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앙떼르미땅을
        2011년 02월 10일 06: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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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굶어죽었다. 그것도, 무려 수도 서울이 ‘디자인’ 서울이고, 한 해 문화산업 총매출액이 58.95조원(2008년, GDP 대비 5.74%)에 달하며, 문화산업을 당당히 미래 성장 동력 산업으로 규정한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5차례나 계약을 성사시킨 현직 시나리오 작가가, 돈이 없어 굶어죽었다.

    문화예술 노동자 월평균 수입은 50만원

    영화사와 계약까지 성사시켰는데도 고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 지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첫 시나리오 계약 후 엄청난 꿈에 부풀어 오르셨을 겁니다. 정말 열심히 쓰셨을 겁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돌아온 건 계약금 중 일부인 몇백만 원 정도가 고작이었겠죠. 몇 주, 몇 달, 몇 년, 그렇게 기약 없는 시간은 흘러만 갑니다.

    하지만 캐스팅과 투자가 확정되어 영화가 들어갈 때까지 받아야 할 남은 돈은 주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나가고 싶어도, 자신과 자신의 시나리오는 말도 안 되는 계약 때문에 이미 회사에 묶였습니다. 일은 계속 하지만 돈은 받지 못합니다. 생활이 힘듭니다. 몸이 아픕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과 재능을 팔았지만, 작품도 묶이고 몸도 묶이고, 돈은 못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고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영화노조에 따르면, 영화 스태프들의 연평균 소득은 2000년에 337만원, 2009년에 623만원이었다. 월 평균 52만원이 안 되는 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9년에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이 창작활동을 통해 얻는 월평균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가 37.4%에 달하며, 이들을 포함해 50만원 이하인 경우가 49.4%에 달한다.

    문화예술 노동자,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가난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대기업의 횡포, 제작사의 불공정 관행 때문이다. 작품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작품 제작에 들어간 스태프들의 노력은 항상 저평가되어 왔다.

    앞서 인용한 고인의 지인에 따르면, “지난해 관객 600만 명이 넘어간 영화, 아마도 100억 원은 벌었을 겁니다. 근데 그 제작사의 횡포 아주 대단했습니다. 지인이 스탭으로 일하면서 석 달에 800만 원 주겠다고 계약을 했는데 넉 달로 연장하자고 바꾸길래 한 달은 봐 줄 수도 있겠다 싶어 같은 돈에 계약"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불균등한 관계에 있지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반복적인 실업이 반복되는 문화예술 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문화예술 부문의 노동시장은 이른바 대부분이 프로젝트형 노동시장으로 형성되어 있다. 프로젝트형 노동시장이란 특정한 프로젝트, 즉 한 단위의 사업이 시작과 종결에 따라 고용계약이 성립되었다 완료되는 특성이 반복되는 노동시장을 말하는 것으로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실업과 고용을 주기적으로 반복할 수밖에 없게 된다.

    셋째,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정규직으로 취업한 문화예술인은 고작 22.9%에 지나지 않고, 비정규직을 포함한다고 해도 노동자의 지위를 갖는 문화예술 종사자는 33.3%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67%에 달하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시간외 수당, 휴일보장, 퇴직금 등 노동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으니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도 없다.

    노조는 최소한의 수단

    노동조합은 다른 사회적 자원이 취약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고용형태의 취약함은 문화예술 부문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캐다나의 경우 문화예술 종사자의 55%가 노동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실정이 훨씬 열악한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인들의 취업 형태>                                                               (단위: %)

    구분

    2009년 조사
    2006년 조사
    2003년 조사
    2000년 조사
    자영업/고용주
    16.5
    13.4
    18.1
    16.9
    전업작가/자유전문직
    26.4
    33.8
    30.0
    26.4
    정규 고용직
    22.9
    30.1
    29.4
    30.7
    임시 고용직
    10.4
    8.8
    14.7
    6.5
    * 자료: 『문화예술인실태조사』, 2000, 2003, 2006. 2009. 각 년도에서 무직/은퇴 부분은 생략.

    넷째, 각종 사회보장 제도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건강보험(의료보험) 가입자는 98.4%, 국민연금 가입자는 59.2%, 산재보험 가입자는 29.5%, 고용보험 가입자는 28.4%로 건강보험을 제외한 사회보험 사각지대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98.4%에 달하는 건강보험의 경우에도 피부양자로 가입되어 있는 경우가 25.0%에 달해 실제 본인 가입 비율은 73.4%에 불과했다.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밥을 허하라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근로계약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주된 원인은 (영세한 규모의 공연예술이 많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최저임금, 산재가입 등 최소한의 노동법조차 지키지 않는 공연 산업의 관행과 사전/사후 작업에 대한 무임금 노동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명시하고 작품 제작에 투입되는 모든 노동 기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근로계약 체결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경우 통상적인 노동자와 매우 상이한 형태의 노동을 하기 때문에 기존의 근로계약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업종이나 상황에 따른 기준안이 제시될 필요가 있으며, 여기에는 반드시 계약기간, 업무내용, 근로시간, 임금, 휴가, 4대보험 가입, 단협 준수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공연예술에서 계약기간은 특히 임의적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주로 성과가 가시화된 이후에 한해서만 임금을 지급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공연예술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 단계에서부터 공연 마감까지 모든 단계의 노동이 필요하며 당연히 이 모든 기간이 계약기간에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과 업무 내용의 명시를 사전 기획/개발 단계, 공연예술 준비 단계, 공연예술 기간 모두에 각각 표기해야 한다.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앙떼르미땅을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문화예술 부문 종사자들의 경우 기존 사회보장 제도로부터의 소외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단속적 계약직 중심의 문화예술 부문 노동시장의 특성, 노사 양측 모두 노사관계 및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저소득에 따른 사회보장 비용에 대한 부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결과이다.

    따라서 문화예술 종사자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사회보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보장 제도 사각지대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고려하는 적극적인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문화예술 종사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과 실업이 반복되는 동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소득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정규직의 경우 실업보험이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데 문화예술 종사자는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매우 낮은 상황이고, 설사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잦은 실업과 짧은 취업 기간으로 인해 사실상 실업급여의 수급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대폭 완화한 앙떼르미땅(Intermittents)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앙떼르미땅이란 1936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실업과 취업을 단속적으로 반복하는 속성을 가진 문화예술 분야의 직업인들에게 공연(혹은 촬영)이 없는 기간에도 실업수당을 지급함으로써, 이들이 안정적으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배우, 연주자, 가수, 연출자, 영화감독, 기획자, 편집인, 음향․조명 기술자, 무대제작자, 소품기획자, 미용사, 분장사 등 모든 공연, 영화, 방송 관련 종사자등이 그 대상이며, 이들은 연중 507시간(8시간 주5일 근무로 계산할 경우 약3개월) 이상 유급으로 계약에 근거해, 일했다는 증거만 있으면 앵떼르미땅의 지위를 인정받아 일이 없는 시기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고용보험 수급자격 완화를

    앙떼르미땅 제도 설립 당시, 혜택을 받는 인원은 기껏 수천 명 규모였으나, 80년대 시청각산업과 문화산업 분야가 급격히 확대되고, 당시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의 지휘 하에 시행된 공연예술 분야의 다양한 지원책들을 통해 수혜자 범위가 확대되면서, 1986년 5만 명이던 앙떼르미땅의 수는 1996년, 10만으로 늘어났다.

    프랑스 문화부가 2005년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영화, 방송, 연극, 무용, 음악 공연 등의 예술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모두 30만명 정도인데, 이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15만명 가량이 앙떼르미땅이고, 이중 약 10만 명 정도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

    그 비율을 보면 47%가 배우, 가수, 연주인 등 예술가들이고, 21.13%가 방송 분야의 기술자, 15.02%는 영화산업의 스태프, 9.69%가 제작, 기획인력이며 6.64%가 연출가 등이다.

    한국의 경우, 고용보험에서 구직급여의 수급 자격은 실직 전 18개월 중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에서 180일 이상 일해야 하며(일용근로자의 경우 일용직 근로가 90일 이상이 될 경우 자발적 이직에 의한 수급자격 조건 배제에서 제외함), 이 경우 구직급여 수급기간은 90일에서 240일이다.

    그런데,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충족시킨다 해도 번번히 발생하는 실업 기간 동안 충분한 소득 지원을 받기 어렵다. 따라서 문화예술 분야처럼 프로젝트형 노동시장이 주되게 형성되어 있는 산업 분야에 한정하여 피보험자의 수급자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고용보험의 확대 재편이 이룰 필요가 있고, 고용조건이 열악한 문화예술 부문에서 아래와 같은 방안을 우선적으로 적용토록해야 한다.

    <문화예술분야 고용보험 개정 방안 예시> 

    구 분

    개정 전
    개정 후
    적용대상
    실직전 18개월중 6개월간 고용보험
    가입사업장에서 일했어야 함.
    실직전 12개월중 4개월간 고용
    보험가입 사업장에서 일해야 함.
    수급기간
    3개월∼
    6개월∼
    휴직급여
    평균임금의 50%, 일일 4만원미만,
    최저임금의 90% 이상.
    100만원 급여의 노동자는 약 63만원
    현행유지
    분담금
    급여의 0.9%에서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씩 부담
    현행유지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작업공간을

    문화예술 노동의 특성상 미취업 기간에는 휴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작 활동 혹은 창작 준비 활동이 지속되는 노동의 연장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의 노동은 임금이 지불되지도 않을뿐더러 작업활동에 필요한 환경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앞 서 언급한 앙떼르미땅의 도입은 해당기간의 소득을 어느 정도 보완해 줄 수 있지만 의미 있는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작업의 특성상 고가의 장비나 재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수단은 공동 작업 환경의 조성이다. 공동 작업 환경 조성은 미취업 기간 동안 창작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지역 사회 차원에서 마련하여 문화예술 노동자의 창조성을 제고 시키는 동시에 네트워크와 멘토 등을 활용한 직업훈련 공간, 나아가 시민들의 참여 공간으로도 활용가능하다.

    공동 작업 공간의 조성은 △다양한 장르별 혹은 혼합장르형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 및 지역 문화예술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공동 작업 공간을 마련하며 △해당 지역 공동체의 문화 접근권을 누릴 수 있도록 지역 차원의 교류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 * * 

    * 이 글의 정책 대안 중 일부는 홍원표, 2008, 「문화예술부문 노동자 고용안정 방안에 관한 연구」(사회공공연구소) 및 목수정, 2006, 「프랑스의 예술인 지원 정책 – 사회보장 정책을 중심으로」의 일부분을 직접 인용했습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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