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인은 특수고용 노동자다?"
        2011년 01월 17일 01: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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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4,320원이다. 즉 한 사람이 한 시간을 일을 하면 아무리 적어도 4,320원은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법으로 명시된 이러한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다. 청년들이 주로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대한 청년유니온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66%의 ‘알바생’들은 그 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평균 임금 9만원

    또한 간접고용의 형태로 노동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사례들을 보면 종종 그 ‘최저선’도 높아 보일 때가 있다. 어쨌거나 그래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뉴스거리가 되고 사회적인 환기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전자의 경우 “어쩜 이럴 수 있나? 애들 아르바이트 하는 돈을” 혹은 “청소 아줌마 불쌍하다”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동의나 지지를 받곤 한다.

    그런데 시급 400(8시간 노동으로 간주했을 때)원이 되지 않는 노동이 있다. 매달 그들은 평균적으로 월 84,625원을 받아왔고, 올해 6.49% 인상된 바에 의하면 월 90,125원을 받게 되어있다. 참고로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최저생계비는 2011년 기준으로 143만 원이다. 16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노동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이라는 기본적인 노동관계에 대한 법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노동자들은 어떠한 방식의 노동조합도 결성할 수 없다. 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임금에 대한 항의를 어떠한 방식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60만의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그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아니 특별한 조치 없이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들 알다시피 군인, 정확하게는 병사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작용할 것이다. 예를 들면 “저기 사람 한 명과 군인이 지나간다.”식의 예비역 남자들이 즐기는 방식의 화법이 있을 것이다. 즉 병사를 한 사람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는 상황이 작용을 한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 몫의 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유예상태’로 혹은 ‘예외상태’로 단지 국가에 봉사를 하기 위해 징집되어 있는 상태이고, 봉사료(봉급)를 받을 뿐이다. 봉급은 임금과 다르다는 게 국가의 논리로 다른 한 편 작용한다.

    병사 숙식에 얼마를 쓰고 있나?

    물론 봉급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는 것은 병사들 뿐 만이 아니고 공무원 전체는 봉급을 받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니까. 그런데 그들(직업군인 포함)은 대체로 최저생계비나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돈을 지급받아왔다.

    그리고 병사들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숙식을 제공받기 때문에 봉급을 많이 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나올 수 있고, 이는 실제로 한 동안 통용되던 논리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직업군인들도 정말 ‘약간’의 돈만 내면 국가로부터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병식을 하고 BOQ(독신자숙소)에 거주하면 된다. 그리고 숙식에 대한 비용을 계산하려면 병사들이 누리는 삶의 공간인 생활관(舊 내무반)이 개인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제공되는지와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이 어떠한 수준의 음식인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과연 그 숙식은 한 달에 9만 원을 떼고 나머지를 다 차압해갈 만큼 훌륭한 수준일까? 지금 국가는 최저임금을 받는 40시간을 일하는 노동자가 한 달에 받게 될 90만 원에서 81만 원 정도의 비용을 병사들의 숙식에 쓰고 있나?

    사실 어떠한 논리를 갔다가 대더라도 지금 병사들이 병영생활을 하면서 받게 될 임금에 대한 정당화 논리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그 옹색한 논리를 알고 있는 정부의 태도가 될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 때는 2년 동결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던 2003년 병사의 봉급은 한 달에 평균적으로 23,375원이었다. 병사들은 시간당 100원이 채 되지 않는 봉급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가 재임한 5년 후의 병사의 봉급이 위에 말했던 월 84,625원이었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 때에는 병사들의 임금은 5년간 3.6배 뛰었다. 그 전까지는 평균적으로 10년에 2배씩 임금이 늘었던 점을 감안하면 노무현 정부 때의 병사들에 대한 정책은 그래도 ‘현실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방개혁 2020에서는 ‘병사 봉급 현실화’가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2년 동안 군인(직업군인 포함)의 임금은 동결이 되었다. 2009년 0%, 2010년 0% 증가했다. 그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공무원들의 임금을 2년 동안 동결했기 때문이다. 병사는 갑자기 그들 대부분이 열망하는 ‘공무원’이 되어버렸다. 공무원들의 ‘고통분담’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체 군인의 임금과 병사들의 임금은 연동되는 것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직업 군인들의 임금인상은 대체로 공무원들의 임금인상과 연동되었지만 병사들의 임금인상은 직업 군인들의 임금인상과 상관없이 나름의 ‘원칙’이나 어떠한 ‘개혁방안’ 등을 통해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병사들에 대한 생각은 최소한 봉급의 측면에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특별한 병사들의 처우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점은 이번 달 국방부가 발표하려했던 국방개혁 과제를 확정하지 못하고 다음 달로 넘긴 것과도 바로 맞닿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의아한 것은 이러한 병사들의 임금 문제가 과연 국방부와 병사들 간의 문제이기만 하냐는 점이다. 갖가지 방식으로 ‘청년실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지 이미 10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고, ‘불안정고용’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가장 열악한 노동자

    계약기간 2년 미만의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은 비록 법제화되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았을지언정 그래도 그에 대한 환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계약기간 평균 2년 미만의 노동이자, 가장 열악한 노동자인 병사들에 대한 문제는 ‘노동문제’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군 인권 관련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병사들의 기본권에 대한 이야기들과 좀 더 확장된 개념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긴 하지만, 군인들의 노동과 다른 형태의 젊은 노동자들의 노동은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만 같다.

    진보진영 역시 병역거부자 외의 군인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군대에 대한 이야기는 반전, 반핵, 군축, 인권의 차원에서 평화단체의 몫이고 다른 좌파 활동가들이나 이론가들은 여기에서 자유로운가? 결국 이는 많은 좌파들 역시 병사들을 한 몫의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유럽의 몇 개 국가들에는 군인노조들이 있고, 유럽연합 단위의 군인노조가 존재한다. 그 군인노조들에는 모든 계급의 군인들이 가입 가능하다. 올해는 폐지되지만 징병제 국가였던 독일에서도 군인노조는 허용되어 왔다.

    물론 유럽에서 가능했다고 한국에서 바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게도 남북대치 상태인데다가 요즘처럼 협상이 교착되고 소규모의 군사적 충돌이 있는 상황들이 지속될 경우 내부에서의 노동조합 조직을 통한 개선에 대한 기획은 너무나 먼 길로 보인다.

    청년유니온 해병대 지부?

    그럼 이 문제를 놓아버릴 것인가? 계속 군인의 ‘기본권’ 문제로 (군)인권단체나 여성계, 종교계의 몫으로만 둘 것인가? 청년유니온이나 다른 청년 단체들은 이 문제에 대해 할 일들이 없을까? ‘청년유니온 육군 지부’, ‘청년유니온 해병대 지부’는 어떠할까?

    현역병들이 당장 군인사법에 의해 정치적 주장을 못하고 있는 것이 상황이고, 내부의 내밀한 상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하여 명백하게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에 대해서는 뭔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 문제들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갓 제대한 예비역 남자들과 입대예정자들을 엮어낼 수는 없을까?

    매번 국방부는 사탕발림으로 ‘군가산점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군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병사들의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리려 했던 바 있다. 안에서 겪은 억울함은 공무원 시험 가산점으로 퉁 치자는 이야기다.

    지속적으로 ‘착취 받을 권리’마저 침해하는 노동시장 진입의 어려움은 예비역 남자들의 이성을 더 잃게 만들고, 그들은 쓸데없이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똘똘 뭉쳐 엄한 곳에 화를 내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노동문제’이며 ‘특수고용’에 관한 이야기다. 특수한 장치들로 빗장을 걸고 있는 문을 누가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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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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