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권 혁명 계속, 세상 운명 바뀐다
        2011년 02월 04일 01: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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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자나 깨나 모든 생각들은 다 이집트와 예멘, 모로코, 알제리아로 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절대빈곤선인 일일 2달러 소득도 올리지 못해 가난에 허덕이고, 정부는 말 그대로 ‘도둑 정치'(cleptocracy)의 모범을 보이는 그 절망의 곳들에서는 지금 역사가 쓰여지고 있으며 세계의 향후 운명이 결정됩니다. 

    왜 튀니지와 이집트인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이 연속화돼 계속 진행된다면 – 즉, 새로운 보수 정권 창출의 시도가 죄절되고 밑으로부터의 급진화 압력이 계속 이루어진다면 – 세계는 아주 크게 바뀔 것입니다. 혁명의 노도 (怒濤)들이 아랍권의 다른 친미 정권까지 타도시킬 가능성이 크며, 그렇다면 미국의 세계적 패권과 이스라엘의 지역적 패권은 치명적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중동에서의 미국 패권의 불안화는 유가를 올릴 것이고 중심부에서의 공황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중동에서의 혁명적 분위기는 유럽연합 총인구의 4~5% 정도 이루고, 대부분 하층에 속하는 중동 출신의 이주민들을 급진화시켜 유럽의 변혁 운동의 중요한 우군으로 만들 가능성도 큽니다.

    베네수엘라에서의 ‘평화적 혁명’, 볼리비아 등 남미 여러 나라에서의 급진적 정권 수립, 브라질에서의 사민주의적 정권 수립 등으로 남미에서의 영향력을 급속히 잃고 거의 속지 격의 멕시코에서마저도 현존 친미 정권의 ‘마약과의 전쟁’ 실패와 치명적 위기를 목격해야 하는 미 제국은 이제 중동까지 잃게 되면 이는 정말 ‘제국의 황혼’입니다. ‘제국의 황혼’이 꼭 계급적 해방으로 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노동계급의 최악의 적인 미 제국주의의 위기는 분명히 만국 사회주의자들에게 복음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왜 튀니지와 이집트부터 준(準)주변부의 ‘내파’가 시작되었을까요? 물론 다수는 ‘빈부격차’부터 이야기하겠고, 이는 꼭 틀린 해석도 아니지만, 계급적 불평등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굳이 지니계수로 따진다면 이집트 (0.34)는 러시아(0.39), 미국(0.40)이나 중국(0.46)보다 덜 불평등한 사회로 나타납니다. 남미 같으면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집트보다 통계화된 불평등 수치들이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무바라크의 독재는 ‘개발 독재’와 사이 멀었으며, 이집트의 개발은 주로 경공업과 일부의 중공업 발전에 머물렀다가 최근 신자유주의의 악영향으로 거의 공업화 진척이 둔화됐다는 것도 하나의 설명이지만, 그걸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아랍권 친미정권들의 내파

    관광업과 통신업 등의 나름대로의 선전으로 이집트는 최근 공황에도 불구하고 4~5%의 성장률을 보여왔으며, 이집트 재벌들은 해외 확장까지 꽤 성공적으로 시도해왔습니다. 알 사람은 다 알지만, 평양에서 ‘고려링크’라는 현지 합작회사를 통해 휴대폰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라스콤이라는 세계적 통신업체는 바로 이집트 업체입니다.

    여담이지만 남한 지배자들이 조금 더 똑똑하고 장기적 비전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쩌면 지금 오라스콤 대신 이 일을 하면서 약간의 이윤까지 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뭐, 식민지 마인드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장사꾼들에게 그러한 원대한 포부라도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여간, 이집트는 개발 독재는 아니지만, ‘개발 실패’ 케이스도 전혀 아닙니다. 튀니지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왜 하필이면 이 나라들부터 아랍권 친미 정권들의 ‘내파’ 과정이 시작됐을까요?

    여기에서 약간의 이론적 접근은 필요합니다. 대개는 20세기 이후의 세계체제 주변부에서의 민중 운동은 두 가지 과제들을 동시에 실행합니다. 하나는 반제 과제, 즉 주변부를 침탈해 장악해온 제국주의에 대한 퇴치 운동이고, 또 하나는 계급해방 과제, 즉 살인적 불평등과 참정권 박탈 상태로부터의 자기 해방입니다.

    식민지들의 경우에는 전자를 보통 ‘민족적 과제’라고 부르죠. 식민지 조선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원리상 배격했지만, 일단 사회주의 혁명의 전제로서는 조선해방과 독립 쟁취, 즉 ‘민족적 과제 해결’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집트, 반제 해결 못하고 신식민지화

    그런데 지금, 21세기 벽두에 주변부/준주변부 세계를 조감해보면, 이 두 과제의 해결의 정도는 지역마다, 나라마다 너무나 서로 다릅니다. 예컨대 중국 같으면 적어도 반제 과제는 아주 성공적으로 해결된 셈입니다.

    남한 보수주의자들은 한국전쟁에서의 참전을 지금도 긍정시하는 온가보(温家宝) 부주석 등 중국 지도부를 욕하고 있지만, 이는 미 제국과의 비교적으로 성공적인 무장 대결이 반제 과제 해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이해 못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혈맹 북조선을 큰 희생으로 지킴으로써 중국은 미 제국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인 세계적 정치세력을 이룩한 셈이죠. 마찬가지로, 인도만 해도 냉전기간에 소련과 미국 사이에 독립적인 ‘양다리’ 실리 외교를 펼칠 정도로 반제 과제가 나름대로 잘 해결됐습니다.

    남한 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령으로 남아 있는 만큼 반제 과제가 늘 미해결 상태에 남아 있을 것이고, 이는 늘 남한 정권의 정당성을 떨어뜨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컨대 중국 같으면 계급해방 과제의 수행 정도는 그 방향으로의 시도라도 해봤던 (꼭 성공적이지만 아니었지만) 모택동 시절에 비해 지금 현저히 떨어져도 반제 과제 해결의 정도가 높은 만큼 공산당 정권은 아직까지 비교적으로 튼튼합니다. 물론 지금처럼 양극화가 빨리 진행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말씀이죠.

    그러면 이집트 등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나세르 정권 때에는 반제 과제 해결의 시도는 있었지만 결국 좌절되고, 이스라엘과의 굴욕적 ‘평화’와 무바라크 친미 독재의 공고화는 사실상 일종의 신식민화를 뜻했습니다.

    식민성과 정권의 아킬레스 건

    마찬가지로, 튀니지 지배층은 반프랑스 해방 투쟁의 경력도 없었으며, 사실상 프랑스의 지대한 영향을 계속 받아온 것입니다. 반제 과제가 미해결 상태에 있는 한, 양쪽 정권은 하등의 정통성도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민중의 입장에서는 그저 외세에 힘입은 도둑들 뿐이었지요.

    또 동시에 최근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은 마지막의 재분배 정의를 짓밟아 정권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집트 민중들에게는 무바라크가 그저 미국 원조를 갉아먹고 세금을 훔치는 악질 도둑, 그것뿐입니다.

    식민성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었지요. 앞으로 같은 성격의 예멘 등의 정권들이 비슷한 운명에 처해질 가능성은 아주 농후합니다. 미 제국의 노복(奴僕)을 열심히 자처하는 남한 지배자들이 이걸 보고 뭔가를 배울 수라도 있을까요? 저들의 정치력이 그 정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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