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사, 절망, 그리고 무간지옥
        2011년 02월 11일 10:0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고 최고은 작가의 아사(餓死) 이야기를 읽은 뒤로는, 거의 다른 생각을 해볼 틈없이 이 끔찍한 ‘아사’ 이미지는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불가피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사란 인류의 태생적 악몽과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행위들의 바탕에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라는 목적의식이 거의 언제나 깔려 있었습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무리를 지어 같이 사냥이나 경작, 가축을 기르는 일을 한 것이었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는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아사를 피하기 위한 인류의 행동

    사실, 자연경제와 같은 상황에서는 ‘아이’라는 것은 가장 확실한 노후연금의 형태죠. 인간에게 번식본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본능은 여타의 동물들과 달리 꼭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나의 인생을 즐겼다가 아이에 대해 신경쓸 것 없이 그저 깨끗하게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하는 이들을, 제가 제 주위에서부터 많이 보는 것입니다.

    단, 이들에게는 노후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가 아닌 다른 형태의 보장이 있기에, 이와 같은 세계관의 성립이 가능해집니다. ‘공동체’도, 그 핵심적 형태로서의 ‘가족’도 ‘아사로부터의 도피’ 수단이라면, 인간의 윤리도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근본 덕목은 효도(孝道)이었는데, 거기에서 화려한 수사를 제하고 알맹이를 벗기면 "너를 먹여준 너의 부모들을 죽을 때까지 잘 먹여주라, 굶어죽지 않게 하라", 이것입니다. 가부장적 사회와 착취적 국가에 필요한 형태를 취한 것은 유교적 효도지만, 그 핵심은 사실 백성들의 ‘굶어죽지 않기 위한 세대간 무언의 협약’ 정도였습니다.

    생산 수단을 그나마 소유했던 농민들을 노동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노동자로 만드는 ‘근대’를, 대중들이 많은 경우에는 왜 환영했습니까? 눈부시는 기술 발전이 아사라는 인류의 영원한 악몽을 퇴치시킬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 악몽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지금 북한도 자원과 기술적 발전의 한계로 이와 같은 측면이 남아 있지만, 한반도의 전통 사회는 ‘아사의 그림자’를 거의 벗어난 적은 없었습니다. 예컨대 엘리트들의 차원에서는 개화기는 ‘새로운 문화의 도래기’였지만, 기층 민중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아사 행렬이 오히려 호열자(콜레라) 등 외래 질병에 의해서 악화된 것이었다는 거죠.

    한반도 전통사회와 아사의 그림자

    새로운 문명이 도시로 도래하면서도, 값싼 외국 직물의 수입으로 인한 가내공업의 멸망과 쌀 수출로 인한 곡가 앙등 등으로 멍들어가는 조선 농촌에서는 아사는 계속 기승을 부렸죠. 개화기 매체들은 아사를 당연시하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흉년 때문에 약 400명의 백성이 최근 굶어죽었다고, 그저 간단히 적은 흥양군(전남) 군수의 보고가 게재된 1906년5월11일의 <황성신문>처럼, 단순히 사실보도하고 마는 것은 보통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개화 엘리트들이 무관심했다 해도, 백성들은 서로서로를 아사로부터 구하려고 대개 끝까지,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노력하곤 했습니다. 가족들이, 같은 마을 이웃들이, 문중 종인들이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3.1운동이 지난 뒤에 조선에 ‘사회’, ‘공공성’이라는 관념이 무대 중심에 서게 되고 나서 대중매체들이 아사 방지의 노력을 사회화했습니다. 예컨대 흉년으로 인해서 1925년 이른 봄에 전남 함평군에 아사의 위험이 발생하자 <동아일보>는 이를 신속히 보도하고(1925년2월10일) ‘사회’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회도 나서게 됐지만, 극도로 궁핍한 조선에서 아사가 그래도 비교적으로 드물고 예외적인 일일 수 있는 이유는, ‘가족’, ‘마을’이라는 핵심적인 ‘자연적’ 복지망이 그래도 여전히 강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원조와 가족이라는 보호막 덕분에, 극도로 무능하고 부패한 이승만 정권하에서는 전쟁이 황폐화한 한반도 남반부에 그나마 대량 아사 사태라도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50년대 신문들에서는 일년에 수차례씩 아사자 이야기는 나오긴 하지만, 대개 판자촌의 가족 없는 영세민, 걸인, 부모 없는 유아나 소년, 소녀 등 가족주의 사회의 낙오자들이 아사하게 돼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1960~70년대의 산업화로 그들에게마저도 기관수용이나 취직 가능성이 생겨 아사의 악몽은 드디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악몽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젊은 대졸 꿈 키워나갈 가능성 제로 

    거시적으로 봤을 때에 한국에서 지난 10~20년간 사회는 못 알아볼 정도로 바뀌어도, 자본과 국가는 제 자리에 있거나 오히려 퇴행한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자로서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인지라 육체노동 기피와 극심한 학력 경쟁으로 이제 고졸의 8할 이상은 바로 대학에 진입하지만, 제조업 위주의 한국 경제는 이 정도로 많은 대졸들을 수용할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하청화돼 있는 중소기업들이 약 80%의 고용을 담당하고, 노동자들을 살인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재벌 수출품들의 가격 경쟁력을 보장해주는 노동 착취 위주의 극도로 후진적 구조인데, 그 구조 안에서는 젊은 대졸들이 그 꿈들을 살릴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 다음에, 한국에서의 가족 해체의 속도는 유럽이나 미국을 압도할 정도입니다. ‘부모 봉양’도 옛말이 되고, 출산율도 세계 최저의 신기록을 갱신하고, 이혼율도 유럽 평균 이상이 되고, ‘결혼은 필수’라는 관념도 이미 거의 사라졌습니다. 사회가 완전히 개체화돼가는 것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자본도 국가도 이 수많은 원자화된 개체들의 질환이나 노후, 육아 등을 책임져주고 보장해줄 만한 그 어떤 복지망도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부모와의 가까운 관계는 이미 없고, 결혼을 아직 안했거나 하려 하지 않고, 가까운 친구 등이 없는 원자화된 개인은, 대한민국에서는 안심하고 살아나갈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나마 정식 고용이 돼 있으면 다행이지만, 밥줄이 갑자기 끊겼다면? 자발적으로 – 예컨대 몸과 마음을 파괴시키는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참지 못해서 – 나갔다면 아예 실업수당이라는 건 없지만, 해고 당했다면 실직 이전 피보험 이력이 180일 초과했을 경우 최장 240일까지 쥐꼬리만한 수당을 그나마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절망, 사회의 지배적 모드 될 것

    240일 동안 재취직하지 못했다면? 현존하는 제도의 수준에서 이야기하자면 걸인이 되거나 굶어죽는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가족이 해체된 후의 대한민국의 모습이죠. 물론 현실적으로는 대다수의 실업자들이 굶어죽기보다는, 다단계판매를 하든, 노점상을 하든, 공사장 노동을 하든, 몸을 팔든, 몸을 망가뜨려가면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그 생존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파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최고은 작가의 뒤를 따를 가능성은 아주 높습니다.

    만약 노동을 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무 기한없이 무상급식과 생존이 가능한 정도의 수당의 지급이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생활보호제도와, 240일이 아닌 취직 이전까지의 실업수당 지급 제도 등 제대로 된 복지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자신의 학력과 무관하게 착취적인 기업에 가리지 않고 들어가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젊은 인재들, 가족이라는 보호막없이 해고를 당하기만 하면 아사와 같은 끔찍한 미래를 직면해야 할 것이고,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 해서 착취자들의 모든 요구를 다 충족시키느라 몸과 마음을 다 망가뜨려야 할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절망은 사회의 지배적인 모드가 될 것이고, 절망으로 인해서 자살, 마약, 범죄 등이 계속해서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입니다. 절망적 고국을 피하려는 젊은 고학력 인재 인파들은, 모슨 편법으로든 외국에 나가려 할 것이고, 거기에서도 각종 착취자들의 쉬운 먹이가 될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고학력, 저임금, 불안정 노동력’으로 자본은 계속 이윤을 계속 올리겠지만, 노동자에게는 대한민국은 말그대로 무간지옥이 될 것입니다. 이 무간지옥의 도래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인 이집트의 민중으로부터 권력형 도둑들을 잡아 추방시키는 방법을 늦기 전에 배워보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