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대주의자들은 근대형 지능범?
        2011년 01월 30일 10:2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우리는 아주 일상적으로 ‘사대주의’라는 말을 씁니다. 사실, 그 기원은 좀 시원치 않은 말이긴 합니다. 구한말에는 일본인 관료와 언론인, 그리고 일본을 ‘개화 선배’로 인식한 다수의 친일적 개화주의자들은, 중국을 아직 ‘종주국’이자 독립운동의 잠재적 후원세력으로 봤던 유림 출신의 의병장이나 위정척사파 같은 사람들을 ‘사대주의자’로 몰아세우곤 했었습니다.

    사대주의의 기원

    일본이 사대주의자들을 물리치고 조선에 독립과 (일본과 합방을 하여 계속 개화의 혜택을 받을) 자유를 주었다는 기본적 전제를 깔고 사대주의라는 말을 남발했었습니다. 예컨대 독립협회의 ‘독립’은 바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지, 서재필부터 시작해서 ‘초고속 개화의 모범’이라고 봤던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독립협회의 계승세력들은 대체로 사대주의자와 ‘완고파’, ‘수구파’ 같은 용어들을 혼용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컨대 이광수는 1920년대부터 공산주의자들을 ‘신식 사대주의자’라고 몰아붙이곤 했습니다. 혁명의 후원자가 따로 없는 상황에서 국가로서의 ‘러시아’도 아닌 세계혁명의 중심세력이라고 인식됐던 국제단체 코민테른 (실제로는 코민테른은 물론 이미 1920년대 중반부터 소련 외교 정책에 대단히 많이 좌우됐지만, 그렇다고 해도 코민테른과 러시아를 완전히 동일시할 수 없었습니다)을 추종했다고 해서 친일파인 자신보다 더 나쁜, 구식 위정척사파와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라는, 아주 악질적 비방이었습니다.

    유신 시절에 ‘한국적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김대중과 같은 근대적 합리성을 나름대로 익한 자유주의자들까지도 사대주의자로 비난했지요. 하여간, 근거가 취약한 비난을 위해서 많이 쓰이던 말인지라 왠지 쓰기가 꺼려지지만, 예컨대 영어 공부를 대하는 대한민국 ‘주류’의 태도를 보면 조선왕조 시대 양반사대부들의 한문과 중국경전에 대한 태도가 연상되긴 하죠. 단, 그 잔혹성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는 보이긴 합니다.

    양반 자제들은 대개 6살이나 7살 쯤부터 천자문과 소학을 천천히 익히기 시작했는가 하면, 요즘은 영어로 아이를 괴롭히는 행위는 이미 3~4살부터 시작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무한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어 아이들을 경쟁의 도구로 만드는 사람들은 꽤나 빨리 야만화되는 모양입니다.

    한문 숭배와 영어 공용화

    그런데 이 사회의 지배자들은 정말 과거의 양반 사대부와 같은 형태에 사대주의, 즉 ‘상국’ 문명에 대한 전반적이고 다소 몰주체적 존숭, 그리고 속도 빠른 내면화를 지향한다고 보는 것은 마땅한가요?

    저는 여기에서 약간 토를 달고 싶은 부분은 있습니다. 물론 ‘중심의 언어’를 위신재로 삼는 행위 그자체야 양반사대부들의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것은 맞지만, 지금 국내에서의 영어에 대한 태도는 어디까지나 일제시절의 ‘내지어’, 즉 일본어에 대한 상류층과 중산층의 태도를 계승, 발전한 듯합니다.

    그 때의 내지어나 지금의 내지어는 전통 시대의 한문과 마찬가지로 지배자/중간계층과 피지배자들의 ‘구분짓기’ 도구이긴 했지만, 동시에 (전통시대와 달리) 유학을 통한 학력자본 축적과 국제성을 띤 이윤추구적 행위, 그리고 관료로서의 출세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일제말기에 집의 대문에다가 ‘국어 (즉, 일본어) 상용의 집’이라는 팻말을 걸어놓는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내지화시키겠다고 집에서도 영어를 써대는 열혈적(?) 강남족들이나, 크게 봐서는 목표는 하나죠. 현존하는 패권체제에서의 언어를 통한 치부(致富), 각종 ‘벼슬길’에서의 성공, 제국적 ‘국제화’ 정도입니다.

    외면적으로 봤을 때에는 전통시대의 ‘한문 숭배’와 통하는 듯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간과하면 안됩니다. 한문 숭배는 ‘중심’, 즉 중원 왕조들의 문화에 대한 아주 전반적이고 다면적인 수용, 나아가서 내면화와 동일화를 의미했지만, 식민지시대나 탈식민 과제 실패의 오늘날 지배자들의 ‘영어 공용화 (내지 恐龍化?)’는 극도로 선별적입니다. 즉, 저들의 위치 공고화, 특권 영구화에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이용하는 것이지 ‘일본’ 내지 ‘서구’를 전체적으로 내면화하려는 것과는 사이가 멀죠.

    선택적 친일, 좌파 일본 사상엔 무관심

    예를 들어서 일제시대에 (사실, 이미 구한말부터) 일본 근대문학이 조선에 들어와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만엽집>(萬葉集)이나 <원씨물어>(源氏物語)와 같은 일본 고대, 중세의 걸작들에 대해서는 조선의 근대주의적 문학 애호가들은 다소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을 지배자 반열에 올리게 하는 근대화 과제와 무관한 ‘과거의 유물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봐야죠. 마찬가지로 조선의 온건하고 친일적인 개화주의자들은 다소 보수적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나 아주 보수적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를 존숭했지, 그들의 위치를 불안하게만 만들 수 있는 바바 다츠이(馬場辰猪)나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와 같은 자유민권 운동의 좌파에 대해서는 하등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단 말이죠.

    후쿠자와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최근까지도 다수의 저서는 나오지만, 후자의 두 명의 급진적 민주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국내 학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연구가 비교적으로 없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친일파’라고 해서 일본의 ‘모든 것들’에 대해 꼭 무조건적 애정을 보인다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불필요하거나 위험하다 싶으면 취사선택의 과감함도 십분 과시합니다.

    국내 지배자들의 서구 추종주의나 친미성도 마찬가지죠. 국내 아이들을 ‘오렌지 발음’을 완벽하게 익힐 역사적 사명을 띠고 만들어진 학습기계로 취급하고 있지만, 도구성이 강한 언어 이외의 ‘서양적인 것’들에 대해서느 사실상 꽤나 엄격한 선별 기준을 적용하죠.

    예를 들어 국내 학계에서는 서양사를 다소 주변적인 과목으로 인식하죠. 적어도 한국사에 비해서 말이죠. 한국사에서는 지배자들의 모든 범죄들을 다 합리화할 초역사적 ‘민족’도 찾을 수 있고 성웅 이순신과 ‘기’의 화신인 노비들이 ‘이’를 체현한 양반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대준 성현 이황 등등을 다 찾을 수 있지만, 서양사는 공연히 불순하기만 하지요.

    서양사가 주변적이 된 이유

    특히 프랑스나 러시아 등 큰 혁명을 거친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불순하고 불온한 이야기들이 나올 게 많기에 일단 충신 김유신, 성웅 이순신, 그리고 성현 이황과 율곡을 일차시할 만한 이유들은 충분합니다.

    강남족의 귀한 자제들에게 축적하기 좋은 문화자본이 되는 서양 기악이나 발레 등은 분명히 국악이나 전통무용을 압도하고 있지만, 한국 대학의 구조 안에서는 서양 철학은 별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지 못하는 것 같은 인상입니다.

    한국 철학 같으면 강화도의 양명파와 같은 비주류들이야 있지만 크게 불순한 요소들은 잘 안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서양 철학은, 겉은 아무리 얌전하게 보여도 은근히 불순하기가 쉽습니다. 난리 칠 줄 모르는 대학교수이면서도 양보할 수 없는 내면적 양심이나 국민 국가의 부분적 해체를 통한 영구평화를 이야기한 칸트를 보세요.

    칸트 연구자 김상봉 교수가 지금 그 내면적 양심의 부름대로 삼성 불매 운동을 하고 있는 게 뭐가 놀라운 일이라도 되나요? 그러니까 양심과 같은, 이 체제에서 어차피 실용성과 현실성이 없는 이상한 이야기를 할 사람들을, 아무리 독일에서 철학 박사 학위 수십 개를 받고 독일어와 영어에 대단히 능통해도 대학의 문턱 가까이도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러한 실용적이지 못한 사대주의를 너무 하면 뒷탈이 많단 말이죠.

    한 마디로 하면, 지금 이 나라 백성들의 파땀을 쥐어짜는 패거리들은 단순히 ‘서구/미국’을 ‘숭배’만 하는 구식 사대주의자라기보다는, 근대형 지능범들입니다. 그들은 예컨대 복종하는 습관을 잘 키우게 하는 단순기계적 어학 학습을 유아들에게까지 시켜도, 공연히 지배자들에게 복종만 하는 인간의 내면적 자기 배신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나 하게 만드는 그 무슨 칸트를 한국의 피지배자들이 널리 알게 되는 걸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의 ‘전반적 서구화’라기보다는 유순한 노예들의 늘 숙여질 수 있는 머리들과 잘 굽혀지는 허리, 그리고 늘 일에 바쁜 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노예농장이 된 이 나라에서 그 어떤 본격적 변혁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은 아주 ‘서구적이지 못한’ 방법들까지 다 동원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