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는 정치적이다, 소득정책 필요해
    정부 대책, 서민-노동자에 고통 전달
        2011년 01월 28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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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정부는 부처 합동으로 교육·공공요금 등 전방위에 걸친 직접규제, 독과점 정유업체에 대한 제재 등을 통한 물가안정 대책을 내놓았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함으로써 최근 물가상승 억제에 대한 강력한 신호를 보였다. 이는 그동안 5% 이상의 고성장을 위한 고환율, 물가안정,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이른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욕에 대한 일정한 정책기조의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물가상승이 달러화 약세에 따른 국제 식량 및 원자재 가격 상승에 크게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책에서 환율 절상과 같은 조치는 빠져 버렸다. 또한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수출 대기업을 위한 달러 대비 고환율 정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의심받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정부는 그들의 말과는 다르게 이미 일정한 물가상승을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이런 정부의 불명확한 태도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1월 소비자동향지수’에 따르면 6개월 후의 물가수준을 예측한 물가수준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지난 연말보다 13포인트 급등한 153을 나타냈다. 이는 지난 2008년 7월 160을 기록한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미 많은 소비자가 물가상승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날 IMF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수정 보고서에서 신흥 개도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6.0%로 올려 잡았다. 작년 10월 내놓은 예상치 보다 0.8%포인트 상향조정 된 것이며,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3% 대 수준을 배 이상 능가하는 수치이다.

    아주 정치적인 물가의 파급효과

    이렇게 물가상승이 예견된 상황에서 가격통제 중심의 물가억제 정책을 주문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물가안정’ 대책을 넘어 노동자 서민의 ‘실질소득’ 증대 정책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주장을 위해 물가상승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물가상승은 실질소득과 화폐가치를 하락시키고, 토지, 건물, 주식 등과 같은 자산의 가치는 상승시키는 경제적 효과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물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로는 ‘물가’가 정치적으로 매우 중립적인 양 비추어지기 쉽다. 하지만 물가상승은 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이라기보다는 매우 편향적이고 정치적인 파급효과를 가진다.

    먼저 자본-노동 측면에서 볼 때, 물가상승은 자본보다 노동에 보다 악영향을 미친다. 자본은 생산가격의 인상, 구조조정 등을 통해 물가상승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의 경우는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간(임금교섭 시기)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성공적 임금 교섭으로 실질임금을 보존하기란 불투명한 일이다.

    나아가 물가는 임금노동자 간에도 차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정규직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간의 교섭력의 차이로 인해 정규직 노동은 그나마 물가상승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나, 비정규직 노동은 그럴 수단과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이는 비정규 노동이 물가상승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래 그림은 2006년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상승률의 추이를 보여준다. 정규직의 경우는 같은 기간의 물가상승률 3% 수준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나, 비정규직의 경우는 2007년을 제외하고 오히려 물가상승률보다 하회하는 임금상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의 실질임금 수준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인상에 따른 가계와 중소기업의 위기

    채권자와 채무자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경제교과서에서 물가상승은 채권자에게는 불리하고, 채무자에게는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물가상승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은 대출을 받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영향을 미치고, 대출해 준 금융기관에게는 불리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최대 채권자로 상징되는 금융기관의 대출 관행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금융기법의 발전과 위험관리 차원에서 금융기관들은 과거 고정금리 대출을 줄이고, 변동금리 대출을 더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대출관행의 변화와 더불어 저금리 정책 기조는 많은 대출자들이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 대출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2010년 800조에 가까운 가계대출 중 88%가 변동금리 대출이었다. 이런 대출구조의 변화는 물가상승의 여파가 명목금리를 상승시키고 금리상승은 고스란히 가계의 금융부담으로 전가되는 구조를 창출하였다. 즉 은행은 물가상승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기제를 가지고 있는 반면 가계 경제는 위험을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기업부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가상승의 위험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에는 비대칭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대기업은 회사채 발행 등 은행 대출 이외의 자금을 조달함에 따라 은행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대부분의 회사채가 낮은 고정금리로 발행이 이루어져 금리변동에 대한 위험의 정도가 비교적 낮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별 다른 대체 자금조달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자금의 많은 부분을 은행 차입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시중 은행의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 대출의 85%에 달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이 기업대출의 63%가 변동금리로 이루어져 있다. 즉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은행 대출금리 상승을 통해 이자부담 증가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즉 물가상승이라는 금리를 통해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효과는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에 보다는 서민가계와 중소기업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가상승에 대한 정부의 이해

    그렇다면 물가상승이 정부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물가는 실질임금을 저하시켜 정치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물가상승은 정부의 이해에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취임당시부터 7% 경제성장을 주장한 이명박 정부는 2011년 경제성장을 목표를 5%로 삼았다. 이런 이해가 있는 정부로서는 경제의 실질성장이 어떠하든 물가상승은 명목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이기도 하다.

    급격한 경기침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한다면, 물가가 5% 상승할지라도 경제목표인 명목 GDP성장률 5%를 달성하기란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물가상승에 따라 서민의 고통은 커지고 실질 GDP 성장은 없는 것이다.

    한편 물가상승은 최대 채무자인 국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2011년 현재 국가부채는 잔액기준 400조원에 육박한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 100조원이 넘는 국채발행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 국채발행은 대부분은 고정수익률(이자)을 보장한다. 때문에 물가상승이 신규 국채발행의 수익률에는 영향을 미칠지언정 이미 발행된 국채잔액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물가상승은 국가부채를 경감하는 효과를 가진다. 만약 5%의 물가가 상승한다면 국가로서는 약 20조원의 부담이 경감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이렇듯 정부의 입장에서 물가상승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물가인상을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즉 정부는 물가인상을 용인함으로써 아파트와 같은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그동안 골치 덩어리였던 미분양 아파트의 해소의 기회로 보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다면 물가상승은 경제위기를 노동자, 서민, 중소기업에 위험을 전가하는 일종의 전달벨트인 셈이다.

    물가억제보다 노동자·서민 실질소득 인상 정책 필요

    정부의 생필품에 대한 가격통제, 정유업계에 대한 압박, 금리인상 등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은 실질적인 물가안정은 고사하고 서민의 경제적 고통을 전혀 경감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이번 물가안정 대책은 경제위기를 서민경제로 전가하는 것을 은폐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물가안정 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고용안정은 물론 물가상승률을 넘는 임금인상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위기의 다른 전달 경로인 가계 대출문제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즉 물가변동성에 취약한 가계대출 구조를 전면적으로 전환하고, 물가인상을 통한 서민경제로의 고통전가 정책이 아닌 금융자본과 대기업에게 일정한 부담과 책임을 부여하는 정책이 실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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