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년째 반복되는 일상의 악순환
    By 나난
        2011년 02월 01일 03: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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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 노동자들의 투쟁에 사회적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노동계는 물론 학생․정당․시민사회단체에 이어 연예인까지 홍대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 해고 문제를 거론하며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용역계약 해지로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청소 노동자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행히 ‘해고되지 않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쉴 때도 고용조건 후퇴와 고용불안은 여전히 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일상

    이들에겐 매년, 그리고 수십 년째 반복된 일상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고용조건 개선과 고용승계를 요구하지만, 그때마다 용역계약 해지는 늘 뒤따랐다. 노조가 힘을 키워 싸우더라도 새로운 용역업체로의 고용승계, 그 이상의 것을 쟁취하기는 힘들다. 간접고용 문제가 뿌리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중앙고용정보원이 지난 2008년 산업별․직업별 고용구조를 조사한 결과, 국내 청소노동자는 37만7,927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2.3%를 차지했다. 총 426개 직업 중 네 번째로 종사자가 많다. 이 중 여성이 81.6%를 차지했으며, 50대 이상은 80.2%, 임시직과 일용직이 72.1%로 나타나, 청소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고령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남성 노동자의 경우 평균 102만9,000원, 여성 노동자는 74만2,000원으로, 지난 2008년 최저임금 78만7,930원을 밑돌고 있는 것.

    지난해 3월, 공공노조가 산하 공공기관과 대학, 병원 등을 대상으로 자체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76개 사업장 2,070명의 노동자는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으로 월 평균 89만5,079원을 받았으며, 이 중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을 16시간이나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평균 92만 원을 받는 사업장도 있었다.

    여기에 2,004명(98.74%)의 노동자가 용역계약으로 간접고용 형태를 띄고 있으며, 13명만이 정규직이었다. 그렇다면 홍익대를 비롯한 각 대학의 청소노동자 고용형태는 어떨까.

       
      ▲ 홍익대 내에 걸려 있는 "서러운 용역 인생 끝장내자"는 내용의 현수막.(자료=이은영 기자)

    국공립대 100%, 사립대 84%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2007년 분석한 ‘대학 비정규용역 노동자 실태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대학은 국공립대가 100%, 사립대가 84%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는 86.7% 대학이 간접고용 행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3일, 홍익대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 170여 명이 해고됐다. 홍익대와 용역업체 간 계약 해지에 따른 자동적 조치로, 학교 측은 ‘고용문제는 용역업체 소관’이라며 신규 업체 입찰 과정을 진행했고, 이미 계약이 해지된 업체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고령의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0여 년을 홍익대에서 일했다. 이들이 하루 10시간을 일해 받은 임금은 고작 75만 원으로, 하루 점심 값은 300원에 불과했다. 용역계약이 갱신될 때마다 매년 2만 원의 임금인상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하루아침에 해고된 고령의 노동자들은 지난 3일부터 농성을 벌이며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홍익대에 남아있는 직접고용 노동자는 5명으로, 올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3명이 떠나면 그 자리는 또 다시 간접고용 노동자로 채워질 것이다. 홍대 사태는 다른 대학에서도 거의 일반화된 상태다.

    한국교원대학교도 지난해 12월 31일,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17명의 청소․시설관리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노동조합을 결성했지만 돌아온 건 용역업체와의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였다. 이들은 직접고용 노동자에 비해 월 평균 70여만 원의 임금차별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무권리 상태에 익숙해질 정도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간접고용의 경우 비용 절감의 대부분이 인건비 절감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용역업체의 이윤을 보장하고 남은 부분으로 인건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인건비는 살인적 수준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동국대 역시 지난해 말 업체 변경 또는 폐업을 이유로 청소 노동자를 해고했다. 모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하자, 용역계약 해지를 통한 해고를 강행한 것이다. 다행히 모두 고용승계를 약속했지만, 해고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간접고용는 저임금 외에도 부당한 업무지시, 성희롱, 열악한 근로조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경조사 휴가뿐만 아니라 연월차, 생리휴가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상선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청소노동자 근무환경 개선과 고용불안 해소를 위한 좌담회’에서 “청소노동자들은 노동법상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고, 최소한의 사내 복지조차 없는 상태”라며 “연장근로 수당이나 연월차 휴가 같은 법정 권리도 이 직장을 그만 둘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권리 상태가 청소 업종 전반에 걸쳐 만연하다보니 노동자들은 휴가 없이 일하고, 다쳐도 자비로 해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며 “점심 해먹을 쌀이라도 제공해주면 괜찮은 회사 축에 속할 정도”라며 현실을 지적했다.

    성차별적 구조와 성폭력

    그는 특히 청소 업무에 만연한 성차별적인 지배 구조에 대해 “청소 업무는 여성이 많은 업종임을 생각하면, 남성이 ‘관리’하고 여성이 ‘지시받는다’는 성차별적 구조가 횡행하고 있다”며 “이는 성폭력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도시철도공사 청소용역 노조에 따르면, 관리장에 의한 성폭력, 성희롱 사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업장의 경우 단체협약을 통해 성희롱과 폭력 금지 조항을 신설했지만, 고령의 여성 비정규직으로 이뤄진 대다수의 사업장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다.

    열악한 휴게공간 문제 또한 비인격적 처우 중 하나다. 청소 노동자의 휴게공간은 실제 화장실 내, 계단 아래 창고, 또는 지하 창고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곳에서 식사, 휴게 및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휴게공간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음식냄새를 이유로 식사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지난해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 마련을 위한 캠페인에서는 고령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이 고발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자료=이은영 기자)

    그렇다면,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면서까지 간접고용이 선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비용절감과 편리한 노무관리” 때문이다. 원청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최저입찰을 통해 대부분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당연히 도급단가를 낮추기 위한 용역업체 간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고, 고래싸움에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또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청과 용역업체의 문을 두드려도 응답받긴 힘들다. 원청은 용역업체와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이유로 대화조차 거부하는 게 다반사며, 용역업체는 낮은 단가와 경영난을 이유로 외면하기 일쑤다.

    의무는 있고 권리는 없는 노동자들

    이상선 부장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전과 다름없이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사용자의 책임인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 노동조합에 대한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며 “자본이 늘 꿈꿔오던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상태가 간접고용이라는 고용형태에 의해 현실화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용역업체는 원사용자의 돈을 받아 계약기간 동안 업무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줄 뿐, 계약이 끝나면 노동자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며 “또한 용역계약 만료에 따라 해고되어도 법적 근거가 전혀 없어, 대부분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원청은 간접고용을 통해 직접고용에 따르는 노무관리․노사관계 등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함을 얻게 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는 고용불안, 열악한 노동조건, 정규직과의 차별, 노동3권의 실질적 제약 등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싸움이 ‘고용승계’, ‘노동조건’ 개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라도 만들어 직접고용을 요구했다간 돌아오는 건 용역계약해지에 따른 해고일 뿐이다. 이번 홍익대 사태 역시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기본권을 요구하자 학교가 ‘해고’로 맞불을 놓으며 발생했다.

    더군다나 당장 직접고용을 요구하기에는 고령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현실적 조건과 함께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등 눈앞에 산적해 있는 과제가 너무 많다. 특히 간접고용이 합법화돼 있는 상황에서 법으로 제재할 수도 없어 청소노동자로 대변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시름은 깊어 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직접고용 요구로 가는 길

    그나마 원청과 용역업체 간 계약을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곳은 훌륭한 곳이며, 정규직으로 전환한 곳은 극히 일부다. 삼육대의 경우는 청소노동자 중 21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으며, 최근 경기 성남시가 산하 시설관리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348명을, 서울 노원구가 용역업체 직원 36명을 산하 시설관리공단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이에 류 실장은 “결국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이 조직률도 낮은 데다 대대적으로 투쟁을 하기가 어려워 현재는 몇 개의 사업장을 묶어 집단교섭을 통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요구하고 있는 수준으로, 올해 당장 직접고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원청의 사용자성을 강제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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