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파는 없다?
        2011년 01월 19일 10: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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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대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더 나아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통합 경로에 대한 ‘진언과 고언’들이 중원의 고수는 물론 장삼이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0년 말까지 진보정당들은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구성에 합의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아직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당사자들의 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경우 진보정당 통합의 핵심 두 주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당내 의견도 모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 당위론’만 무수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분열은 공멸이라는 문제의식과 대중의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때 정치적 조직으로서 치명적 ‘응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 논의를 가능하게는 만들긴 했으나, 셈법들이 다르다.

    진보양당이 분당이 괜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또다른 통합 역시 그리 쉬운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분당 원인이 해소돼야 실질적인 통합 논의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2012년을 준비하는 각 당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레디앙>은 통합논의가 본격 궤도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2011년을 맞아 구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후를 돌아보고 그동안 벌어졌던 통합논의의 흐름을 진단하며 향후 통합논의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하였다. 이 기획은 모두 8회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주>

    "’독자파’는 틀린 표현이다"

    “‘독자파’가 통합을 반대하는 세력은 아니다. 그러므로 ‘독자파’라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지방선거 이후 진보신당 내에서 독자파-통합파 논쟁이 한창일 때 한 독자파 인사가 한 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말처럼 ‘진보신당 독자파’ 중에는 통합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민주노동당 내에서 독자파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들이 ‘독자파’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왜 통합에 소극적이며, 대신 그들의 주장은 무엇일까? 진보정치 대통합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여전히 각 당 내에는 독자세력이 존재하고 있고 각 당 내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오히려 통합파보다 높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렇다면 통합의 가능성보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 아닐까?

    민주노동당은 사실 ‘독자파’가 없다. 진보대통합은 분당 이후부터 민주노동당이 지속적으로 가지고 왔던 입장이다. 다만 민주노동당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치 대통합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갖기 시작했다. 정성희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며 “단지 적극성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정책당대회에서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을 만장일치로 무리 없이 통과시켰으며 그해 12월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를 확인하고 진보세력에 대통합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어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치 세력 간 선거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주노동당은 반MB연대를 통해 성과를 거두게 된다.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느낌"

    이후 민주노동당에서는 반MB연대론이 더욱 힘을 얻기 시작했고, 2012년 총선-대선 전략에도 반MB연대가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진보대통합에 대한 적극성이 떨어지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으로 진보대통합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분당 직후에 비하면 그 적극성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역위원장 출신의 민주노동당 한 관계자는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진보대통합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느낌이 든다”며 “분당 당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일부 당원들도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인 입장도 있는 만큼 통합을 원한다면 더욱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진보신당 독자파 역시 ‘통합’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 발전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난해 10월 진보신당 임시당대회에서 ‘새 진보정당 건설’과 ‘당 발전 강화’가 동시에 통과된 것도 독자파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진보대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기구건설을 부결시킨 것은 독자파의 정치적 승리로 풀이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는 “지방선거 이후 독자파는 소극적 통합파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현재의 분위기에서 독자노선을 추진하는 것에 정치적 부담이 높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당 내 독자파들 중 일부는 진보신당 창당 정신이 원래 ‘제2창당’이었음을 주장하며 당 발전 강화를 위해 사회당 등 비자주파 진영의 선통합을 주장하기도 했다.

    범진보진영의 통합을 주장하는 독자파 진영이라 하더라도 통합파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2012년 목표로 통합’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당면한 2012년만을 목표로 통합의 속도를 높여봐야 ‘도로 민주노동당’이 되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원인 해소 없는 통합은 과거 반복일 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독자파들의 이같은 주장은 결국 분당에 기원을 두고 있다. 분당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으며, 감정적으로도 많이 상해 있는데다 분당 이후 몇 차례 선거를 거치며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이 더욱 높아졌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분당도 이미 3년이 지났지만 당시 종북주의 논란으로 상처를 입었던 당원들이 아직 많다”며 “그들은 다시 당을 합치는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도 “종북과 패권주의에 대한 해소 없이 다시 당을 같이 해봐야 과거를 반복할 뿐”이라며 “그렇게 새 진보정당을 건설해도 지역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연석회의에서 과거 분당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분당 직후 민주노총이 10만 조합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최근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창립해 진보정당의 통합을 압박하고 있지만 통합의 속도가 나지 않는 것에도 이같은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번 갈라선 부부는 재결합이 어렵다”는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의 말은 민주당-국민참여당 사이뿐 아니라 진보정당치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결국 분당부터 통합에 이르기 까지 그 주체가 진보양당의 당원들일 수밖에 없고 분당에 대한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되지 않는 이상 통합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덮고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토론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분당의 기억’에 대한 정리가 요구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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