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파견 인정, 현대차 정규직 확인"
    By 나난
        2011년 02월 10일 04: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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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다시 한 번 “2년 이상 근무했다면 원청회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현대차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고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번 판결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직접 지휘 받는 것 인정돼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이대경)가 10일,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 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는 최병승 씨의 경우 현대차와 파견근로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계속 근로 기간 2년이 경과된 지난 2004년부터 현대차의 근로자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대법원의 환송판결 취지에 공감한다”며 “최 씨가 현대차의 직접 지휘를 받는 파견 근로자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내린 중노위의 구제심판은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자동차 조립은 자동생산 방식으로, (하청업체의) 조립작업에 대한 지휘권은 미약하다”며 “최 씨가 속한 하청업체 근로자의 작업량이나 방법, 일의 순서 등을 현대차 직원이 직접 지휘하고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내린 사실이 인정된다"며 도급이 아닌 파견 형태임을 지적했다.

       
      ▲ 서울고등법원이 지난해 대법원의 "불법파견, 정규직 지위 확인" 파기환송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동감하는 판결을 내렸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최 씨는 지난 2002년부터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근무했으며, 지난 2005년 노조활동 등을 이유로 해고됐다. 이에 그는 “현대차가 실질적인 고용주로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2006년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에 1, 2심 재판부는 “최 씨는 근로자 파견이 아닌 도급에 해당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 연이어 정규직화 판결

    하지만 지난해 7월 22일 대법원은 ‘근로자 파견에 해당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더라도 도급인(현대차)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도급인에 의해 통제됐으면 파견”이라며 “최 씨는 2004년 3월 13일부터 현대자동차에 의해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된다”며 판단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 민사 제2부(재판장 황병하, 이종림, 장경식) 역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근무기간 2년 이상 정규직 간주”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4명에 대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인 원고들은 대부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공정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며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정규직”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이번 판결과 관련해 최 씨의 법무대리인인 고재환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재확인 한 것으로, 이후 최병승 씨와 비슷한 근로조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도 내용적으로는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판결”이라며 “중노위는 현대차가 사용자가 아니라는 전제로 전부 기각했는데, 이번 판결은 중노위는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역시 환영의 입장을 밝히며 현대차의 전향적인 입장을 주문했다. 지회는 이날 오후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우리의 요구가 옳았음을 확인했다”며 “현대차는 다시 한 번 대법판결이 확정됐으므로 즉각적인 정규직화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차 측은 이번 판결의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상고와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을 통해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것. 현대차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결은 원고 1인에 대한 개별적 사실 관계에 기초한 제한적 판단이므로, 작업조건과 근로형태 등이 상이한 울산, 아산, 전주공장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 경총 등 불만

    현대차는 "지난 2006년 대법원이 최 씨와 현대차 사이에 파견관계가 존재하는지를 다룬 사건에서 ‘근로자 파견계약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상반된 결론을 내린 바 있다"며 "대법원 상고를 통해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대차 사내하도급이 파견관계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법원이 도급계약에서 비롯되는 최소한의 생산협력과 기능적 공조행위 마저 불법파견의 근거로 판단한 것은 문제”라며 “사내하도급 활용은 시장수요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보편적인 생산방식인데, 이를 거부하는 판결이 나와 우리 기업과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고용 및 사회 양극화 심화와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현대차 비정규직 사태는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5일 현대차와 현대차지부의 실무협의를 끝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노사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판결이 현장의 투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이상수 현대차 울산비정규직회장이 9일부터 서울 조계사로 거취를 옮겨 단식농성에 들어가며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25일간의 파업 이후 패배감에 사로잡혔던 조합원들에게 일정정도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더구나 노사 교섭이 사실상 결렬 수순으로 가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지회가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향후 사태 변화에 주목되고 있다.

    이상수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지난 9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정규직화에 대한 대책 마련은 일회성 이벤트고, 고소고발, 손해배상, 징계도 철회되지 않았다”며 “이건 우리 보고 다시 싸우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2일부터 4박 5일 투쟁

    노동계는 특별교섭이 미궁으로 빠지고 있는 만큼 투쟁은 불가피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뒤에 퇴로가 없는 상황”이라며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성훈 현대차 아산비정규직 지회장 역시 “이번 판결을 투쟁의 계기로 잡아야 한다”며 “지금 싸우지 않으면, 다시는 싸우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투쟁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판결 결과가 예상되지 않았던 게 아니”라며 “이런 상황에서 회사 역시 새로운 안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이번 판결이 큰 투쟁을 만들 것으로 보진 않지만, 이를 통해 현장에서 싸움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오는 12일 울산, 아산, 전주 3지회 전 조합원이 서울로 상경해 양재동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인다는 계획이며, 이달 말에도 4박 5일간의 난장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공장 점거 농성 등의 극한 투쟁에 대한 피로도와 회사의 회유 등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차 파업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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