증세논쟁’ 없이도 그 진척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중국정부는 최근, 2009년 말 현재 도시공상의료보험, 도시저소득층의료보험, 농촌신합작의료보험 이상 3개 의료보험 망을 통해 13억 인구 대부분을 의료보험제도에 포괄시켰다고 공식발표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 운동에서 잘못 거론되고 있는 진보와 보수 기준 바로잡기를 제창하면서 이글을 마치고자 한다. 현 시기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은 ‘증세’에 대한 찬성 여부가 아니라, ‘독점재벌 국유화’강령에 대한 찬성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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