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항을 즐기고, 즐기기 위해 저항"
    By mywank
        2011년 01월 12일 01: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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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저녁 7시, 홍대 재개발 투쟁의 상징인 ‘칼국수 집 두리반’에 ‘싸우는 20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또래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20대 운동’의 방향을 모색해보기 위해서였다. 이와 함께 최근 대학생-음악가-노동자의 ‘삼각 연대’가 이뤄지며, ‘홍대스런’ 투쟁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이 지역에 ‘레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임무도 있었다.

    싸우는 20대와 ‘홍대스런’ 투쟁문화

    그래서인지 ‘싸우는 20대, 우린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으로, 진보신당 청년활동가 모임 ‘작당’이 주최한 이날 공개집담회(간담회)가 열린 두리반 건물 3층은 주로 20대들, ‘몇 년 전까지는 20대였던’ 이들로 두리반 건물 3층 공간을 가득 메워졌다. 

    두리반에는 170일 넘게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기증 받은 태양광 발전기로 10W(와트)짜리 전구 2개를 사용할 수 있지만, 집답회를 진행하는 데는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래서 주최 측은 별도로 발전기까지 동원했다. 요란한 발전기 소리와 ‘싸우는 20대들’이 몰고온 ‘기운’ 때문인지, 강제철거 공포가 엄습하며 긴장감마저 흘렀던 두리반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치기도 했다.

       
      ▲오른쪽부터 사회자 양승훈 씨와 대학생 정혜교 씨,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우상수 씨, 두리반 음악가 ‘단편선’.(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집담회에는 중앙대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타워크레인에 오른 퇴학생 노영수 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 ‘부당 감사’에 맞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주현 씨, 두리반 투쟁에 ‘음악’으로 연대하고 있는 음악가 ‘단편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을 벌인 ‘유일한 30대 패널’ 우상수 씨(32) 등이 참석했다.

    패널들은 자신들의 ‘투쟁 후일담’을 이야기하며 집담회를 시작했다. ‘1인 10분’의 자체 규칙이 있었지만, 사회자로 나선 양승훈 씨가 “빨리 끝내 달라”는 메모를 몇 차례 건네야 할 정도로 집담회 분위기는 뜨거웠다.

    비대위, 타워크레인, 공연, 점거농성

    먼저 김주현 한예종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자기 일하기 바빴던’ 문화·예술전공 대학생들이 학교를 ‘학생자치의 장소’로 만든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당시 ‘부당 감사’에 반발한 학생들 사이에서 자발적인 움직임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학교 공간이 대자보 등 창작물로 도배되고 문화체육관광부 앞 1인 시위 등 자발적 활동이 이어졌다”며 “황지우 총장 사퇴를 넘어, 한예종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있었다. 국공립대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있는 ‘시험대’로 생각하고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한예종을 ‘학생자치의 장소’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도 중요한 문제 같다”라고 밝혔다.

    노영수 씨는 “퇴학생 노영수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노 씨는 중앙대 학과 구조조정 반대활동을 한 이유로 퇴학조치를 받은 것에 반발해 학교 측을 상대로 법원에 ‘징계(퇴학)처분 무효소송’을 제기했으며, 오는 14일 예정된 1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노 씨는 “지난 2008년 어느 날, 학교가 대기업에 의해 인수됐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학생들이 학교 시설과 학생 복지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인문계열 축소·폐지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이 발표됐다”며 “학교 측은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계속 ‘코너’로 내몰았고, 결국 나는 학교 타워크레인 위에, 다른 학생들은 한강다리 아치 위에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퇴학생 노영수 입니다"

    그는 또 “올해 봄부터는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그룹 측이 나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 같다”며 “사법부의 판결마저 무시하고 ‘대기업의 힘’으로 끝내 구조조정에 반대한 학생들을 밖으로 내몬다면, 더욱 강력한 방법으로 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제자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저자(우)가 ‘장소를 향한 투쟁’이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두리반 투쟁에 연대하는 음악가 ‘단편선’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뒤, “청년대장 칭호를 붙여줘야 하겠다”는 농담 섞인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단편선’은 매주 토요일 두리반에서 진행되는 ‘자립음악회’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홍대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의미로, 농성장 앞에서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연대 공연’을 하기도 했다.

    ‘단편선’은 “두리반에서 연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고, 나름의 투쟁 방식이 있다”며 “두리반 투쟁은 ‘노동자는 노동자 방식대로, 작가는 작가 방식대로 투쟁하자’이다. 그것을 응용해 나는 음악가 방식대로 열심히 공연하고, 술 마시며 투쟁하고 있다”며 “특히 두리반은 위계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해, 나이나 세대를 강요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저항을 ‘유희’하고, 유희를 위해 저항한다. 깔 건 까고 할 건 한다”며 “두리반 투쟁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조직들이 탄생되고 있다. ‘자립음악생산자모임’도 두리반에서 공연을 하다가 뜻이 맞는 음악가들이 만들게 된 경우이다. 많은 시도들이 두리반을 통해 가능해질 때, 연대의 기회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앞으로 여기서 잘 버티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젊은 비정규직이 노동운동 바꿔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자, 이날 집담회의 ‘싸우는 젊은이 패널’ 중 유일하게 30대였던 우상수 씨(32)는 ‘투쟁 고참’ 답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투쟁의 주체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아기 아빠’이기도 한 그는 24살 때부터 일한 자동차공장에서 해고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에게는 비굴한 ‘하청 인생’을 물려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대차 울산공장을 점거하며 25일 동안 파업을 했다. 하지만 아직이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며 “나도 해고되기 전까지 노동운동을 모르고 열심히 일만하던 사람이었다. 이번 파업을 하면서 ‘나도 싸우면 정규직이 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노조 지회장한테 앞으로는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역사를 바꿔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지금부터는 젊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싸우는 20대들’과 함께한 방청객들이 두리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타워크레인에 오르고 학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음악으로 연대하고, 점거농성에 나선 이들의 투쟁 방법은 제각기 달랐지만, 20대들이 투쟁의 중심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같았다.

    ‘싸우는 20대들’의 이야기과 관련해,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는 “지금 청년들의 투쟁은 ‘장소’를 향한 투쟁, 삶의 터전을 가지기 위한 투쟁"이었으며 "반면 지금까지의 학생운동·노동운동은 사회적 ‘공간’을 열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주현·노영수 씨의 투쟁은 대학이라는 공간이 학생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되게 하기 위한 투쟁"이라며 "단편선·우상수 씨의 투쟁 역시 각각 홍대 일대와 공장이라는 공간이 음악가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되게 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학생인 정혜교 씨도 이날 ‘우리는 그냥 20대, 누가 우리와 함께 싸워줄 것인가?’라는 제목의 발제를 하기도 했다.

    "청년들의 투쟁은 ‘장소’ 향한 투쟁"

    이후 2부 순서로 블로거’ 박가분·송준모·구열회 씨 등이 참여한 지정 토론과 방청객 토론에서는 ‘싸우는 20대들’과 관련해, “수도권 명문대학의 ‘싸우는 20대’만이 20대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싸움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비명문대, 고졸 출신 20대들도 있다”, “좌파적 20대 운동담론은 ‘그들’ 사이에서 맴돌고 있다. 대중적으로 사고가 스며들게 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등의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끝을 모르게 달려가던 이날 공개집담회는 밤 10시 40분이 되서야 뜨거운 열기를 가라 앉히고 마무리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밤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끈끈한 정을 나눴다. ‘홍대스런’ 투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칼국수 집 두리반에서 20대들의 새로운 연대가 모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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