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원한다, 이렇게 살지 않기를
        2011년 01월 31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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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에 강의를 시작했으니, 이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한 지 꼬박 10년째다. 현재 부산 경남의 B대, K대, I대, S대에 강의를 나가고 있고, 한때 생활비 때문에 U대까지 출강했었는데, 도저히 강의 같은 강의를 할 수 없어서 U대는 포기하고 말았던 적이 있다.

    실질임금 10년 동안 곤두박질

    그 사이 B대에는 강사노조가 생겼고, 그 덕에 B대의 임금 수준은 정말 쥐꼬리만큼은 나아졌다. 그러나 나머지 대학은 10년이 지나도 임금 한 푼 오르지 않았다. 그 10년 사이 물가가 치솟은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임금이 곤두박질쳤다고 하는 게 옳은 말일 게다.

    심지어 부산 경남의 사립대학 임금 수준은 대부분 3만원에서 31,000원 수준이니, 전국 사립대 평균인 35,600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K대에서 두 강좌(네 시간)를 하는 게 수입의 전부인 내 후배는 한 달 월급 480,000원이 수입의 전부인데, 이렇게 받는 게 그나마 6개월이고 나머지 2개월은 방학이 포함된 달이라서 3주밖에 강의를 못하니 360,000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남은 4개월(여름, 겨울 방학)에는 월급조차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부터 강사 월급에서 일괄적으로 국민연금이 빠져나가니, 이 친구가 받는 연봉은 3,580,000원이 전부이다. 강의 나갈 때, 지하철도 겨우겨우 타고 다니는 그 친구의 뒷모습을 모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나마 나는 나가는 대학 수라도 많은 편이지만, 나 역시도 이 친구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강의를 하는 10년 사이에 두 명의 딸 아이가 태어났는데, 한 녀석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한 녀석은 이제 고작 세 살이다.

    밝게 웃는 게 무척 예쁜 애들인데, 그걸 쳐다보는 마음 한 구석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내 사정이다. 전업주부 아내에 경제활동이 전무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아니, 그것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강사이니…….

       
      ▲한국비정규교수노조의 청와대 앞 기자회견 모습,(사진=이은영 기자)

    노트북 고장에 보일러는 터지고

    게다가 지금은 월급을 구경할 수도 없는 방학이다. 간간이 싸구려 알바를 하고는 있지만, 이번 방학에는 꼭 논문을 써야 다음 학기 강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알바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작년에만 저서 1편, 공역서 1편, 공저서 1편을 냈는데,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그런데 끙…….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잘 쓰던 중고 노트북이 드디어 사망하셨다. 새로 사려면 무려 70만원의 부품 가격을 지불해야 한단다. 삼성의 중고부품 가격은 그 제품이 원래 출시되었던 당시 부품가격 그대로 지불해야 하는 정책이 있단다.

    과연 삼성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삼성에서 노트북AS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번번이 새로운 노트북을 사는 게 이익이라는 소리를 AS센타에서, 그것도 AS기사에게 들어야 했다. 그들은 과연 영업사원이었던가. 아무튼 돈 한 푼 없는 방학에 노트북 살 목돈이 나간다는 건 강사에겐 청천벽력이다.

    설상가상 갑작스런 이번 추위 때문에 보일러는 터져버렸고, 수도 파이프 역시 터져버렸다. 또 목돈이 들어야 한다. 그래서 최근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있다. 누구에게 돈을 융통해야 할까하는 고민 때문에…

     최근 지역 내의 모 대학에 관련 과목 임용고지가 나서 지원을 했는데, 이런! 감감무소식이다. 최근 2년간 업적인 거의 800%에 육박해서 면접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문학 전공에 지잡대 출신 강사에겐 면접할 기회조차 없는 것일까? 최근 교수신문에서 진태원 선생이 철학을 전공하면서 교수를 하려면 서울대는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 말이 뼛속을 파고든다.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실 나는 인문학의 위기시대에 인문학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역에서 5년 넘게 인문학 연구팀을 끌어왔고, 3년을 넘게 시민들과 독서모임을 해오고 있으며,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시민 인문학 강좌를 해왔던 나름 보람 있는 경험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기대와 꿈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절망 앞에 실현 가능성이라곤 없어 보이는 정부의 시간강사 대책은 누군가가 말했듯 일종의 ‘희망고문’이다.

    집 수도관과 보일러가 얼어서 물마저 나오지 않는 상황이 꼭 내 처지 같아 너무 서글프다. 온가족이 입김 나오는 집안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생활해야 하는 건 꼭 내 미래상을 예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더욱 어렵다.

    사회구조가 내다 버린 삶을 살고 있고 이를 고백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고백마저도 자신의 이름을 떳떳이 밝히고 시행할 수 없다는 건 더 슬픈 일이다. 시간강사들의 자살로도 꿈쩍하지 않는 저 고도의 착취 시스템에서 내가 감히 이름이나 얻을 수 있을까……. 그러니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무명씨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사는 게 기적인데, 나는 더 이상 이런 기적 체험을 하고 싶진 않다. 옛 레지스탕스였던 어느 프랑스인이 썼던 책, 『분노하라』가 떠오른다. 과연 무명씨인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분노할 수 있을까? 문득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동명소설의 주인공-편집자)의 대사가 떠오른다. 나는 이렇게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I would prefer not to live lik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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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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