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발로 그곳에서 내려오라"
    2011년 01월 17일 08:08 오전

Print Friendly
   
  

키 큰 사내 하나, 숨직이며 올랐던…

"자물쇠가 뽜지삤데."
"여자가 무슨 힘으로 그거를 뽜삤을꼬잉?"
"여자라고 함부로 보지 마소, 50미터 용접홀더를 메고 댕긴 사람 아이요?"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월 6일 새벽 세시에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은 지난 2003년 10월 17일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 129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곳이다. 

"10년 전 그 때도 구조조정 이름의 대량학살이 있었고 2년간을 싸워 노사가 합의했건만 그 합의를 사측이 번복하던 날, 키 큰 사내 하나가 숨죽이며 올랐던, 여기가 85호 크레인입니다… 더이상 흩어지지 않기 위해, 다시는 울지 않기 위해 이 85호 크레인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이 85호 크레인의 달력은 2003년 10월 17일부터 시작하여 오늘이 2003년 10월 23일입니다."

290명 정리해고 명단이 개별 통보되던 12일 조합원에게 띄운 편지다.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조선공사시절 스물 한 살의 꽃다운 나이에 입사. "5년만 바짝 일해서 돈벌어 금의환향하려" 했던 한진중공업과의 질긴 인연이 나이 오십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용접슬라그에 불이 패이고, 눈알에 용접불똥 맞고, 손바닥이 찢어지고, 철판에 다리가 깔리고, 동상걸린 손발가락을 문질러가며" 다닌 공장이었다.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아저씨들의 뜻을 대변하기 위해 노조 대의원을 한 것이 그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만들었다.

"살아서 내려가고 싶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부터 조선공사 김진숙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쥐새끼 발자국이 찍힌 도시락을 먹지 않겠다고 벤또를 엎어버리는 싸움을 시작으로 어용노조를 엎고 민주노조를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그는 해고되고 구속되었고, "훈련소 동기, 입사 동기 박창수"를 그의 손으로 묻어야 했다.

박창수를 솥발산에 묻던 날 그는 "그날, 제 청춘도 함께 솥발산에 묻었고, 그렇게 저는 이곳에 들어올 수도 없고, 벗어나지도 못한 채 저는 한진중공업을 맴돌았습니다. 정규직보다 훨씬 많아진 하청노동자들을 보며 무력감을 느껴야 했고, 명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는 아저씨들을 보며 자괴감을 느껴야 했습니다"라며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려고 했다.

그렇게 그는 ‘평생을 짝사랑했던 한진중공업 동지 여러분’과 함께 하기 위해 작년 이맘때 생사를 넘나드는 24일간의 단식을 했고, 여전히 떠나지 않는 정리해고의 망령과 싸우며 1년이 지난 지금은 칼바람 부는 85호 크레인에 올라 수은등을 켰다.

그는 우리들에게 ‘살아서 내려가고 싶다’는 편지를 띄웠다.

"주익씨가 못해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겁니다. 그래서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이 되도록 제가 가진 힘을 다하겠습니다"

김진숙, 그가 조합원들의 품에 무사히 안길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