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일과 MD, 고차원 게임 시작됐다
        2011년 01월 12일 03: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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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방문 중인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근거로 중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는 1월 11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을 만난 지 불과 한 시간만에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거론하면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위협을 거론해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게이츠의 발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먼저 그는 북한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의 북한 위협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전까지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미국 본토까지 다다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대신 동북아 지역의 위협이자 북한이 다른 나라나 테러집단에 핵과 미사일 기술을 판매할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그러나 11일 게이츠는 북한이 “5년 이내”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수 있다며, “우리는 이를 심각한 우려로 간주하고 있고, 협상을 진척시켜야 할 긴급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료가 ‘5년’이라는 시간을 특칭하면서 북한의 ICBM 개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2010년 2월 발표한 미사일 방어체제(MD) 보고서에서 북한이 ICBM을 “언제 어떻게 개발·보유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MD 카드’로 중국 압박 의도 

    북한이 미국의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게이츠의 발언은 중국 압박 전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이츠를 동행한 미국의 관리가 <뉴욕타임즈>를 통해 “중국은 항상 그들의 ‘핵심 이익’과 그들이 대응해야 할 위협을 말하고 있다”며, “이제 중국은 우리 역시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이 한반도의 안정을 이유로 북한을 감싸고 있는 것에 강한 불만을 토로해왔다. 이에 따라 게이츠의 발언은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미국 역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그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고위 관료가 11일자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외교로 대응하는 옵션을 열어 놓고 있지만,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미국의 우려사항을 다루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미국의 의도가 MD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점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미국 주도의 MD를 21세기 최대 위협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지역 MD’는 동북아 유사시 미국과 동맹국들의 공격 능력을 배가시키고 대만의 독립 의지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또한 미국이 본토 방어용 MD 능력까지 배가될 경우 양안 사태 발생시 미국의 개입이 훨씬 용이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게이츠의 발언은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우려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그가 북한의 위협이 동북아 지역 수준을 넘어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된다고 말한 것은 외교적 해결에 실패할 경우 본토 방어용 MD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북한 미사일’ 제시 

    게이츠 국방장관의 발언이 고도의 계산에서 나왔다는 것은 또 다른 고위 관계자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이 관계자는 11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6자회담의 재개 조건으로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약속과 함께, 핵장치 및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 약속을 제시했다. 

    미국 고위 관료가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문제도 북미 대화 및 6자회담의 핵심 의제로 삼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이 관리는 이명박 정부가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강력히 요구해온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 중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강조하고 또 이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삼은 것일까?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MD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압박용이라는 외교적 카드와 함께 국내 정치적 고려도 깔려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본토 방어용 MD는 북한과 이란의 ICBM 위협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며, MD 정책을 수정했다. 핵심은 본토 MD는 속도조절에 들어가면서 동북아, 중동, 유럽 등 “지역 MD”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변화는 공화당 등 보수파들의 거센 반발을 야기했다. 

    공화당은 MD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 오바마 행정부가 간절히 원했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상원 비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에 편지를 보내 MD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다짐한 후에야 간신히 이 협정에 대한 공화당 상원 의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MD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박차를 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본토 방어용 MD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는 점차적으로 국방예산을 줄여 재정적자를 완화해나가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재정정책과 충돌한다. 또한 러시아와 맺은 ‘New START’에는 국익이 침해받을 때 이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러시아는 ‘국익 침해’를 미국의 MD 가속화로 간주하고 있다. 오바마가 공화당에 밀려 MD 예산을 대폭 늘릴 경우 재정적자 심화와 함께 대러 관계 악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볼 때,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게 압박을 가하고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국내 정치를 고려한 카드로서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MD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최대 구실로 삼아왔는데,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를 선언한다면, 공화당의 강경파를 일정 정도 제어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월 들어 미국 관리들이 북한 미사일 문제를 언급하고 나선 것도 2월 중순부터 시작될 ‘예산 논쟁’에 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예상컨대 1월 19일부터 예정된 미중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역할분담론’에 합의할 공산이 크다. 중국은 미국이 남북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주문할 것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 등 미국이 제시한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북한도 동의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미중간의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전략적 타협 움직임, 남북대화를 둘러싼 남북간의 치열한 기싸움, 일본의 대북 대화 재개 의사 표명 및 북한의 환영 의사 표명 등 한반도와 동북아는 열전(熱戰)을 방불케 한 2010년을 찍고 새로운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시 8년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숨통을 쥐고 흔들었던 미국의 MD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사이의 ‘악연’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악연이 재현될지, 미래지향적인 인연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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