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당, 이숙정 처리 '한나라스럽다'
        2011년 02월 08일 03: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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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를 앞둔 2월의 첫날, 언론에 민주노동당 이숙정 성남시의원 난동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멍한 상태로 동영상을 몇 번이나 클릭했는지 모릅니다. 민주노동당 소속이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릅니다.

    민노당 최고위에 묻고 싶다

    그래도 이정희 대표가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보정당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당 전체가 이 사건에 대해 가장 무겁고 단호한 조치로 책임지겠다.”고 해서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제(7일) 난동 사태의 당사자 이숙정 성남시 의원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는 “본인의 대국민 사과 및 의원직 사퇴가 마땅하다고 본다.”는 하나마나 한 결론을 내렸을 뿐입니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가 이숙정 의원의 자진 탈당을 설득했다는 언론보도를 본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저 사실이 아니기만 바랄 뿐입니다.

    이게 뭡니까?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 묻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태를 ‘뭉개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이숙정 의원이 탈당했으니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정말 모른다면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이미 민주노동당이 2006년에 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6년 2월 24일 최연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동아일보 여성기자를 성추행했습니다. 최연희 의원은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며 어이없는 해명을 하였습니다. 국회의원직 사퇴 요구가 빗발쳤지만, 최연희 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의원직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도 "당사자가 탈당해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때 민주노동당은 최연희 의원 집 앞에서 최 의원 공개수배 포스터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남의 당 의원은 공개수배하면서, 자기 당 의원이었던 사람에게는 하나마나 한 권고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웃기는’ 일입니다.

    대국민 사과, 의원직 사퇴 이끌어내야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이라면, 모든 채널을 동원해 이숙정 의원의 대국민 사과와 의원직 사퇴를 이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숙정 의원이 이를 거부한다면, 당력을 동원해 사퇴 서명이라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노동당도 결국 한나라당과 똑같다는 세간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최연희 의원과 이숙정 의원은 죄질이 다릅니까? 물론 다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짓밟았다는 면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죄질이 더 나쁘고 덜 나쁘고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의 처리 방식입니다.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에게 탈당을 권유하고, 탈당하고 나면 그 정당이 책임질 일 없다고 뻗대는 방식은 그동안 국민이 지겹도록 봐 온 일입니다. 앞으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을 저질렀을 때 민주노동당은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피해자는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면서, 1년 넘게 공공근로(아르바이트)를 하는 25세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숙정 성남시 의원은 그 약자의 인간적 존엄을 짓밟았습니다. 더불어 ‘진보의 품격’도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진보정당의 의원이라는 사람이 말입니다. 품격은 폐쇄회로의 닫힌 도덕성에서 비롯된 선민의식이나 귀족의식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시대에 품격의 출발점은 인간 존중이고 인간 존엄입니다. 상대방을 동등한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스스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습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폭행

    존중할 줄 모르는 자, 존엄을 잃고, 존엄을 잃은 자, 품격을 잃습니다. 진보의 품격이야말로 모두가 존엄하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품격을 뜻하지 왕조국가의 관료들이나 가질 법한 비뚤어진 우월의식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진보는 이미 진보가 아닙니다. 명백한 잘못을 분명히 처리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진보정당의 태도가 아닙니다.

    국민 여론이 진보정당에 잘못된 일에 대해 분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국민 여론이 민주노동당에만 가혹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은 보수정당과 다르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일개 시의원의 잘못된 행동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숙정 의원 난동 사태를 이 정도로 해결하려 하면 국민은 ‘너희들도 보수정당과 똑같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는 진보정당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보는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스스로를 올바로 세울 수도 없습니다.

    오래된 동양고전에 따르면 “하늘이 내리는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길이 없다(天作孽猶可違 自作孽 不可逭).”고 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이숙정 의원이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이는 민주노동당만의 문제가 아니고 진보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의 ‘품격’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온 진보의 ‘품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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