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의중 의심스럽다" 상호 불신
        2011년 02월 07일 10: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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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대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더 나아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통합 경로에 대한 ‘진언과 고언’들이 중원의 고수는 물론 장삼이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0년 말까지 진보정당들은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구성에 합의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아직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당사자들의 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경우 진보정당 통합의 핵심 두 주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당내 의견도 모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 당위론’만 무수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분열은 공멸이라는 문제의식과 대중의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때 정치적 조직으로서 치명적 ‘응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 논의를 가능하게는 만들긴 했으나, 셈법들이 다르다.

    진보양당이 분당이 괜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또다른 통합 역시 그리 쉬운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분당 원인이 해소돼야 실질적인 통합 논의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2012년을 준비하는 각 당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레디앙>은 통합논의가 본격 궤도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2011년을 맞아 구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후를 돌아보고 그동안 벌어졌던 통합논의의 흐름을 진단하며 향후 통합논의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하였다. 이 기획은 모두 8회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주>

    연석회의 성과 부정적 전망 많아

    지난 1월 20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안효상 사회당 대표와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학영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 상임대표, 김세균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이하 진보교연)’ 대표가 국회 귀빈식당에 모였다. 바로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열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7일 이정희 대표와 조승수 대표가 연석회의 구성에 합의한 이후 그 구성과 의제를 놓고 진통을 겪어오더니 40여일이 넘어서야 드디어 그 첫 발을 뗀 셈이다. 이것이 진보대통합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연석회의를 통해 진보대통합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독자파와 통합파를 떠나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연석회의 구성과정에 드러난 이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석회의 결과물을 놓고 봤을 때 더욱 그렇다. 연석회의에서 도출된 ‘합의문’은 지난 12월 7일의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합의문에 비해 크게 진전을 이루어냈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의 한 인사는 “이번 합의문은 단지 예전 (민주노동당-진보신당 간)합의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통합의 시간이 많지 않은데 이정도 합의 수준을 도출해 내었다는 것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 역시 “이정도로 국민들에게 (통합의)의지를 보이기 어렵다”며 “안 하느니만 못한 합의”라고 평가절하 했다.

    ‘신설합당’이라는 절묘한 용어

    왜 이러한 평가가 나올까? 이를 확인하려면 연석회의 구성 과정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지난해 12월 7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만나 연석회의 구성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 명칭에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란 표현이 모두 반영되어 있다.

    김성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지난 달 27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양당 통합은 민주노동당 일부에서 새로운 정당은 진보신당 일부에서 더 많이 강조하는 것”이라며 “합당을 강조하는 입장은 연석회의 중심주체는 양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이러한 입장에서 진보신당에 대해 선 통합선언을 촉구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 정당의 건설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도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당내 우려와 심리적 기피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며 “결국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의 건설과정은 양당 통합과 동시에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일로, ‘신설합당’이라는 법률적 용어가 이 두 가지 입장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양 측이 언뜻 한 발씩 물러나 연석회의 구성에 합의했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서로의 통합론을 굽히지 않았다는 해석 또한 가능하다. 실제로 이후 양당 중심 통합과 연석회의 중심 통합문제가 연석회의 구성에 발목을 잡아왔고 여기서 사회당 참여문제가 불거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의 통합의지에 대한 비판을 불러 오고 있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안으로 협상을 끌어간다”는 비판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는 연석회의 구성 전 <진보정치>와의 인터뷰에서 “타결점 없이 흘러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며 “서로 주장만 하는 속에선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속도’를 높이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통합에 대한 당 입장 결정된 것 아냐"

    민주노동당의 한 지역위원장도 “진보양당이 중요한 주체인 것은 맞다”고 전제하면서도 “연석회의를 구성하는데 사회당을 제외할지 말지를 놓고 당 내부에서도 제대로 말을 맞추지 못하고 시간만 끌어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견이 보이면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도부가 통합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 역시 당의 노선을 결정해야 하는 3월 당대회 전 연석회의 구성 움직임을 보이다보니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통합을 한다면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직 통합에 대한 당의 노선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며 “자연히 협상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작 연석회의는 열렸지만 이것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것이다. 합의문자체도 ‘2011년 통합을 위해 노력한다’는 구절을 제외하고 별다른 것이 없는데다, 당장 이 합의문을 놓고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협상단 교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지난 달 25일 진보신당에 공문을 통해 양당 실무협의를 제안했으나 진보신당은 연석회의 실무협의를 열어야 한다며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연석회의 운영을 위해서도 진보양당이 책임있게 회담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민주노동당 관계자), “양당 중심을 세우면서 연석회의를 들러리세우고 있다”(진보신당 관계자)고 서로 비판하는 것도 연석회의 구성논의 당시와 전혀 다른 얘기가 아니다.

    “‘통합을 막는 힘’이 통합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일부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당 중심인지, 연석회의 중심인지, 그 주체도 명확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 측이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통합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진보 양당, 불신의 벽 여전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오히려 최근에는 민주노동당보다 진보신당이 통합에 더 적극적인 것 아니냐는 생각”이라며 “민주노동당의 경우 반MB연대에 더 적극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반대로 “연석회의 구성원이 많다보니 연석회의에서 빠른 속도로 통합을 논의하기는 어렵다”며 “양당이 책임을 지고 통합논의를 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진보신당의 진짜 의중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진보대통합의 핵심 주체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상황에서 연석회의 쟁점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진보신당은 이미 여러차례 ‘진보정당 분립에 대한 평가’나 ‘분당에 대한 평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민주노동당은 이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연석회의는 구성되었어도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은 것도 쟁점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석회의’라는 이름의 통합진보정당 열차는 출발했지만 이미 몇 차례 연착된데다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언제든 고장으로 멈춰 설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로 보인다. 일단 열차가 출발했다는데 그 의의를 둘 수야 있겠지만 쟁점에 대한 갈등은 이 열차가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할지, 중간 고장으로 귀착할지 섣불리 감 잡을 수 없는 상태다.

    최근 민주노동당 일각에서는 정지된 통합열차를 밀기 위한 노동현장 조직운동을 벌이고 있다. “양당 지도부가 통합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아래로부터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의지다. 진보신당 통합파는 최근 벌어진 당내 여론조사를 근거로 통합여론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박용진 부대표는 <오마이뉴스> 기고가 대표적이다.

    이것이 통합을 미는 힘이지만 좀처럼 통합이 진척되지 않는 것은 그 반대의 힘 또한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미 당 차원에서 ‘진보대통합’을 결의한 바 있지만, 진보신당은 아직 당 노선을 분명하게 정해놓지 못했기에 통합의 속도를 거론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열차의 도착지가 “정말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맞느냐”고 주장하는 독자파들의 반발은 통합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더 강하게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통합논의를 거치며 당 내, 당 대 당 관계에 있어 각각의 신뢰가 더 떨어진 상황에서 이미 출발한 연석회의호 통합열차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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