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의 궁긍적 원인을 찾아서
        2011년 01월 14일 07: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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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계의 ‘이단아’, ‘괴물 철학자’로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이 ‘폭력’에 대해 사유했다. 신간 『폭력이란 무엇인가』(슬라보예 지젝, 난장이 15,000원)는 지젝의 이론적 사유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는 자들의 위선

       
      ▲책 표지 

    지젝은 헤겔과 라캉을 바탕으로 마르크스를 더해 그 사유의 복잡한 지형을 그려나간다. 때문에 그의 사유가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분열돼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사유에 동의하든 말든, 최소한 최근 20여 년 동안, 동시대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이슈들과 관련해 그토록 다채로운 대중문화의 소스를 활용해 명쾌한 분석을, 그것도 1년에 2~3권에 이르는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철학자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지젝 번역서들 중 가장 쉽고 명쾌한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을 덧붙여 그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역자는 저자와의 수없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저자가 뜻하고자 했던 말을 한국어라는 맥락 속에 위치 짓고자 노력했다.

    이 책에서 지젝은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과 싸운다고 하면서,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는 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 전체를 관류하는 폭력이란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폭력의 궁극적 원인

    결국은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즉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과 ‘구조적 폭력(systemic violence)’이 중요하며,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저자는 주관적 폭력과 싸우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폭력의 가해자 역할을 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위선을 폭로한다.

    특히 구조적 폭력은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는, 즉각 참여하고자 하는 충동에 저항하는 것, 끈기 있고 비판적인 분석을 사용하여 ‘일단 기다리면서 두고 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진정으로 실제적인 일일 때도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구성은 부제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폭력이라는 주제를 우회하는 6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의 차이를 설명한 1장에 이어 2장에서 저자는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 공포에 있다고, 이웃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 공포가 언어 자체에 내재된 폭력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이어서 테러리즘이 가진 원한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간다. 이 때 원한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될 법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을지에 더 큰 관심을 쏟아 붓는 도착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129)는 예이츠의 시구는 사태에 대한 적확한 묘사다. 이어서 관용적 이성의 이율배반을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의 관용에 명백한 한계가 있음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이 가진 해방적 면모를 드러내 보인다.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지금까지 지젝의 이론적 사유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성찰들을 두루 아우르면서 폭력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도록 하는 문제적 저작이다. 우리는 폭력에 대한 사유를 지젝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폭력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달라질 것이다.

                                                      * * *

    저자 – 슬라보예 지젝

    1949년 옛 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파리 제8대학의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이며 사회학, 철학, 문화 연구, 심리학 등 수많은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세계 지식계의 최전선에서 가장 도발적으로 문제를 던지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철학 스타이다.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유럽의 기적’ 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독일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이론화 하였다.

    지젝의 학문 대상은 이라크 전쟁, 근본주의, 자본주의, 관용, 정치적인 올바름, 전 지구화, 주체성, 인권, 레닌, 신화, 사이버 스페이스, 포스트모더니즘, 다문화주의, 포스트마르크시즘, 데이비드 린치, 알프레드 히치콕 등 수많은 주제를 포괄한다.

    에스파냐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정통적인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라고 표현했으며, 또 한 인터뷰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라고 자신을 칭했다. 단순한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실천하는 이론가로서, 매년 2~3권의 책을 펴내는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개혁파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공역자

    이현우(로쟈)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에서「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2004)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 연구교수로 활동하며,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정일권

    성균관대 사학과 대학원에서 일제시기 교육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도서출판 난장이에서 책을 만들고 있다.

     

    김희진

    성균관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동대학원에서 번역 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출판·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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