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스트 '청소학' 모임을 아시나요?
        2011년 02월 16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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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6일로 원직복직 요구 천막농성 10일째를 맞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분회(이하 키스티분회) 천막농성장에 지난 8일 카이스트 학생들이 찾아왔다. 카이스트 총학생회와 ‘청소부 아주머니들과 소통하는 모임(이하 청소학)’이라는 이색적 이름의 동아리 학생들이었다. 연구원과 카이스트는 같은 담벼락 안에 건물을 두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시설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는 공공연구노조 키스티분회는 작년 10월 노조를 만들었고 올해 초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해고됐다. 천막 바로 옆이 연구원이지만 출입은커녕 화장실 이용도 금지 당했고 카이스트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고 학생들이 쓰는 기숙사에서 세면을 해결하고 있다. 이 아름대운 연대는 모두 카이스트 학생들이 천막을 찾아와 진행된 즉석 간담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간담회 직후 정민채(41) 키스티 분회장과 허현호(21) ‘청소학’ 대표를 연달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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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채 분회장. 

    – 이곳 연구원에서 일한지는 얼마나 됐나요?
    = 12년이요. 보일러 관련 일을 하다가 건축 영선이라고 수리 일을 하고 있어요.

    – 12년을 그냥 살다가 왜 노조를 만드셨어요? 노조 만들어서 해고된 거 아닌가요?
    = 노조 만들었다고 해고될 줄을 몰랐죠.(웃음) 노조 만들기 전에 우리 입은 밥만 먹는 입이었어요. 불만이 있어도 말할 줄 몰랐고, 우리 업무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소장이 시키면 그냥 그게 ‘우리 일’이었어요.”

    – 다른 조합원들도 물어보니 소장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던데, 어떤 사람이었나요?
    = 업체가 바뀌어도 소장은 1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야말로 무소불위 권력이었죠. 한번은 주간근무 직원 중 한 명이 낮에 안경을 고치러 나간다고 하니까 못 가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나중에 야간근무할 때 가면 되지 않느냐면서 좀 대들었나 봐요. 그 친구는 그 이후로는 야간근무는 한 번도 배정 못 받았어요. 저번은 또 누가 파마를 하고 왔더니 보기 싫다고 소장이 막 뭐라고 하는 거예요. 다음날 바로 스포츠로 깎고 왔더군요.”

    12년 직장, 짐도 못 찾고 쫓겨나

    – 인격적으로 모독도 많이 당하신 거 같은데 왜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 드물게 있기도 했는데, 소장한테 항의하고 오면 어김없이 며칠 있다 회사를 그만뒀어요. 여기가 맘에 안 들면 나가라고 하고 내년에 계약 안 될 거라고 협박하는데 누가 버텨요.

    – 해고통보는 어떻게 받으셨어요?
    = 통보도 없었어요. 용역업체가 바뀌고 해고될 거란 얘기가 떠돌아 공공연구노조 차원에서 연구원장 면담했는데 "노조를 없애면 고용승계 고려해 보마" 했다 해요. 면접 안 보면 빌미될까봐 우리는 면접도 봤어요.

    2월1일부터 새로 출근인데 1월 31일 아침에 합격자 명단이 붙었거든요. 거기에 명단이 빠져 있어서 해고된 것을 알았죠. 그리고 속상한 맘에 술들 한 잔씩 걸치고 퇴근시간 좀 지나 들어왔는데 기계실 출입문 비밀번호를 벌써 바꿨습디다. 12년 일했던 직장인데 짐도 못 찾고 그렇게 쫓겨났어요.

    – 12년 동안 용역업체 바뀌었어도 해고는 없었던 거잖아요?
    = 그럼요. 여기 다 짧게는 4∼5년, 길게는 12∼13년 일한 사람들이에요. 용역업체에 상관없이 매년 재계약 됐고 이전 용역업체인 태광실업에서는 3년이나 일했는걸요.”

    – 공공연구노조에서 유일한 하청비정규직 분회에요. 공공연구노조 조합원들이 연대는 많이 오나요?
    = 위원장님이랑 사무처들이 매일 교대로 천막농성을 같이 하세요. 저희 때문에 고생 많으시죠. 연구원들도 노조 하면 연구과제도 안주고 탄압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어요. 사실 비정규직 싸움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고 이전 싸워왔던 거랑 방식도 틀리고 하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실 거예요.

    다른 정규직 지부 싸울 때만큼 노조 안에서 연대가 많지 않다는 생각하면 섭섭할 때도 있지만, 간접고용제도를 만들어낸 게 정부잖아요. 책임은 정부한테 있고 사용자한테 있는 건데 원망의 화살을 우리 내부로 돌리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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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 농성장. 

    원직복직 싸움을 결의하고 천막을 치는 결정을 하기까지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싸우는 동안 생계비 문제며 동력 유지며 뭐하나 간단한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하루하루 지원군이 늘어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분회장은 투쟁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키스티분회 싸움에서 결정적 지원을 할 ‘우군’은 바로 카이스트 학생들이다. ‘청소부 아주머니들과 소통하는 모임’ 대표를 만났다.

    "청소 아줌마들한테 혼났어요"

    – 어떻게 천막에 오시게 됐어요?
    = 청소 아주머니들이나 설비 일 하시는 아저씨들 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시는 비정규직인데 저희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해서 왔어요. 사실 저기 국기게양대 뒤부터는 카이스트 땅이거든요.

    – 동아리가 참 특이해요. 이전 홍대 청소노동자 싸움에 연대 가면서 한번 언론에 회자되신 적 있죠? 어떻게 이런 동아리를 만들 생각을 했어요?
    = 학교에서 일하시는 청소아주머니들이 130명 정도 돼요. 다들 그러실 텐데 여기도 여건이 많이 열악하거든요. 식사하실 변변한 장소가 없어 청소도구함 넣는 좁은 방이나, 운동장 구석에서 식은 도시락을 드세요. 임금이나 노동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학생으로서의 역할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 휴게시설이 전혀 없나요?
    = 있는 건물도 있는데 키 높이보다도 낮고 좁아서 사실상 휴게공간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 동아리는 언제 만들어졌고 회원은 몇 명이에요?
    = 작년 10월 처음 모였으니 아직 신생 동아리에요. 이번 학기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려고 하고, 현재 회원이 10명인데 올해 새내기도 받을 계획입니다.

    – 그동안 어떤 활동들을 했어요?
    = 아주머니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려면 친목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일단 많이 찾아뵈었어요. 기숙사를 중심으로 해서 찾아다니면서 얼굴도 익히고 말씀도 듣고요. 지역 노동시민단체 분들 모시고 서울지역 청소노동자 조직화 성공사례에 관한 세미나도 한차례 했고요.

    – 아주머니들이 학생들하고 간담회 하면 뭐라고 하시던가요?
    = 화장실 변기 물을 왜 잘 안 내리나, 분리수거 좀 잘 해라 그런 질책이요.(웃음)

    노조 만들면 지지하기 위한 여론작업 필요

    – 세미나도 한 것 보니까 열악한 청소노동자들을 돕자는 봉사개념의 동아리는 아닌 것 같은데, 활동 방향이나 목표가 뭔가요?
    = 장기적으로는 조직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청소 아주머니들이 노조를 만들 시기가 올 거고, 그때 학생들이 지지 세력으로 있으면 큰 힘일 테니까요. 그럴려면 미리부터 학내 여론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요.

    – 키스티분회 싸움을 위해 특별히 계획하시는 일이라도?
    = 화장실 세면 등 우리가 제공해 드릴 수 있는 편의는 다 이용하시도록 할 거고요, 연구원에서 보이는 카이스트 땅 곳곳에 지지 현수막을 걸 거예요. 혹시라도 연구원에서 천막 철거 들어오면, 저기 몇 발자국만 옮기면 우리 학교 땅이에요. 거기로 옮겨서라도 천막 치시게 해야죠.

    키스티분회는 공공연구노조에서 유일한 하청노동자 분회다. 대다수가 정규직이고 연구원인 공공연구노조에서 하청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중앙위원회에서는 토론이 벌어졌고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았다.

    이들의 원직복직 투쟁이 패배한다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던 일부 중앙위원의 판단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증명으로 “노동자는 하나”라는 우리의 구호는 그만큼 공허해질 것이다. 키스티분회의 투쟁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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