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에 대한 무례, 불명예 바로잡아야
        2011년 02월 16일 08: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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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은 생로병사, 세상에 태어나고 나이 들어가면서 아픔을 겪다가 세상을 뜨는 것이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니만큼 이 커다란 고비들은 혼자만 알고 지내는 개인적 경험이되 대개 아는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기도 하고, 함께 걱정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지인들끼리의 경험으로 공유된다. 우리는 이를 경조사 또는 애경사라 일컫는다.

    고인에 대한 무례와 불명예 바로 잡아야

    한 젊은 작가가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1월 말이었다. 그런데 그이의 죽음이 세상을 떠나 장사를 치르고 난 다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 함께 애도하던 사람들 말고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적 ‘사건’이 되었다.

    최고은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소식을 들었고, 안타깝고 애달파했지만 느닷없이 별 상관없을 기자들이 ‘그이를 아는지, 원인이 굶어서 죽은 거라는데 내력을 아는지’ 물어왔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뉴스를 보고서야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짐작이 갔다.

    그 후로 고인과 알고 지내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게다가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글을 청탁받기도 했지만 말을 보태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거절해왔다. 그런데 뒤늦게 한마디 보태게 된 까닭은 고인에 대한 무례와 불명예는 바로 잡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 현실 사이에서 최고은은 죽어서도 안식에 들지 못하고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최고은은 굶어 죽은 것이 아니다. 지병이 있었고, 생활고를 겪기는 했지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동문들이 조위금을 걷어 장례에 보태고자 했으나 고인의 가족이 비용을 책임졌다. 고인의 가족은 오히려 뒤늦게 언론에서 들쑤시며 가뜩이나 슬픔에 잠긴 고인과 가족들을 욕보이자 조위금을 거절했다.

    젊디젊은 나이에 재능 있는 작가가 병고와 생활고를 겪다가 혼자 죽어가게 된 것은 현실적으로 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할 문제인 건 분명하다. 영화계가 판은 키우되 스탭들이 먹고 살만하지 않을 정도로 박한 대접을 한 것도 맞다.

    한겨레의 선정적 첫 보도

    자본주의 상업 시스템에서 한국 영화는 문화예술보다는 문화상품이 되어야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분배보다 성장을 선택하는 성과 지상주의, 대박 아니면 쪽박인 승자독식 구조, 작가보다는 스타를 원하는 대중적 문화소비 행태 속에 영화계는 일은 하되 그 일을 해서 살아가기에는 힘에 부치는 비정규직 스탭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겉으로는 화려함을, 속으로는 부실함을 키워 왔다.

    그런 환경에서 최고은이 죽었고, 한겨레신문이 뒤늦게 <“남는 밥좀 주오” 글 남기고 무명 영화작가 쓸쓸한 죽음>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그 죽음을 기사화했다. 여기서 사단이 났다. 글의 힘은 무섭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작가든 기자든 진실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고인의 지인에게 몇 마디 물어 본 내용을 바탕으로 쓴 첫 기사가 고인이 남긴 쪽지라며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라는 것이었고, 다른 언론사들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이 기사를 확대재생산했다.

    많은 사람들은 또 이 내용을 트위터며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실어 날랐다. 심지어 최고은의 부고를 들었으나 장례에 참석할 만큼은 가깝지 않았던 지인들조차 이 기사를 믿게 되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대로 분노와 고통,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문장 부호에서 큰 따옴표인 “ ”를 쓴다는 것은 어떤 말이나 글을 보태거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전하기로 한 약속이다. 그런데 기자는 어쩌자고 기사에 함부로 쪽지를 인용한답시고 저런 표현을 썼을까? 진실을 전하는 게 사명인 줄 알아야할 언론들은 또 어쩌자고 아무 고민 없이 그 기사를 그냥 받아 옮겼을까?

    뒤늦게 민중의 소리가 <故 최고은 작가는 ‘남는 밥 달라’고 한 적 없다>는 기사에서 고인이 남긴 쪽지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라는 것이 원글의 전문 내용이다.

    어려운 형편에서 ‘남는 밥’을 구걸하는 것과 ‘밀린 돈’을 받게 될 때까지 도움을 부탁하는 것은 다르다. 이것은 고인의 명예에 대한 것이다.

    강우석 감독의 부적절한 발언

    물론 이렇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대목을 밝힌다고 해서 최고은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파장이 무마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말과 글들이 쏟아졌다. 그 말과 글은 사실 뒤에 도사린 진실을 가리킨다.

    가령 강우석 감독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자신도 충격을 받았다며 강 감독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영화 스태프의 현실에 대해 사실 영화계가 다 수용하지 못할 만큼 너무나 많은 영화 인력이 공급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매년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인으로 꼽히고, 한참 잘 나가던 시절 2002년 ‘강우석 영화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사설 영화학교를 세우기도 했으며, ‘CJ 엔터테인먼트’, ‘쇼박스’와 더불어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제작 배급사 가운데 하나인 ‘시네마 서비스’ 대표로서 할 말이 아니다.

    영화판에서 ‘갑 중의 갑’인 사람인 ‘을’ 중에서도 미처 제대로 계약된 대가조차 정산 받지 못한 작가의 죽음 앞에서 과잉 인력 공급이 문제란다. 그러면서 자신도 한참 힘들었을 때 죽음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단다. 이건 대형 마트의 횡포를 막아달라는 영세 상인들에게 예전에 자신도 장사해 본 적이 있어서 어려운 거 다 안다면서 그래도 열심히 살면 된다는 대통령의 자세와 하나 다를 게 없다.

    한국 영화계의 문제는 투자, 제작, 배급을 수직계열화하고 스타 감독과 배우를 앞세워 멀티플렉스 상영시스템으로 상업적 가치가 있는 영화만 스크린에 걸리도록 만든 ‘갑’들의 권력이 파이는 키웠으되 사람은 짓밟는 구조를 지속해 온 데 있다.

    충무로는 아직 일제시대

    영화 한 편에 수십억에서 요즘은 백억 넘게도 투자된다. 그 돈이 제작 준비에서, 배우 출연료, 촬영, 후반 작업에서 마케팅, 배급에까지 두루 쓰인다 치고, 그 기간이 짧게는 대여섯 달에서 길게는 서너 해씩 걸린다고 해도 기껏 두어 시간 남짓한 길이의 영화 하나에 어지간한 중소기업 한 해 매출액에 맞먹는 돈이 들어가는데, 그 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힘이 들까?

    그 답은 바로 ‘충무로’에 있다. 충무로는 단순히 서울 중구의 한 축을 잇는 길의 이름이 아니라 임화수 이래 불합리와 부조리가 관행이 돼온 한국 영화계가 자리한 지점이다. 영화를 만드는 건 사람과 시스템이다. 한국 영화계의 시스템은 참으로 기묘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제시대의 척박한 관행으로 사람을 부린다.

    가령 처음 영화 현장에 참여하는 스탭이 받는 돈은 많아야 500만원, 아예 땡전 한 푼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대신에 밥은 먹여준다. 감독에게는 머슴처럼, 작업에 임해서는 막노동자처럼 일해야 하니 굶고서야 버틸 수 없다.

    제작 기간과 받는 액수는 전혀 상관이 없다. 휴일이고 밤샘이고 간에 초과 수당은 물론 없다. 한때는 벤처며 창투사의 자본이 흘러들어 영화판에 돈이 넘실댄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영화사가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절이나, 몇몇 메이저 위주로 투자, 제작, 배급까지 몽땅 정리된 지금까지 마찬가지다.

    그나마 스탭들이 기대하는 건 자신이 참여한 영화가 투자를 받게 되면 지급될 계약금, 제작이 완료되면 정산될 잔금, 흥행이 잘 되면 받을 수도 있을 보너스다. 이건 다 갑과 계약할 때 명시된 권리다.

    "밥은 먹고 다니냐?"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를 유행시키며 평단의 찬사도 받고, 흥행에서도 ‘대박’을 친 <살인의 추억>의 경우를 보자. 영화는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감독은 이후 안정되게 영화를 만들 기반을 닦았으며, 제작사는 큰 이익을 보았다. 그러나 스탭들은 이런 초대박 영화에 참여하고도 아무 보상을 받지 못했다.

    같은 제작사에서 같은 해 만들어진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과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 두 사람이 친구 사이인데, <지구를 지켜라>가 제작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자 감독들과 영화사 쪽에서 두 작품의 투자와 수익 배분을 묶어서 계약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로는 꽤 인정을 받았다고는 해도 장편 상업영화는 처음인 신인 감독의 작품이 투자 받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할 때, 먼저 영화계에서 자리를 확보해 좀더 투자를 끌어들이기 쉬운 위치에 있던 감독이 혼자 치고 나가지 않고 친구와 2인3각의 끈을 묶었다는 것은 퍽 아름답게 보일 수도 한다.

    결과적으로 <지구를 지켜라>는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에서 참패했고, <살인의 추억>은 손꼽히는 흥행성적으로 꽤 높은 수익을 거둬들였다. 영화사 쪽에서 보자면 밑질 것이 없는 장사를 한 셈이요, 감독들로서도 일단 작품성에서 인정을 받았으니 나름대로 잘 된 일이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다. 두 감독의 2인3각이라면 그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수익에 대한 것이요, 감독들과 영화사와의 협의도 계약당사자인 감독 대 회사에 국한된 것이지 직원이 아닌 대부분의 스탭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갑’의 세계

    영화 스탭들은 감독과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영화사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한다. 대부분의 영화 스탭들은 정규직이 아니라 각 영화 프로젝트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처지로, 최저생계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을 하면서 그나마 자기가 참여한 작품의 흥행이 잘될 때 받게 될 보너스가 마른 하늘에 단비처럼 고마운 돈인 사람들이다.

    가뜩이나 상후하박인 영화판 임금체계에서 전근대적인 도제 시스템에 묶여 각 파트별 책임자가 계약한 금액에서 적당히 나눠주는 대로 임금을 받든, 실질적으로는 도제 시스템에서 쪼개고 쪼개 받게 되는 액수나 별반 다를 것 없이 명목만 그럴싸한 개별계약으로 임금을 받든, 감독이나 기사들이 받는 보수와 나머지 수십 명의 스탭이 받는 보수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그런데 스탭들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감독들끼리의 친분과 영화사의 이상한 셈법이 버젓이 합의를 이루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스탭들은 작품 계약을 할 때 흥행 성적에 대한 아무런 인센티브 조항 없이 계약을 맺곤 하지만, 워낙 열악한 임금체계에서 흥행작의 경우 관례적으로 서운하지 않을 정도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은 그 옛날 주먹으로 영화계를 휘어잡던 임화수 시절부터 ‘만원사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던 일이었다. 이쯤 되면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가 우연히 불거져 나온 배우의 기막힌 애드리브가 아니라 뼈에 사무치는 고발처럼 들린다.

    <살인의 추억>과 <지구를 지켜라>를 묶어서 위험부담은 줄이고 수익성은 높인 영화사의 전략은 이후 모범 사례가 되어 ‘버킷 시스템’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관례화되었고, 계약금 이외의 보너스를 받을 기회는 더욱 적어졌다. 그리고 강우석 감독이 언급했듯 영화계의 물 좋던 시절이 가고 영화를 하고자 하는 인력이 늘어나도 ‘갑’의 세계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은의 죽음을 두고 또 엉뚱한 논쟁이 불거졌다. 소설가이자 고인이 다녔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기도 한 작가 김영하와 소조라는 닉네임을 쓰는 평론가 조영일이 신춘문예 등단제도를 둘러싸고 작가 지망생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히며 시작된 논쟁 때문이었다.

    파이가 커져도 굶주리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작가의 정체성’에 관한 문학논쟁 와중에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을 두고 예술가의 생존에 대한 책임을 따지게 되었고, 김영하는 문화계는 원래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처지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소조는 이 입장에 대해 예술은 운동이라며 영화계 스스로 불공정한 관행을 고치기 전까지는 절대 한국영화를 보지 말자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극단적 대응으로 맞섰다.

    평론가 소조는 여성작가를 생계형 작가와 예술형 작가로 나누어보는 성차별적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고, 소설가 김영하는 논쟁 중에 최고은과 함께 제자 출신 작가로 지목한 소설가 김사과로부터 낭만주의적 엘리트 작가관에 대해 지적을 받자 자신이 최고은을 직접 가르쳤으며, 사인이 아사가 아니라 병사라는 것을 밝히면서 인터넷 절필 선언을 하는 생뚱맞은 결말을 맺게 되었다. 그러면서 김영하가 밝힌 건 ‘사실’이지만 묻어둔 것은 ‘현실’이다.

    이 논쟁에서 다시 사람들이 묻기 시작한다. 사인이 정말 뭐냐고. 이런 질문에서는 ‘작가의 정체성’이나 ‘예술가의 생존에 대한 책임’ 같은 건 문제가 안 된다. 처음 최고은의 죽음을 ‘굶어죽은 것’이라는 선정성으로 공론화시킨 언론은 다시 시끄러워진다. 언론이 파헤치려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에 대한 반성은 없다.

    ‘파이’가 커져도 굶주리는 사람이 여전하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 이름이 오르는 몇몇 사람들 말고, 관객들이 떠난 다음 비로소 엔딩 타이틀에 이름 석 자를 흘리는 수많은 스탭들을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충무로’, 그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 한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세상을 뜬 최고은의 죽음을 두고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묻든, 자신의 논쟁을 유리하게 만들 예로 끌어들이든, 현재 처한 위치에서 각자의 입장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도와 반성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현실을 바꾸도록 싸워나가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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