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주의=인류의 적, 분노하라
        2011년 02월 12일 0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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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판 에셀. 

    책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어색한 29쪽(부록을 제외하면 13쪽)짜리 초미니책자 『분노하라』(Indignez-vous)로 연초 프랑스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발간 3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린 이 작은 책은, 유명한 작가가 쓴 것도, 흥미진진한 소설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나의 정치 팜플렛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시선, 놀라운 통찰력을 자랑한다고도 할 수도 없는, 좌파 진영에서 익히 보아 오던 세계인식과 제안들을 담고 있다.

    95세, 불가능한 꿈꾸는 리얼리스트 

    책장에 꽂아두면, 잘 찾을 수도 없을 만큼 얇은 이 책을 둘러싸고 빚어진, 폭발적인 현상의 원인은 뭘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 분노하라!"고 말하고 나서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는 저 남자는 누군가.

    스테판 에셀. 1917년 생. 우리 나이로 95세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리얼리스트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지니며, 칼끝 같이 명료한 어휘로 온 세상을 선동하고, 각종 방송과 강연에 불려 다니며, 확고한 대중적 스타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놀라운 남자다.

    유태계 독일인으로 번역가이자 작가인 아버지와 프러시아 은행가 집안의 딸로 태어나 화가로 살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걸작, <쥴과 짐(Jule et Jim>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영화대로라면, 그의 어머니와 어머니를 사랑한 두 남자, 즉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친구가 함께 한집에 동거하며 사랑을 공유한다. 지적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는, 에꼴 노말(파리고등사범학교)을 다니다가 레지스탕스 운동에 뛰어든,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경성제국대에 다니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엘리트 청년이다.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처럼, 나라를 구하느라, 가족과 개인의 입신양명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그리하여, 3대가 가난해야 했던 고통의 훈장을 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레지스탕스는 승리했고, 그들의 정신은 그대로 해방된 승전국 프랑스가 건설하는 새로운 사회에 녹아 들었다.

    그는 외교관으로 일했고, 유엔에서 일하면서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인권선언이 천명하는 인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면 누구나 그 사실에 분노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은퇴 후의 또 다른 긴 삶을 손자만 돌보며 온화한 미소를 짓는 노인으로 보내지 않고, 사회운동가로, 활동가로, 환경운동가로 살았다.

    "분노는 내 삶의 원동력"

    그는 자신의 책 『분노하라』에서, 청년시절 나치에 분노했고, 그리하여 그 분노의 힘으로 역사의 한 흐름에 참여하는 운동가가 되었음을, 그것이 바로 자신을 역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했던 줄기찬 삶의 원동력이었음을 환기시킨다.

    그는 독자들에게 ‘분노’야말로 우리의 뺨을 끊임없이 후려갈기며 모욕에 굴복할 것을 강요하는 지금의 세상을 극복하게 하는 첫번째 무기임을 확신에 찬 어조로 전한다. 스테판 에셀이 지목하는 현세계의 주적은 금융자본주의며,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정치권력이다.

    스테판 에셀에 의해 금융자본주의는 2차 대전 무렵, 나치가 누렸던 명백한 인류의 적이라는 지위를 부여 받는다. 길게 선동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 둘을 등치시킬 수 있는 능력, 마치 처음들은 얘기처럼, 이 당연한 논리를, 귀 닫고 있던 많은 이들의 귀로 흘려 보낼 수 있는 있던 데서 스테판 에셀의 힘은 발견된다.

    나치에 의해 학살되던 유태인들과 동성애자, 정신이상자, 집시들… 그 광적인 인종 청소의 욕망에 저항하는 것은 명백한 정의였고, 타협하거나 유보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세상에는 인간을 저속한 자본에의 종속에 굴복하게 만드는 금융자본주의를 인류의 주적으로 간주하길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

    자본을 위한 무한 자유를 위해, 인류가 자신들의 자유와 존엄과 생명을 조금씩 헌납해야 하는 신자유주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세계적인 조류이며, 그러지 않았다간 구한말 때 그러했듯이, 역사에서 뒤쳐지고 만다고 믿은 사람은 어리석은 백성들뿐 아니라, 주류언론으로부터 좌파의 누명을 써왔던 두 전직 대통령들이기도 했다.

    악몽의 사크코지 시대를 낳은 것

    상황은 프랑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식 사회 모델을 따라가지 못해 안달하는 사르코지가 집권하는 현상, 여전히 사회주의 시스템이 곳곳에 남아 있는 프랑스에서 그 모든 구시대(?)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이 발전이며 진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은 악몽의 사르코지 시대를 낳았다. 모두들 뒤통수를 크게 맞고 있는 중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스테판 에셀은 말했던 것이다.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천박한 자본의 힘에 우리를 굴복시키려 하는 권력을 향해 분노하시라고. 그 분노의 힘으로 내 삶을 그리고 시대를 움켜쥐고 나갈 힘의 동력을 발견하라고.

    그는 그가 살아낸 모든 시대에 주류였다. 그는 최고의 엘리트였다. 드골과 함께 나치에 저항했고, 외교관이었으며, 유엔에서 일했다. 현직 우편배달부이자, 반자본주의 신당의 대변인인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같은 말을 했다면, 사람들은 똑같이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자본에 대한 저항을 자신들이 속한 계급의 승리, 부자들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는 시선은 브장스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청중의 수를 제한시킨다. 골이 더 뚜렷해 지는 계급사회에서 스테판 에셀의 메시지가 오히려 중도와 우파진영을 맹숭맹숭 부유하던 독자들을 포섭하는 현상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프랑스식 21세기 자기계발서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단연, 론다 번의 『시크릿』이었다. 사람들은 고통과 환멸이 도처에 널려있는 신자유주의 세상을 저마다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그 책을 들고 그 안에서 마법의 주문을 찾아 헤맸다.

    4년쯤 전, 시내 대형서점에 초코렛 상자로 쌓아 놓은 피사의 탑처럼, 입구에 쌓아놓은 『시크릿』 탑을 보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제 드디어 ‘비밀’을 알았는데, 왜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건지.

    성경 말씀에 나오는 모든 경구들을 다시 그럴 듯하게 풀어 쓴 듯한 이 초코렛을 닮은 책은 –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하는 것을 우주에게 주문하고, 이미 받았다고 믿고, 감사해 하라. 만약 이뤄지지 않았다면, 믿음이 부족한 탓. 감사함이 부족한 탓. 내 탓일 뿐이라 – 고 속삭여 준다.

    지난 연말부터, 프랑스의 서점 계산대에 계산 직전, 덤으로 집어 드는 껌처럼 쌓여 있던, 이 나라 베스트셀러는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긍정하고 감사하라고 한결같이 말해주고 있는, 미국산 자기계발서와 달리 "분노하라"고 선동한다.

    미국 발 메시지가 "안되면 네 탓"이라는 건데, 여기선, 세상이 잘 안 돌아가면, 각자 분노할 대상을 찾고, 그 분노를 밑거름 삼아, 분노의 대상을 향한 행동을 연대하여 개시할 것을 주문한다. 그래도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해 예를 들어주기도 한다. 집시들을 추방한 프랑스 정부의 야만, 점령당한 가자 지구에 의료, 식료품을 전달하는 배를 향해 포격한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우린 당연히 분노를 느껴야 한다고 설명해준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모두의 주적을 지목하고, 그가 분노했던 또 다른 대목들을 알려준다. 분노는 사회적인 소명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면서, 권력자에 의해 던져진 삶에 이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인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명확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갈수록 살아가기 힘들어지는 세상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대답은 각자 찾으라며 유유히 사라지는 많은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줄기차게 대안을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모든 시대에, 모든 인간들의 사회엔 분노할 거리가 가득 차 있었음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다만 분노를 동력으로 세상을 다수를 위한 것으로 바로잡는 시대와, 소수의 권력에 굴종하며, 살아가는 암흑의 시대가 있었을 뿐임을.

    후폭풍

    책이 정신없이 팔려나가면서, 그는 2011년 프랑스의 대중심리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고, 놀라운 사회 현상이 되면서, 에셀은 각종 미디어에 얼굴을 내민다. 거의 모든 언론이 수차례에 걸쳐, ‘분노’를 특집으로 다루고, 1면에는 끊임없이 분노를 패러디한 머릿기사를 뽑아냈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를 이야기 하다가, 서로 각자의 분노를 이야기 하고, 분노하고 싶은데, 무엇에 대해 분노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분노할 거리를 쇼핑 품목처럼 쏟아냈다. 체 게바라의 초상을 티셔츠, 가방에 얹어, 혁명마저 팬시상품으로 팔아먹는 자본주의의 간교함이, 스테판 에셀의 분노마저, 분노놀이로 순식간에 뒤바꿔버렸다는 느낌에 많은 이들이 접속했던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의 책이 담고 있는 강력한 메시지와 무관하게, Canal+ 같은 상업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에셀의 태도는 분노 신드롬에 대한 급격한 피로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이토록 급속도로 번지는 불가해한 대중적 폭발에 후폭풍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격의 화살은 양쪽에서 날아왔다. 확연하게 왼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가 여전히 사회당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과 사회당 대표, 마르틴 오브리에게 지지를 표명한 것을 두고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이미 반자본주의신당(Nouveau Parti Anticapitaliste)이라는, 당의 정체성을 금융자본주의 배격에 두는 정당이 있을 정도로, 이 사회의 주적을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는 자본의 힘에 두고 있는 집단이 왕성히 존재하며, 그가 했던 이야기는 수천번 반복된 이야기일 뿐, 아무런 새로운 시각도, 놀랍운 통찰도 찾아볼 수 없다는 빈정거림도 터져 나왔다.

    스테판 에셀의 모순

    금융자본주의,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공격과 사회당에 대한 희망을 갖는 모습에는 상당히 모순이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미테랑의 사회당이 집권했던 80년대는, 프랑스가 급속도로 신자유주의화 한 시대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우파가 집권할 당시에, 차마 그들이 좌파의 반대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을, 미테랑과 조스팽은 그 누구의 반대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한국사회에서 김대중 정부 때 신자유주의 드라이브가 강행된 것과 비슷한 수순이다.

    80년대부터 90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영은행, 전화, 철도, 가스, 전기들은 서로 앞다투어 민영화의 길을 간다. 미테랑의 우향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좌파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집권 직후"였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테랑이 단지 권력을 위해 사회주의의 가면을 잠시 빌려쓰고 있었음을 안다.

    자크 시락이 재선되었던 것도, 사르코지가 당선되었던 것도, 제1야당 사회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회주의의 간판을 달고, 우파정당과 똑같은 행보를 걷는 사회당을 지지할 바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우파를 표방하는 놈들에게 표를 주고 만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일들이 여기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향해 분노하라면서, 여전히 사회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이 양반이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유태인들의 극렬한 비난

    또 하나의 극렬한 비난의 소리는 유태인들 집단에서 나왔다. 서구사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유태인들의 목소리는 강력하고, 집요하게 주류세계를 장악해 왔다. 스테판 에셀은 감히 지난해 이스라엘 정부가 행한 가자지구에서의 만행을 가차없이 공격했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에서 탈취해서 판매하는 농산물에 대한 보이코트 운동을 지지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맹비난이 쏟아졌다. "모가지를 당장 부러뜨리고 싶은…" 같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격렬한 문구들이 유태인 단체들, 소위 지식인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2차 대전 이후, 유태인을 비난하는 일은, 바로 나치를 옹호하는 것으로 급격히 과장되곤 했고, 이스라엘 정부가 점점 나치의 행태를 닮아가도, 그들을 비난하는 일에는 언제나 극렬한 비판, 심지어는 사회적 매장까지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유태인은 소수일지언정, 그들은 언론과 자본, 권력집단을 집요하게 장악하고 있어, 그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크게 들렸다. 그의 에꼴 노말에서의 강연이, 갑자기 취소된 것도, 유태인 단체의 압력에 학교가 굴복한 결과였다. 이러한 사태는 당연히 예견된 것이었고,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은 간명하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 민족이 드물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뿐"

    좌파들로부터의 반응이 시큰둥함이나 그저 투덜거리는 수준에 머물었다면, 유태인들의 강도 높은 비난은 오히려 스테판 에셀의 진가와 책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 주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유태인들이 이스라엘 정부의 모든 만행을 감싸고 돌면 돌수록, 나치의 인종주의와 유태인들의 선민주의가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같은 형태의 야만임을 입증해주는 결과를 낳는다.

    아버지가 유태인인 사실과 무관하게, 어리석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게 야만을 야만이라고 얘기하는 그의 태도는 유태들이 벌인 소란 속에서 더 빛났다.

    분노하고 싶어서 책을 사다

    왜 『분노하라』를 사람들은 샀던 것일까. 물론, 바로 그것, 분노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분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쌓여간다. 『프랑스는 이제 끝난 건가?』라는 표제의 책이 나올 정도로, 이 사회는 점점 안 굴러간다.

    ‘모노프리’라는 대형 슈퍼 체인에 가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찌그러든 자의 자괴감 혹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분노가 이글거린다. 자칫하다 이들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될까봐 극히 조심하며 계산대를 지나야만 한다. 수퍼마켓에 전시된 직원들의 얼굴은 프랑스 서민들의 표정을 그대로 대변한다.

    『분노하라』 신드롬이 반영해 주는 것은 분노할 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차마 분노할 수 없었던, 야성을 잃고, 두들겨 맞은 영혼을 질질 끌고 다니던 프랑스 사람들의 상태를 잘 말해준다. 학교, 교사, 병원, 의사, 지하철 승무원, 우체국 직원 등의 숫자는 점점 줄어든다.

    허구헌날 열차는 고장 나고, 연착되며, 이빨이 아프면, 한 달 정도, 눈이 아프면 두 달을 기다려야 치료받을 수 있다. 아무리 사소한 행정적인 처리를 위해서도 끝도 없는 기다림과 줄에 나를 맡기고 도를 닦아야만 한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낙천적인 태도를 줄곧 지녀왔던, 이 나라 사람들은 격해지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 러시에 빠지기 시작했다. 프랑스텔레콤에 이어, 우체국에서도 연쇄자살이 이어진다. 지난해 가을 이어진 그 길고도 질겼던 파업과 집회에도 불구하고, 사르코지는 연금법 개악을 강행했다. 그리고도 자신의 멍청한 대신들과 친구들, 그들끼리의 손바닥 만한 계급의 이해를 위해 이리 저리 국고를 턴다. 사람들은 이제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다.

    북아프리카 혁명과 사르코지 정부 관료들

    그리하여 프랑스인들은 분노하고 있나? 아시다시피, 거대한 분노의 물결은 프랑스가 아니라, 지중해 남쪽 해안에서부터 격하게 불어왔다. 한 실업청년의 분신으로 촉발된 반정부의 물결이 거리를 뒤덮는가 싶더니, 벤 알리 대통령은 금궤들을 챙겨 달아났다.

    혁명이 일어났고, 그제서야, 지중해안에 하얀 집들이 눈부시던 저 튀니지란 나라에서 착해 보이던 튀니지 사람들은 폭정과 부패, 독재에 신음해 왔다는 것을 전세계는 알게 되었다.

    튀니지에서 혁명이 촉발될 무렵, 마침 튀니지 정부의 따뜻한 배려로 호화로운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고 있던 프랑스 외무부장관 미셸 알리오 마리(Michèle Alliot-Marie)는 벤 알리가 도망가기 이틀 전에, 튀니지에 프랑스 경찰력을 파견하여 독재정권을 도울 것을 제안하면서, 망신을 샀고 사퇴압력을 받았다.

    혁명의 도화선이 이집트로 옮겨 붙자, 프랑스 총리 피용(Fillon)은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제공한 비행기와 빌라에서 묵으며 호화로운 바캉스를 즐기고 왔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두 독재자들은 프랑스 정부의 친근한 협력자였고, 혁명이 일어나자, 갑자기 전 세계의 환호와 격려하는 분위기 속에, 이들은 갑자기 얼굴을 바꾸어 독재에 신음하던 두 나라 시민들의 봉기를 환영한다는 불편한 말바꾸기를 해야 했다.

    북 아프리카에 또 혁명이 일어나면, 사르코지 정부의 또 어떤 각료가 어떤 독재자의 배려로 편안한 휴식을 누렸는지 줄줄이 밝혀질 판국이다. 급기야 사르코지는 각료들의 해외여행을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다.

    『분노하라』를 프랑스인들이 열심히 사서 밑줄 치며 읽고 있을 때, 저 남쪽 아프리카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 움켜쥐기 시작했고, 그 상황에서 여전히 상황 파악 못하고 흥청대던 프랑스 각료들에 의해 프랑스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판사들의 불법 파업과 경찰노조의 지지

    2월 11일자 르몽드지는 "프랑스 중산층의 반란"을 1면 제목으로 뽑아냈다. 판사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낭트지역에서 일어난 유괴사건을 두고, 사르코지로부터 누범자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은 프랑스 판사들은, 버럭 화를 내면서, 파업에 들어갔고, 순식간에 전국 판사들에게로 파업은 확대되었다.

    지금 우리가 제대로 일할 수 없도록 자리를 줄여 놓은 게 누구인가? 판사들의 파업에 피용 총리가 지나친 행동이라고 한마디 거들자, "상황 파악 못하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이라며 바로 맞받아쳤다. 프랑스에선 판사들의 파업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법의 중재자 판사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권리는 법보다 위에 있다!" 그들은 재판을 계속 연기시키는 방식으로 파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수년간 임금 동결, 예산 삭감을 해온 정부측에 이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판사들의 파업 촉발한 낭트지역의 판사들.

    변호사 단체, 경찰노조들이 이에 적극 지지와 찬동의 움직을 보이고 있다. 1월에는 전국 학부모들이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교사와 학교 수를 줄이는 정부의 움직임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졌고, 교사들의 파업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공공의료를 파괴하려는 계획에 따라, 폐쇄되는 병원이 늘어나면서, 의사들과 병원 직원들의 집회도 계속 이어진다.

    머지않아, 사르코지도 끈끈한 우정을 나눠오던 북아프리카의 독재자들처럼, 짐을 꾸려 이 나라를 떠나야 할는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분노’가 이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키워드임을 알려준 스테판 에셀을 향해 긴 박수를 보내주어야 할 것. 그 때까지 더 오래오래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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