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 사각지대, 빈곤 악순환 불러
By 나난
    2011년 01월 13일 1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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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수(29, 가명) 씨는 지난 2009년 대학 졸업 후 여느 친구들과 다름없이 직장생활을 위해 구직활동을 벌였지만, 쉽사리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겨우 들어간 곳은 단기 아르바이트거나 임금에 비해 노동강도가 센 생산직이었다. 2년간의 구직활동을 하며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도 다 쓴 상태. 현재 그는 일반 직장 취업을 포기한 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정섭(32, 가명) 씨는 지난 2010년 5개월간 구로의 한 광고회사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퇴사 후 기대했던 실업급여는 받지 못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고용보험 가입 기준인 180일(6개월)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임시직의 특성상 3개월, 4개월씩 직장을 옮기며 노동력을 팔고 있지만, 아직 한 차례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상태다.

사각지대 넓어져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고용보험으로 빈곤층과 임금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특히나 10여 년간 두 차례의 경제위기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청년실업자, 임시직, 자발적 이직자 중 미취업자, 고용보험 미가입자 등이 증가함에 따라 고용안전망에서 벗어난 이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어떠한 보호 정책도 없다는 점이다. 중위소득 40% 이하의 빈곤층은 부양의무자나 재산보유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임금노동자의 경우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수급하며 재활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빈곤층과 임금노동자 사이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보호가 없다. 고용보험에 가입을 했더라도, 까다로운 실업급여 수급조건으로 인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으로 통칭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없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청년실업자, 영세자영업자 등을 포함해 실직을 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무려 823만 명(2009년 1월 기준)에 이르고 있다. 또 지난해 3월 현재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67.2%인 반면, 비정규직은 42.1%에 그쳤다.

지난 2008년 8월 「경제활동인구 고용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6.8%에 그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가입률은 22.8%, 시간당 임금이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인 저임금 근로자의 가입률도 26.9%에 그치고 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험의 사회화가 가장 필요한 집단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인색한 한국 실업급여

지난 2009년 한국노동연구원이 한국, 일본, 영국, 미국 등 12개국을 대상으로 실업급여의 관대성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이 실업급여 관대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덴마크와 핀란드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이유는 실직 기간의 소득을 보장하고,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업급여가 모든 임금근로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월 60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 등은 법적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데다, 적용 대상이라 해도 저임금 비정규직 등의 경우 보험료 부담으로 인해 미가입률도 높다.

또한 수급 요건이 엄격해 자발적 이직일 경우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박탈되며, 실업급여를 받더라도 급여 수준이 낮거나 수급 기간이 짧아 보장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청년실업자의 경우 고용보험을 낼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다.

결국 고용보험제도가 실직시 소득상실의 위험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더군다나 취약계층은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해, 실직, 특히 가구주의 실직은 가구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안전망 미비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료: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실업급여 비수급 실직자 부가조사」, 2009. 4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계조사」를 가구단위의 분기별 패널자료로 구성해 분석한 것에 따르면, 가구주가 실직하는 경우의 절반이 다음 분기에 빈곤 상태로 전락하고 있다. 비빈곤 상태에 있던 가구의 4.9%가 다음 분기에 빈곤 상태로 유입되는 것과 비교하면, 가구주의 실직은 빈곤 위험을 크게 높이고 있는 것이다.

빈곤층 불안정 일자리 88.5%

더군다나 취업한 빈곤층의 종사상 지위를 보면 임시직․일용직 등의 불안정 일자리가 88.5%를 차지하고 있어, 빈곤층은 실직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반복하며 빈곤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취약계층은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직이라는 경제적 위기와 동시에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라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저임금 일자리와 실직을 순환할 경우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병희 연구위원은 “빈곤층이 취업으로부터의 유출률과 유입률이 모두 높다는 것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반복하는 계층이 많기 때문”이라며 “고용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실직과 빈곤의 동반 위험에 노출된 취약계층이 바로 근로빈곤층”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절대빈곤 상태로 떨어진 이후에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경제위기의 고통이 영세자영업자, 청년실업자 등 노동시장의 약자에게 집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취약계층이 실업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의 실업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이들은 “까다로운 수급조건과 보호망의 협소로 인해 실직에 대한 대책 미비로 빈곤층을 임시직→실직→임시직의 반복된 악순환 속에서 더욱 빈곤화하고, 청년 실업자나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실업급여 수급조건의 완화와 구직활동 촉진을 위한 여러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용안정망 구축 필요

이은미 참여연대 노사사회위원회 간사는 “한국의 경우 빈곤층과 실업급여를 받는 임금노동자 사이의 중간층에 대한 고용안전망이 비어 있는 상태”라며 “경제위기를 겪으며 청년실업이나 자영업자 같은 사람 등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안 되는 이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실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고용보험제도 밖에 없다”며 “그러나 고용보험제도로 포괄되지 않는 사람이 약 60% 정도나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업자나 영세자영업자처럼 제도 자체로 포괄되지 않는 사람과 대상자임에도 조건이 맞지 않아 지원받지 못하는 두 부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청년실업자에 대해 그는 “이들은 일자리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게 아니라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들은 고용보험을 낼 계획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실업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지원과 구직활동을 위한 대책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이 위원 역시 “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빈곤한 실업자에 대해 실업부조를 가지고 있다”며 “그 경우에는 가구자산조사를 통해 빈곤층이라 판결되면, 실업자에게 실업부조라는 돈이 지급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업부조가 없는 나라는 대부분 안전망이 공백상태라고 할 수 있다”며 한국이 이 같은 안전망 공백상태임을 지적했다.

그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피보험 가입 기간이 필요하고, 이직사유에서도 비자발적 이직으로만 돼 있어야 한다”면서도 “외국의 경우에는 자발적 이직의 경우, 일정기간 동안 유예조치를 두고 지원을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원천적으로 비자발적 이직자에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 나라는 대단히 예외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영업자와 청년 실업자에 대해 “외국에서는 자영업자에 대한 실업부조를 당연히 지급하고 있다”며 “한국의 문제는 이들과 노동시장에 처음 나오는 젊은 구직자에 대한 실업부조가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실업상태에 놓인 이들이 소득을 일정 부분 지원받으며 다시 재개할 수 있는 고용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기초생활수급제도와 현 고용보험제도로 수용되지 않는 이들, 즉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의 해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실업자가 빠른 시일 내에 노동시장으로 다시 진입하고, 비정규직과 같은 취약계층 노동자가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고용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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