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폭탄론, ‘복지폭탄’으로 잠재우자
        2011년 01월 21일 02:5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불과 얼마 전 ‘뉴 민주당 플랜’을 제출하며 어정쩡한 중도 노선을 지향했던 민주당이 무상복지를 씨리즈로 발표하며 이제는 ‘복지국가 정당’으로 새로운 질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소위 ‘3+1 정책’이라고 불리는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대학등록금 반값 정책이 그것이다. 이에 복지와 세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이 한창이다.

    복지국가론자들은 왜 ‘복지증세론’을 정면제기하게 되었는가

    현재 복지국가 담론의 확산에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이하 ‘복지파’)의 역할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07년 9월에 출범했다. 이때 발간한 책이 『복지국가 혁명』(밈 펴냄)이다. 그리고 2009년 봄에는 필자도 참여했던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산책자 펴냄)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복지파의 주장은 ‘선(先)복지 후(後)증세론’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복지증세론’을 정면에서 제기하고 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복지국가 담론을 둘러싼 정세변화와 정치전선에 대한 상황인식 때문이다.

    2007년과 2009년까지만 해도 한국 정치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지배적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파는 복지국가 담론을 ‘뜨는’ 의제로 만드는 것이 당시의 실천적 과제였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둘러싼 정세는 급격히 바뀌었다.

    일개 정책에 불과했던 무상급식은 이후 ‘보편적 복지’ vs ‘선별적 복지’라는 거시적 복지국가 유형론 논쟁으로 발전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복지국가 담론에 올라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는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회적 서비스 개념과 생애소득별 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한국형’ 복지국가론을 제기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한나라당은 원내대표 국회 연설에서 70% 복지를 주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만들고자 할 때, 지금의 실천적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복지국가 건설을 실질적인 ‘현실 정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정치전선’을 선명하게 그어야 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필두로 하는 대한민국 복지파는 바로 이러한 정세인식에 기반해서 ‘복지증세론’을 정면에서 제기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담론을 둘러싼 보수파와 진보파의 ‘증세반대론 동맹’

    민주당이 무상복지 3+1 정책을 발표하자 조중동은 종부세 때 한껏 재미를 보았던 ‘세금폭탄론’의 함정을 파놓고 세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내에서는 김효석, 이용섭 등의 관료출신 정치인을 중심으로 증세반대론을 주장하고 있고, 조중동 역시 ‘세금폭탄 프레임에 걸리기만 해봐라~’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진보대통합 관련 어떤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성희 최고위원 역시 ‘증세는 안된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밝힌 적이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하자고 할 때까지만 해도 진보와 보수가 선명하게 대립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대한민국 제1야당이 보편적 복지국가와 관련한 ‘정책’을 실제로 당론으로 채택하자 ‘증세’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파 일부와 보수파 일부에서 ‘증세반대 동맹’이 실현되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제로 만들 의사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들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철학적 확신’이 충분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본질 – ‘세금을 통한 연대’에 기반한 사회연대 국가

    도대체 보편적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일부 ‘무지한’ 사람들은 복지국가는 미국식, 독일식 등 다양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식 복지국가와 독일식 복지국가는 성립 가능한 말이지만, ‘보편적 복지국가’란 오직(!)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식 복지국가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미국식은 빈곤자에 한해서만, 독일식은 고용된 사람에 한해서만 주요 복지서비스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 점이 미국식 모델과 독일식 모델의 핵심 특징이자 동시에 약점이다. 반면 스웨덴으로 상징되는 북유럽식 복지국가는 빈곤/고용 여부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이라면 누구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북유럽식 복지국가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굳건한 ‘복지동맹’과 여성을 포함하여 노동과 비(非)노동의 굳건한 ‘복지동맹’을 만들게 된다. 그렇기에 설령 우파정권으로 교체되어도 복지제도의 큰 틀은 변화되지 않는 불가역성을 갖게 된다. 국민대중의 두터운 복지체험과 복지동맹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러한 보편적 복지국가, 북유럽식 복지국가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연대 국가’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뤄지는 사회연대의 핵심은 바로 ‘세금을 통한 연대’이다. 즉, 북유럽식 복지국가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금동맹’에 기반한 ‘복지동맹’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진보진영 일부에서 주장하는 ‘노동있는’ 복지국가가 어쩌니, ‘노동연대’가 어쩌니 하며 수식어를 달고자 하는 그 모든 시도는 본질적으로 엘리트주의적 발상이며, 대중적 용어를 회피하고 운동권적 용어를 동원하는 마이너적 발상에 불과하다. 보편적 복지국가 그 자체가 사회연대 국가이며, 보편적 복지국가 그 자체가 조직되지 않은 광범위한 영세기업-비정규직 노동자를 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에게도 복지를! 서민에게도 세금을 !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 민주노동당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 슬로건은 미국식 복지 모델의 특징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식 모델은 세금은 부유층과 중산층에게 걷고, 복지혜택은 유색인종을 중심으로 하는 서민층에 집중하기 때문에 부유층과 중산층의 ‘반(反)복지 동맹’이 이뤄지고, 결국 서민층의 복지정책은 정치적 포위를 당하게 된다. 북유럽 모델이 중산층과 서민층의 ‘복지동맹’에 기반해서 부유층을 정치적으로 포위하는 것과 정반대 형국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국민들에게 다르게 말해야 한다. “부자에게도 복지를! 서민에게도 세금을!”이라고 말이다.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부유세처럼 부자에게 ‘삥’ 뜯어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중산층 이하도 왜 세금을 더 내야 하냐고 반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부자에게만 의존하는 조세체계로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실제로는 복지국가를 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 그것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부자에 대한 계급적 적개심을 고취시키며 계급투쟁을 ‘선전-선동’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중동의 ‘세금폭탄론’에 대해 ‘복지증세론’으로 맞서며 정면 승부해야 한다. 이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닐 뿐더러, 이를 피하고자 하는 순간 국민들에게 복지국가 건설의 ‘진정성’과 ‘실현가능성’ 모두를 의심받게 될 것이다.

    조중동의 ‘세금폭탄론’, ‘복지폭탄’으로 날려버리자

    민주당이 제출한 3+1 무상복지 정책은 민주당측 발표 예산만 16조 4천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예산추계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등과 다른 것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수조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

    조중동이 ‘세금폭탄론’으로 톡톡한 재미를 봤던 종부세의 경우 노무현 정부가 ‘어디에’ 쓸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국민들 입장에서 혜택은 불분명한데 세금은 올라간 격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증세 논쟁은 ‘복지국가’를 기본 프레임으로 하면서 "세금 더 내고 복지국가를 할래? 세금 안내고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 사회를 지속시킬래?"를 묻는 구도이다.

    이에 우리는 국민들에게 물어야 한다. 미국처럼 신자유주의적 각자 도생 사회를 선택할 것인지? 스웨덴식 북유럽 복지국가처럼 ‘세금을 통한 연대’에 기반해서, ‘인간의 복지국가 공동체’를 만들 것인지?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묻고, 정직하게 심판받아야 한다.

    일개 정책이었던 무상급식 쟁점이 보편적 복지 vs 선별적 복지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복지국가 논쟁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복지와 연동된 ‘증세’ 논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쟁점이 아니다. 그리고 이 전선에서 수세적이면 복지국가는 실현 불가능하다. 이 논쟁은 필연적으로 미국식 사회인지, 북유럽식 사회인지를 묻는 체제 논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믿는다. 조중동의 ‘세금폭탄론’은 ‘복지폭탄론’에 의해서 격퇴될 것이라는 점을.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