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들이여 대충 살자"
        2011년 01월 27일 03: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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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영국 사람 버나드 쇼라는 사람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는. 요즘의 나의 심정으론 나의 묘비에도 아마 이런 걸 박아 넣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충 사는 사람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여러 사람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 여자분을 나는 모르지만 다른 분들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 여자분이 말했다. “인생 뭐 있어 대충 살다 죽으면 되지.”

    바로 다음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나는 그런 말이 가장 싫다.” 그 말 다음에는 아마 ‘나는 인생을 어영부영 대충 살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며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왔노라’라는 주장도 숨어 있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의 옆의 분이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런 말이 싫다"고 말한 사람은 나의 누님이고, 거기에 동의한 사람은 나의 어머님이시다. 나는 순간적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안면이 없는 여자분의 "인생 뭐 있냐"는 의견에 동조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에 적이 안심했다. 

    만일 나의 누님의 말보다 내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면, 아마도 난 올 한해 내내 엄마와 누님에게 ‘형편없는 놈’이라는 지청구를 들었음에 틀림없었을 테니까. ‘올해는 연초부터 운이 좋군.’ 사실 말이지 나의 누님과 어머님은 가난한 중에도 정말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다. 

    아니 사실 "인생 뭐 있냐"고 하던 그 여자분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는데 술 한 잔의 감상에 그런식으로 말했을 게 분명하다. 그럼 결론은 그 7명의 술자리에서 나만 실질적으로 인생을 ‘대충’ 살아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난 내가 봐도 인생을 대충 살아온 게 분명하다.

    "별로 좋지도 않은 직장, 복직투쟁을 왜 이렇게?"

    지금은 달라졌지만 난 사람들 대부분은 나처럼 인생을 대충 살고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이건 나의 무지고 오만임을 깨달았다. 큰 깨달음(?)의 계기는 많이 있겠지만, 우선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있다. 나는 처음으로 누구를 그렇게 사랑해보았다. 아주 오래된 표현처럼 목숨을 바쳐 사랑하였다.

    두 번째는 베트남으로 장가를 간 내 친구가 ‘혈연 가족’과의 심각한 불화를 무릅쓰고도 ‘법적 가족’을 지키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옆에서 지켜본 후다. 아마 이 친구는 법적 가족(친구말로는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팔 하나라도 내놓고 남았으리라.

    이후 나는 친구의 이런 재능에 이렇게 이름을 지어주었다.’가족유지 재능’. 나로서는 정말 대단한 재능이다. 세 번째로는 나의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고 인생이 밑으로만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여 헤메고 있을 때다. 어찌보면 산다는 게 죽기보다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요즘 가끔 비정규직 투쟁 현장(주로 재능 투쟁 현장)엘 간다. 가지 못할 때에는 뉴스를 통해 투쟁 소식들을 자주 본다. 난 처음 어느 농성장엘 가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농성장은 몇 년째 복직투쟁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복직도 어렵지만 설령 복직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뭐 좋은 직장도 아니고. 아주 나쁜 직장이었다. 나는 "별로 좋지도 않는 직장엘 복귀하려고 왜 이렇게 몇 년씩 이런 생고생을 다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다른 직장을 얻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고.

    "열심족도 있다"

    물론 내 말의 앞뒤 맥락을 고려하고, 발언한 내가 집회에 참가했다는 점이 감안이 돼서 괜찮았지, 그러지 않고 무턱대고 이런 말을 하였다면 난 어떤 벌을 받아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여러 집회 현장을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그사람들은 인생을 참 열심히 산 사람들이구나.’

    어느 집회현장엘 가서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네들 중에 그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이 없더라. 온갖 모욕과 부당한 명령도 감수하고 아주 장시간의 노동에도 군말이 없고.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몇 년씩 아니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아니면 이곳에서 나의 인생 전체를 걸어보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바보들이다. 거기에다가 결혼하여 아이까지.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 왜들 인생을 나처럼 ‘대충 살지’ 않는지 답답하다.

    몇 년씩 온갖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모욕과 아픔과 외로움과 가난을 겪으면서 싸움을 하는 분들. 도대체 그들이 그 오랜 세월을 싸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일까? 사회주의 같은 이념일까? 단지 가족이었다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나은 선택이다. 이념 이건 아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저 ‘생활인’에 가깝다. 내 생각엔 일종의 억울함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인생을 대충 살아왔으므로 몇 번의 해고를 당했어도 변변한 항의 한번 하지 않았다. 그 직장에서 대충 일한 내가 거기에 무슨 억울함이 있다고 버틸 것인가? 나는 결혼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삶을 대충 살아서는 불가능, 아니 안하는 게 낫다. 이 결정은 내가 대충한 선택 중에 아마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해서 삶에 무슨 애착을 가질 일도 별로 없다. 그러니 뭐 죽기살기로 싸울 일도 없다. 행복한 내 인생이여.

    하여간 그들의 억울함이든 이념이든 분노이든 간에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건, 그들 대부분은 나처럼 인생을 대충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대충’이라는 한 단어가 지금의 비정규직 투쟁을 설명하는 중요한 고리가 아닌가 싶다.

    재능 노동자들, 이번에 이기고 나서 "대충 살자"

    이들은 대충 살지 않았으므로 열심히 일한다.열심히 일함으로써 착취당할 가능성도 많아진다. 즉 이들은 나 같은 사람들보다 투입 대비 수익율이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자 여러분이 자본가라면 누구를 착취하겠는가. 그들은 더군다나 가족까지 있다.

    물론 자본가들도 잘 알고 있다. 대충 사는 사람을 건드리면 이렇게 몇 년씩 자기 이름이 나쁜 놈으로 불리는 일은 없을 것임을. 하지만 ‘대충족’에겐 뭐 해먹을 게 별로 없는데, 조금은 귀찮지만 어쩔수 없이 ‘열심족’들을 건드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감히, 정말 감히다.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내본다. 대충 살자. 결혼도 하지 말고, 가족도 구성하지 말고, 일도 대충하고 뭐 대충대충 살자. 그럼 자본가들도 쉽게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고, 우리들도 그렇게 억울할 일도 없을 것 아닌가.

    혹자는 내게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대충 살자면서 왜 비정규직 투쟁에는 자꾸 기웃거리느냐고. 여기에는 두 가지 아주 이기적인 이유가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기에 나 같은 ‘대충족’들이 기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심족’들은 나의 숙주이기 때문이다. 숙주가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자본가들의 탐욕이 이젠 나 같은 동전까지 노리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강종숙, 한창훈, 유명자, 오수영, 유득규 외 재능 노조원들이여, 이번에 이기고나서는 "대충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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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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