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 국민 조성한 좋은 국면에 찬물
    보편복지 최소 추가 재원 연 80조원
        2011년 02월 02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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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 주장, 국민적 공감대 얻기 어려워

    민주당은 얼마 전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불필요한 예산 5%를 아끼면 15조, 소득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폐지 등 부자감세 철회로 연간 18조원(5년간 90조원), 비과세 축소로 연간 6조 5천억원, 불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기반 개선을 통해 4조 5천억원 등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세금 없는 복지는 공허하다고 비판한 바 있고,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부유세는 당장의 복지재원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증세안을 제시하겠다고 하였다.

    복지에 대한 논쟁은 좋은 것이나 재원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할 경우 결국 국민들이 앞장 서서 조성해 놓은 이 좋은 국면은 용두사미에 그칠지도 모른다. 특히 보편적 복지를 앞장 서서 수용하고 있는 제1야당이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어려워 오히려 복지확대를 더욱 어렵게할지도 모른다.

    2.

    노무현 정부 말기에 전문가 60여 명과 관료들이 참여하여 비전 2030이라는 포괄적 복지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다. 비전 2030은 실현되기만 한다면 환상적인 것으로 가득하였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당대의 전문가가 참여했다는 이 보고서는 재원마련 방향을 세가지로 들었다. 국채방식, 조세방식, 양자의 혼합방식인데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국채라는 것이 빚인데 이는 결국 국민들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미국처럼 자국의 화폐가 기축통화로 쓰이는 나라를 제외하고 국채의 계속적 증가를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없다. 결국 이것은 동어반복의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가 하는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누가 얼마만큼을 부담하는가이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의 안은 오히려 비전2030 보다 못하다. 그래도 비전 2030은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했으나, 민주당은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공허한 주장이다.

    작년에 발표된 OECD 통계에 의하면 2008년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6.5%로 OECD 평균인 34.8%보다 8.3%포인트나 적다. OECD 유럽국가의 평균은 38.0%, 북유럽 4개국(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평균은 45.1%나 된다.

    정권 잡았을 때도 못해놓고

    한국의 GDP가 약 1,000조원 정도이므로 한국이 OECD 평균수준으로 조세를 걷으려면 최소한 80조원 이상은 더 걷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사실 이 80조원이 한국이 최소한의 보편적 복지를 하기 위해서 증세해야 할 액수라고 할 수 있다.

    통계가 이러한데 증세없이 보편복지를 하겠다는 것은 전문가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국민들도 설득할 수 없다. 사회복지에 쓰인다면 자기가 세금을 더 내겠다는 여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현재 민주당의 주장은 이러한 여론조차 선도할 수 없는 내용이다.

    예산을 5% 줄이겠다는 의지는 좋으나 역대 정부에서 이러한 것이 가능한 적이 없었다는 점 정도를 지적해 둘 수 있을 것이다. 예산 총액 감소가 가능했던 때는 전두환 정부 때, 그나마도 딱 한 해뿐이었다. 지금과는 정치상황이 많이 다른 때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민주당의 안조차 일부 증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감세 철회, 비과세 축소도, 건강보험료 부과기반 개선 등도 큰 틀에서는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굳이 증세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어색한데, 이러한 제도개선으로 관련 세수항목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비과세 항목을 줄이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고, 민주당의 경우에는 이미 원죄가 있다. 이해찬 전 총리도 언론 인터뷰에서 연간 2조원이 넘는 임시투자세액공제 같은 조세지출을 폐지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이 존재 의의가 없다고 폐지하여야 한다고 10년 가까이 이야기해온 이 항목조차 정권을 잡았을 때는 폐지하지 못하였으면서, 이제 와서 갑자기 6조5천억원이나 비과세 축소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당혹스러울 뿐이다.

    3.

    부유세, 조세개혁 프로그램 일환으로 제안

    부유세가 세수 확보에 충분치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증세 방안을 내놓겠다는 이정희 대표의 주장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부유세는 이리저리 표류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세목으로 주장된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조세개혁 프로그램을 위한 일환으로 제안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부유세는 궁극적으로는 소득세, 법인세, 재산과세 중심의 증세를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간이과세 폐지를 통한 소득파악, 소득세율, 법인세율 인상, 상장주식 주식양도소득세 과세 확대, 금융소득 종합과세 확대 등은 1997년 국민승리 21 당시부터 2007년 대선까지 민주노동당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바이다.

    심상정 전 의원이 17대 국회 때 제출한 부유세 1단계 법안이 위와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소득세, 법인세, 재산과세 중심의 증세를 통해 OECD 평균 수준에 근접하는 정도의 조세부담률 제고를 통해 복지를 하겠다는 것이 진보진영의 주요 정책 아젠다였다. 이 안은 진보진영의 정치적 힘이 미약해 추진이 어려웠던 것이지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안이었다고 하겠다.

    4.

    지금 현재의 가장 큰 혼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진보진영이 재산과세, 소득세 중심의 증세를 통해 복지재원을 조달하겠다는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진실은 재산과세, 소득세 중심의 증세를 하여 점차적으로 OECD 평균수준의 조세부담률에 근접할 경우 부유층의 경우 가장 큰 부담을 지겠지만 중산층 이상의 경우에도 상당한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의 재산세, 종부세 과표현실화는 강남 거주자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었지만, 집 1채 소유의 수도권 중산층에게도 세부담을 증가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진보진영 증세전략의 두 가지 원칙

    세부담 증가가 정당화되는 것은 여론조사에도 드러났듯이 첫째, 복지에 쓰인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둘째, 고소득층과 부유층의 경우에 가장 큰 부담을 누진적으로 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진적으로 진다는 것은 내가 가진 재산이나 매년 소득에서 동일한 비율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비율로 부담한다는 것이고, 그 비율의 격차를 더 증가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진보진영은 증세전략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원칙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중산층까지도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료는 매년 인상되었지만, 보장성 강화로 인해 집안에 큰 환자가 생긴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혜택의 폭이 상당하기 때문에 건강보험료가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자연스럽게 건강보험의 지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전체 세금의 경우에도 일반 국민들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진보신당은 사회복지 목적세를 주장하고 있다. 고소득, 부유층의 부담을 선행시키면서도 복지 재원에 사용한다는 정당화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것을 매개로 포괄적인 증세프로그램으로 중산층 이상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정치를 진보진영이 벌여야 한다.

    증세 없이 복지가 가능하다는 수세적인 입장은 현대 한국사회의 여론의 높은 수위로 볼 때 비웃음을 살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67년 세법 개정 때 법인세율을 10% 올렸고, 실제 그 다음해 법인세 세수는 전년도에 비해서 91% 증가했다.

    이 정도까지는 못하더라도 부자감세 철회를 넘어서 아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소득세, 법인세율을 IMF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켜 소득세율은 40%, 법인세율은 28%로 인상시키겠다는 공세적 주장과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기이다.

       
      (표 = 소득세, 법인세율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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