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 "죄송해요"…노동자 "고마워"
    By 나난
        2011년 01월 23일 10:1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하나 같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학교가 부끄러웠다”며 큰 절을 올리는 졸업생도 있었다.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며 “죄송하다” 말하는 재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계약해지로 20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익대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은 “괜찮다”며 “고맙다”는 말로 혹여나 학교와 자신들과의 싸움에서 상처받았을 이들을 위로했다.

    착한 학생, 함께 싸우는 동지

       
      ▲ 홍익대 재학생-졸업생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0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22일, 촛불을 켰다.(사진=이은영 기자)

    22일 토요일 오후 5시경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정문에 촛불이 켜졌다. 지난 1월 1일 새해 아침을 ‘해고’로 맞은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홍익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강추위 속에 20일째 계속된 농성으로 지친 노동자들의 마음과 학교 측의 용역계약해지로 170명의 노동자가 해고된 것에 대한 부채감이 100여개의 촛불과 함께 태워졌다.

    이날 한 재학생은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해고당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걱정이 됐다”며 “그런데 잘 싸우시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해 말보다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님, 아버님은) 저희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하시지만, 오히려 저희가 고맙다”며 “저희는 단순히 어머님 아버님께 힘을 드리는 착한 학생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동지”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전에는 몰랐습니다. 매일 청소하고 계실 때 지나갔는데도 몰랐습니다. 저희가 밤새 축제를 하고 해장국을 마시고 돌아갈 때 휴일에도 나와서 청소하시는 청소노동자들, 24시간 내내 학교를 지켜주시는 경비노동자들, 동아리방에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 천장에서 물이 샐 때 고쳐주시는 시설관리 노동자들. 그 분들이 저희 곁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필요한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재학생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이번 싸움을 통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시는지, 얼마나 낮은 임금을 받고 계시는지, 얼마나 부당한 조건에서 일하고 계시는지도, 그리고 학교가 얼마나 악랄한지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09학번 서 아무개 학생은 “오늘 촛불문화제에 학생들이 별로 없어 아쉽다”며 “어머님, 아버님들이 고용승계될 때까지 함께 하겠다”며 든든한 후원자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졸업생들의 참여와 물품 지원도 이어졌다. 한 졸업생은 촛불문화제에 사용된 음향시설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졸업생들은 후원기금 320만 원을 노조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50~60대의 노동자들이 20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 홍익대학교 한켠엔 청소노동자들의 작업복이 미술작품처럼 전시돼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지지발언을 위해 나선 90학번 조 아무개 졸업생은 “사과의 의미로 큰절하겠다”며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에게 절을 했다. 그는 “맥도날드 알바생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지, 주유로 알바생보다 더 힘들게 일하시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말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괜찮다”, “절 안 해도 된다”, “정말 고마워”,  “사랑해”라고 응답했다. 

    "후배들 마음 진짜 그런 거 아닌 거 아시죠?"

    조 씨는 농성 초기 총학생회와 마찰을 빚은 것과 관련해 “우리 학생들이 면학분위기 때문에 집회를 그만하라고 한다”며 “(학교 내 노동자들의 고용문제조차) 돌아볼 겨를도 없는 사지로 후배들을 내모는 것 같아서,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후배로 만드는 것 같아서, 이런 세상을 같이 만들고 있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후배들 진짜 마음이 그런 게 아닌 거 아시죠?”라며 “어머님, 아버님들이 조금만 더 따뜻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농성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과 학생 간의 갈등이 해소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 사진=이은영 기자

    이숙희 공공노조 홍익대분회장은 “너무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가슴이 뭉클하다”며 감사했다. 이 분회장은 “(용역계약 해지로) 본의 아니게 제일 많은 피해를 보시고 계신 분들이 홍익대 재학생과 동문”이라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들의 졸업장이 빛날 수 있도록 저희가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며 “하루빨리 일이 수습돼 이렇게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아닌 따뜻한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추운 날씨에도 문화제에 동참한 사람들이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시했다.  

    한편, 이날 오후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는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트위터 모임인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개최한 바자회가 열렸다.

    "홍대 총장님, 밥 한 끼 먹읍시다"

    ‘우당탕탕’이란 이름으로 열린 바자회는 지난 21일 <조선일보>에 청소노동자 투쟁 지지 광고를 내고 남은 여분으로 진행된 것으로, 인디밴드의 공연은 물론 책, 생필품 등이 판매됐고, 송판부수기, 다트게임 등도 진행됐다. 탤런트 김여진 씨 역시 함께 참여해 직접 물건을 팔기도 했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은 앞선 지난 21일에 “홍익대 총장님 같이 밥 한 끼 먹읍시다”는 제목과 함께 청소노동자의 편지를 <조선일보>에 게재했다. 해당 광고 속 편지에서 청소노동자는 “최저임금 75만 원의 월급과 300원의 점심값을 받으려 일해 왔다”며 “우리의 바람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와 일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익대라는 한 울타리에서 함께 일하는 식구라면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으며 이야기 나누면 해결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총장님 같이 밥 한 끼 먹읍시다”고 제안했다. 현재 학교 측은 입찰 설명회를 진행한 상태며, 오는 24일 신규 용역업체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