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조복지 구멍가게, 진보가 답답해?
    의제확대-큰 국가 등 더 급진화돼야
        2011년 01월 17일 03: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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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의 ‘좌클릭’의 폭과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 무상급식으로 시작한 민주당의 좌클릭은 지난해 10월 전당대회를 통해 ‘중도실용노선’을 폐기하고 ‘보편적 복지’를 채택함으로서 공식화되기 시작하더니 최근 ‘무상의료’와 ‘무상보육’까지 언급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보편적 복지 의제에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좌클릭, 빠르고 넓다

    민주당의 이같은 변화는 2012년 총선과 대선 사전포석의 성격이 짙다. 그리고 이는 역으로 한국의 복지 수요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민주당의 적극적인 복지 공세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포퓰리즘’ 논란이 번져가고 있지만, 참여정부 시절 민주노동당의 복지정책에 대해 ‘포퓰리즘’ 공세를 벌인 것이 열린우리당 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를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시선이 복잡한 것은 그 이유다. 보편적 복지를 적극적으로 제시해 온 진보진영이지만 최근 복지논쟁의 중심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뿐, 진보정당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었다. ‘원조’ 구멍가게 앞에서 SSM끼리 상권다툼을 벌이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이러한 보편적 복지논쟁의 확장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나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모두 최근 복지논쟁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최규엽 새세상연구소장은 “보편적 복지가 확장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며, 보편적 복지가 그만큼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의장도 “무시할 수 없는 복지수요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보진영으로서는 답답한 것이다. 진보양당 관계자들이 복지의제 확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복지정책을 제시하는 다른 정파에 경계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정책방안이 진짜복지-가짜복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2015년까지 증세없이 세원관리 지출구조 개선으로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재원확보 없는 복지확대는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한 말이나 민주당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민주당 내부, 증세논쟁 시작되나?

    그러나 최근의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정책을 위한 당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세부계획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를 통해 “민주당의 무상급식 등 3+1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지정책과 관련한 재정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것은 건설적-합리적으로 풀어나가면 된다”며 “재정 구조에서 세입세출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대책을 마련하고 복지정책을 보완해 나가면 시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지적하는 세입세출과 관련해서도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혀진다.

    민주당이 세입세출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개혁할지는 알 수 없으나, 민주당 내에서도 복지를 위한 ‘증세’에 관한 논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16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보편적 복지가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확실한 재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세금 신설이나 증세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진보진영의 정책적 차별성 여지는 더욱 줄어드는 셈이다. 최규엽 소장은 “민주당의 복지 의제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용역을 의뢰했으며, 거기서 나온 내용이 중심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책의 내용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며 사실상 진보진영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영 의장은 “복지의제가 확장되는 것은 민주당이 야당이 되면서 좌경화가 되었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정치의제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진보진영도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이 이 담론을 주도해야 했으나 노무현 정부의 4대 개혁입법으로 동반몰락하면서 이미 이 의제와 관련해서는 실기를 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말로는 한나라당도 보편복지 가능"

    문제는 향후 대응이다. 진보진영의 관계자들은 그러나 결국 민주당 등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해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기반이 진보정당과 엄연히 다르고, 그 진정성도 당에서 받쳐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진보진영의 생각이다.

    이재영 의장은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까지 보편적 복지로는 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재원마련에 있어 누구에게 부담을 줄 것인가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과 한나라당에게 영향을 주는,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대기업 집단 등 재벌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며 “부자증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나 당론 확정에 어렵고, 당론으로 확정하더라도 입법과정에서는 유야무야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규엽 소장도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당시 반값 등록금을 얘기하고 무상보육을 말하는 등 선거가 가까워지면 각 정당의 정책들은 복지와 관련해서는 거의 비슷했다”며 “핵심은 정책실현의 진정성으로 민중들을 주인으로 내세워 함께 정치를 하겠다는 세력이 아니라면 복지정책의 실현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앞으로 진보진영이 더욱 급진화할 수 밖에 없다”며 “사회당이 ‘기본소득’을 얘기하는 식으로 의제 자체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을 경제와 노동과 연관시켜서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말 그대로 큰 국가론을 얘기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아직 작은국가론을 유지하고 있는데 복지국가는 큰 국가”라며 “이를 적극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의 경우 ‘복지’ 자체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고 나서는 이명박과 오세훈 등과 대비돼 근혜가 복지를 주장하고 나섰으나, 그의 ‘줄푸세’로 대표되는 감세 공약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경우 ‘언술 정치’ 이외 실질적인 복지를 추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복지담론’ 전선

    따라서 현재 복지 의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형성된, 말이 중심이 된 허구적 전선과 한나라당 대 민주당 사이의 포퓰리즘 논란이 중심이 된 전선, 그리고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의 실질 내용과 재원 마련 방안의 차이에 따른 경쟁 성격의 대치 전선 등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형국이다.  

    이번의 복지논쟁이 과거 진보정당에서 즐겨 쓰던 수사,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는 비유가 아직 유효한지 여부를 판가름나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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