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니지의 전태일, 혁명 불꽃되다
        2011년 01월 25일 1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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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이후 독재국가였던 튀니지가 이제 혁명의 도화선 국가가 됐다. 주변국인 알제리에서도 이미 거리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동의 핵심국가인 이집트에서도 반정부 시위 분위기 확산되고 있다. 인구 1038만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국가 튀니지 상황은 여러모로 현재 각국 나라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75년간 프랑스령이었던 튀니지는 1956년 3월 독립한 뒤로 단 두 명의 대통령만이 존재했다. 1987년 당시 총리이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74)가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교체한 것이 가장 최근이다. 벤 알리는 2009년 3선까지 연임을 허용한 헌법을 고쳐 5선까지 하면서 23년간 독재자로 군림했다. 튀니지 인구의 98%는 수니파 무슬림이며, 1%는 기독교인이다.

    벤 알리 가족은 부정축재로 약 5억 파운드(약 6조2000억 원)의 돈을 프랑스 은행에 넣어두었다. 벤 알리는 튀니지를 자신의 사유재산처럼 강탈하고 온갖 사치를 부렸다. 튀니지 민중들은 분노는 부정부패한 정권과 낮은 임금, 높은 실업률, 높은 물가인상율이 결합돼 강력한 혁명의 분출로 터져 나왔다. 튀니지의 공식 실업률은 14%(2010년)이지만 청년층 및 지방의 실업률은 40%를 웃돈다. 올 들어 과일 채소 등 식품값이 폭등했다.

    튀니지의 ‘전태일’, 혁명의 불꽃되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혁명은 아주 작은 사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17일 대학 졸업 후 일자리가 없던 청과물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당시26세)가 경찰 단속 이후 생계가 막막하자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튀니지의 ‘전태일’ 청년은 결국 올해 1월 4일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벤 알리 정권은 폭력으로 진압했다. 공식적으로 시민 60명이 죽었지만 200명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하자 정권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벤 알리 정권은 3명 이상 모이는 집회를 금지하고 군은 언제든지 시민을 향해 발포할 수 있다. 거리가 탱크와 무장 군인들로 배치되고 시위대와 청년 등 경찰 및 군대 폭력이 자행됐다.

    이와 동시에 튀니지 민중들의 저항도 확산되고 더욱 굳세졌다. 민중들의 분노로 벤 알리의 부인의 조카가 칼에 찔려 숨졌다. 방화, 약탈, 무질서 등 보통 보수언론들이 묘사하는 피를 흘리는 혁명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중혁명은 다수의 혁명이기 때문에 소수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자행되는 자본주의의 기아, 전쟁, 학살보다 훨씬 평화롭다. 다수가 같은 편이 된다면, 특히 지배자들의 재산과 권력을 유지하는 무장권력 경찰과 군대가 우리 편으로 넘어오는 시기엔 특히 그렇다.

    튀니지에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 14일 혁명의 정점에서 중무장한 군인들은 정부 청사 앞에 모인 5천여명에 군중을 향해 총을 쏘라는 벤 알리의 명령을 거부했다. 혁명의 핵심적 요소인 경찰과 군대가 민중들의 편으로 돌아선 것이다.

    결국 벤 알리는 도망치듯 이날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이후 여야 통합 과도정부가 출범했지만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를 비롯한 구체제 인사가 과도정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이 시위의 핵심에는 총노동연맹(UGTT)가 있다.

    UGTT는 헌법개정, 집권당(RCD) 해체 등을 요구하며 튀니지 민중혁명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과도내각에 들어간 장관들 중 3명이 UGTT 소속이며 이들은 과도내각에 반발해 사퇴했다. 튀니지 민중들은 멈추지 않고 ‘과도정부 퇴진’을 주장하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 시위대에는 경찰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미친 존재감’ 튀니지 혁명 여파

    튀니지 민중혁명의 ‘미친 존재감’은 주변국 알제리와 예멘, 이집트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5일부터 알제리에서도 청년들을 중심으로 실업률, 물가인상에 반대하는 거리시위가 집회금지법 철폐를 주장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고 있다.

    알제리에서는 높은 물가와 실업률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총 7명이 숨지고 800여명이 부상했다. 정부는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0여명을 체포했다.

    튀니지 혁명의 정점이었던 14일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혁명의 파장이 중동의 독재국가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튀니지처럼 독재에 시달려온 예멘에서도 16일부터 튀니지 지지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33년째 장기 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을 겨냥해 "쫓겨나기 전에 떠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요르단에서도 14일 5천명 이상 시위대가 “튀니지가 우리가 갈길”이라고 외치면서 물가 인상반대와 사미르 리파이 총리 퇴진을 요구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곳은 중동의 선진국 이집트다. 이곳에서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분노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집트의 소비자 물가도 지난해 비해 10.7%에 이르는 등 생활고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14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29년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수십 명의 시위대가 카이로 주재 튀니지 대사관 앞에서 “벤 알리, 무바라크에게도 (탈출)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달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18일부터는 튀니지처럼 분신자살이 3명에 이르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중동의 ‘독일’, 이집트 확산이 관건

    중동의 선진국 이집트가 튀니지 혁명을 뒤쫓아가는 것은 유럽의 작은 나라 그리스 총파업·혁명이 유럽의 ‘기관차’ 독일의 총파업·혁명으로 나아가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이집트 노동자들은 거대 공업에 집중되고 대규모인, 중동에서 가장 산업화된 나라다.

    튀니지발 중동혁명 확산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19일 이집트에서 열린 아랍정상회의의 주제는 튀니지 ‘빈곤퇴치’로 급변경했다. 아랍국들은 튀니지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20억 달러 기금 조성을 결정했다.

    오바마 등 서방 지배자들은 마지못해 튀니지 혁명을 지지하는 듯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튀니지의 새로운 지배자가 자신들의 코드와 맞춰질 것을 원하고 있다. 이들 생각처럼 튀니지 혁명의 결론이 기존의 많은 혁명들처럼 정권퇴진과 새로운 지배자를 맞는 것으로 마무리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튀니지의 민중혁명은 수많은 자본주의 언론과 책, 연구 등에서 쏟아내는 ‘혁명은 불가능하고 신자유주의는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생각을 단번에 박살냈다.

    예고되지 않는 혁명, 신자유주의와 같이 커와

    패배감과 절망의 신자유주의 시대는 독재, 물가인상, 소수 부정부패, 반민주의, 규제완화 등에 맞선 혁명의 시대를 꿈틀거리듯 함께 키워왔던 것이다.

    한국 이명박 정권도 부정부패, 물가인상, 반민주, 권위주의 등 수많은 점들이 튀니지와 닮아있다.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있다지만 소수 자본과 정부 고위 관료들만이 이 혜택을 보고 대다수 민중들은 저임금, 실업, 주택난 등에 시달리고 있다. 튀니지 민중혁명이 한국에서도 아주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튀니지 혁명이 전혀 예고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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