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적 소탕 군사작전 보도 이상하다
        2011년 01월 21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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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18일(한국시간)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시도하다 해군 3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어떤 언론도 이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방부 브리핑으로 군사작전이 실패했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었던 일부 방송과 신문은 19일과 20일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다른 나라의 성공한 해적 소탕 사례를 집중조명하고 무력진압을 합리화하는 보도를 내놨다. 도대체 언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MBC와 SBS는 19일 메인뉴스를 통해 해적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인질을 구출해 낸 외국 사례를 소개했다. MBC는 <어떻게 구출했나> 제목의 리포트에서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지 4일째라는 것을 전하면서 독일과 미국이 지난해와 2009년 교전 끝에 해적들을 사살하거나 생포하고 인질들을 구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SBS도 사례만 달라졌을 뿐 보도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SBS는 <협상 대신 군사작전> 기사에서 "주로 석방 협상에 의존해온 우리와는 달리 미국과 프랑스는 군사작전을 통한 구출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며 특수부대를 투입해 해적들을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한 프랑스와 미국의 성공사례들을 소개했다.

       
      ▲SBS 1월 19일 <8뉴스>

    신문은 어땠을까. 20일 한개 면을 털어 소말리아 해적의 선박 납치 문제를 집중조명한 조선일보는 5면 <프랑스 국기만 봐도 벌벌 떠는 해적들>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이 세계 각국의 선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지만 프랑스·러시아 선박 등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들 국가는 자국 선박을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해 강력한 소탕 및 인질 구출작전을 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경대응에 무게를 싣는 보도를 했다.

    중앙일보는 3면 <삼호드림호 학습효과…정부 "더 이상 해적의 봉 아니다"> 기사에서 해적 주도 협상에 계속 끌려가면서 지난해 삼호드림호 때 105억 원이라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면서 해적과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게 국제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와 문화일보도 앞선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과거 피랍 사례와 외국의 군사진압 사례를 소개하면서 정부가 협상을 할지, 강경대응을 할지 고심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의 해당 기사에는 각각 <정부, 삼호주얼리호 구출 고심>(6면)과 <또 돈으로 협상? 이번엔 전격 구출?>(10면) 제목이 달렸다.

       
      ▲조선일보 1월 20일자 5면

    언론들이 해적에 피랍된 선박 구출과 관련해 무력진압과 강경대응을 거론하는 건 당연하다.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이 걸려 있기 때문에 논쟁이 그치지 않는 문제이긴 하지만 반복되는 선박 피랍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언론들이 외국의 여러 나라들이 해적과 협상하지 않고 군사작전을 통해 선박과 인질을 구출한 사례를 일제히 보도하고 나선 시점은 이미 우리 해군이 군사작전에 나섰다가 실패한 뒤였다.

    작전이 이미 벌어져 3명의 부상자까지 발생했는데 주요 언론들이 타협보다 군사작전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좋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보도를 일제히 내놓은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심지어 동아와 문화일보 등은 정부가 삼호주얼리호 구출 문제를 놓고 타협할지 아니면 강경대응할지 고심하고 있다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언론들이 해군의 군사작전 사실을 몰랐어야 한다. 그렇다면 언론은 무력진압 작전전이 벌어졌다는 걸 몰랐던 것일까. 아니다. 국방부는 이미 작전이 실패하고 부상자가 발생했던 18일 밤에 긴급 브리핑을 열어 기자들에게 전반적인 사건내용을 설명해줬다.

    엠바고(보도시점 유예)가 걸리기는 했지만 19일에는 2차 브리핑까지 있었다. 결론적으로 언론들은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기 위한 군사작전에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우리 쪽에 부상자까지 발생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던 셈이다.

       
      ▲문화일보 1월 20일자 10면 

    엠바고가 걸려 있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언론사에서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면 엠바고가 풀리는 시점까지 관련사건을 보도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해군의 군사작전 실패 사건은 보도하지 않은 채 성공한 외국의 무력진압 사례들을 부각시키는 보도를 쏟아낸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일종의 왜곡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군의 군사작전 실패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해당 언론들의 기사를 접한 일반 국민들은 무력진압이 세계적인 추세이며 효과적인 해결방법인 것처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마 작전 실패는 비판받겠지만 협상 없이 무력진압이라는 강경책을 선택한 정부의 책임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정부가 이번 피랍 사태를 해적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케이스로 삼으려고 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20일 중앙일보는 "정부 관계자는 ‘삼호드림호 사건 당시 대한민국이 해적들의 협박에 끌려다닌 인상을 주면서 국격이 훼손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며 "정부 내에는 이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 한국인은 해적이나 테러단체의 봉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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