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숙은 왜 85호 크레인에 올랐을까요?"
    By 나난
        2011년 02월 01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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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7년 전 일입니다. 당시 해고노동자였던 남편 김진석과 저는 초·중학생이었던 두 딸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치러지는 김주익 열사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부산대교를 넘어 노제를 마친 뒤 솥발산 열사묘역에 갔을 때, 남편과 저는 한진중공업 사용자들을 원망하며 분노를 간직한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7년 전 85호 크레인 

    그런데 2011년이 된 지금, 저는 또다시 남편과 함께 김주익 열사께서 넘었던 다리를 건너 85호 크레인에 계시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찾아갔습니다. 얼마 전 노동단체 송년회에서 만난 초면의 어느 여성활동가가 손수 달여서 보내준 홍삼액 절반을 함께 가지고서요.

    그리고 크레인 위에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은 “잘 지내는데 힘들게 왜 왔냐”며 오히려 우리를 걱정했습니다. 우리는 짧은 안부를 묻고 난 후 크레인 아래서 천막농성 중이신 박성호 님 등 부산지역본부 간부님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습니다.

    박성호 님은 현장의 조합원들은 뭉쳐 있고 살아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자신들의 투쟁능력이 부족하여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며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박성호님을 비롯한 부산지역본부 간부님들과의 짧은 만남이 끝난 후 크레인 위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뒤로하고 다시 김주익 열사께서 넘으셨던 다리를 넘어왔습니다.

    며칠 후, 저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게시된 글을 보았습니다.

    “야4당과 시민단체들과 대국민선전전을 통해 한진 자본을 압박하려고 하지만, 하나의 투쟁의 전선은 될 수 있고 필요는 하지만, 대국민 선전전이 정리해고를 박살 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진지회는 지브크레인 85호를 경계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힘들어하는 조합원들이 이겨내는 기둥이라 여겨야 합니다.

    하지만 시민대책위와 야4당의 정치놀음에 놀아나는 한진지회가 아니라, 현장 내 활동가들을 경계하고 조합원을 통제하려는 한진지회가 아니라, 한진 활동가들과 함께 분노에 찬 가슴으로 울분을 토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과 전략과 전술로 이 투쟁을 승리해 나갑시다. 더 넓은 품성으로 현장 내 활동가들을 가슴으로 받아 안고 더 깊은 신뢰로 조합원을 결집시켜내는 한진지회 지도부가 되길 바랍니다.”

    남편에게 들은 한진중공업 이야기

    저는 글을 읽은 후 남편에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상황을 아는 대로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지난해 김진숙 지도위원께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방침에 단식농성을 할 당시, “단식 25일째 더 이상 건강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의사진단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셨다는 이야길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하는 500명이 넘는 조합원은 텐트 앞에 앉아 “우리가 투쟁을 할 것입니다. 제발 병원으로 가서 몸을 회복하십시오”라고 호소했고, 그걸 저버릴 수가 없었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제야 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남편은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정리해고에 맞선 조합원들의 결의에 찬 투쟁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자유게시판에 실린 글은 분명히 정리해고 저지투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진 조합원들이 현장투쟁을 중심에 두고 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글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과거에 많은 사업장에서 벌어졌던 정리해고 투쟁사례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특히 어용노조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는데, 명예퇴직, 희망퇴직이 자행될 시 의지가 부족한 노동조합은 “희망퇴직, 명예퇴직은 자기 스스로가 판단해야 할 내용”이라며 명퇴를 사실상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희망퇴직 인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리해고 명단 발표를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와 교섭할 때마다 연장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시민선전전은 보조축

    또한 투쟁방식에서 조합원들의 정서는 현장에 중심을 둔 투쟁이고, 시민선전전은 보조축으로 결합하는 것인데, 이런 조합원 정서와는 다르게 부담스러운 현장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시민 선전전에 몰두하고, 대외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열심히 투쟁하는 것처럼 보여주려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격의 시민선전전과 같은 투쟁방식에 대해 자본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자본은 조합원들을 충분히 뒤흔들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이 서면, 가차 없이 정리해고를 기정사실화한다고 했습니다.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86호 크레인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사진=민주노총 부산본부)

    14년 전, 남편이 노조 대의원과 현장조직 의장으로 활동하다 해고되자 당시 노조는 남편의 복직투쟁을 노골적으로 개인문제로 치부했습니다. 8년 3개월 해고투쟁을 해오면서 민주를 외치는 집행부가 몇 번이나 들어섰지만 사내에 해고자 복직 관련 현수막은 설치할 수 없었습니다.

    앰프가 달린 방송차가 노조에 있어도 빌려주지 않아 지역의 타 사업장 노조 앰프를 가지고 와서 집회를 하였으며, 노조 간부가 집회장에 있어도 노조집행부의 지침이 없어 발언할 수 없다고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혼자 농성하는 정문 천막에 오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져도 상급단체나 정치단체 그 누구도 눈치만 볼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의 경우

    앞으로 자본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노동자들에 대한 생존권 탄압은 더욱더 거세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자투쟁의 원칙을 더욱더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사업장마다 처해 있는 실정들을 모든 노동자들에게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고, 비민주적이거나 반노동자적 요소가 있다면 철저히 폭로해야 하고, 엄중한 비판과 반성을 통하여 민주노조 운동의 진정성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운동의 원칙은 대상이 노동조합이든 사회·정치단체든 그 누구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분명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를 위해서 노동자 모두에게 투쟁의 진정성과 계급적 단결투쟁을 요구하면서 크레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투쟁의 진정성과 계급적 단결투쟁을 요구하는 김진숙 동지의 뜻을 존중해 한진중공업 파업노동자들과 전체 민주노조운동이 더욱더 힘차게 투쟁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 * *

    * 이 글의 필자는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김석진 의장의 아내다. 그는 김 씨가 지난 2009년 1월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노동자 복직투쟁을 벌일 당시 한진중공업 경비대로부터 집단폭행 등을 당한 것과 관련해 현재까지 현대중공업과 경찰청 등을 상대로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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