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당한 한나라당과 희망적 '레임덕'
        2011년 01월 11일 03: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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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임덕'(lame duck)이란 문자 글대로 보면 “무리에서 뒤처져 포식자에게 노출된 오리”를 지칭한다고 한다. 알다시피 정치학에서 이 용어는 다음 선거에서 상대당의 후보가 당선 된 후 잔여 임기 동안의 대통령이 처한 권력누수 현상을 일컫는다.

    대통령제의 숙명, 레임덕

    일반적으로 레임덕은 대통령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부가 위기에 처할 때 의회 해산을 통해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는 의원내각제에서는 레임덕 현상이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제와 레임덕은 숙명적인 관계인 것이다. 대통령 임기를 중임제로 개헌한다고 해도 레임덕은 유보될 뿐이지 피해갈 수는 없다. 오히려 대통령에게는 이러한 운명을 어떻게 잘 관리하는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 볼 때 레임덕을 성공적으로 관리했던 대통령은 없었던 것 같다. 민주화 이후 레임덕에 대응하는 대통령의 마지막 결단은 대부분 ‘탈당’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초기의 높은 지지율로 출발해서 말기에는 최저 지지율 경쟁을 벌였던 기존 정권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즉 집권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항쟁으로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은 이미 초기에 레임덕을 경험했기 때문에 레임덕없이 집권을 마무리하는 최초의 정권이 될 것이라는 농담섞인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집권 중반에 치러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이명박 정권에서도 레임덕 논란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대통령은 당청을 친정체제로 개편하면서 이에 응수했다. 대통령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레임덕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현상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을 감지할 만한 것은 없었다.

    레임덕이 실제 드러나기 위해서는 구조적 요인 이외에 두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한 데, 둘 다 ‘정치적 대안’과 관련된 것들이다. 하나는 집권당 내 강력한 대안적 리더십이고, 다른 하나는 정권교체가 가능한 강력한 야당의 존재다.

    한나라당 내에는 박근혜라는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가 있었고, 지금도 그는 단연 독보적인 ‘미래권력’이다. 그러나 그 만큼 그를 견제하는 수많은 ‘잠룡’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박근혜와 그의 당내 정치세력들이 현 정부와 각을 세울 만큼의 존재감을 보여준 적도 없다.

    약한 야당의 문제

    다음 문제는 약한 야당이다. 더 큰 문제는 역대 가장 약한 야당이 ‘반대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장외투쟁을 통해 ‘선명야당’의 계보를 이으려 하고, 민주화 이후 계속된 ‘중도’ 노선을 강령에서 삭제한데 이어 무상급식과 ‘실질적’ 무상의료를 당의 주요정책으로 공식화하고 있지만, ‘파괴력’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정책의 정치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이다. 정책의 정치화란 정책이 사회적 논쟁이 되고, 정책을 둘러싼 여론이 지지층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즉 정책의 사회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정치화는 형성되지 않는 상태가 지금의 상황인 것이다. 또한 정책의 정치화가 되지 못한 데에는 정책이 인격화된 리더십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

    ‘반대의 독점’. 이것은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가 미국 양당제에서 야당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거론하며 지적한 말이자 미국에서 제3정당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연대와 연합을 이야기하지만, 연대의 기본정신인 ‘반대의 공유’와 ‘양보와 관용’에는 선명성도 성실성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감사원장 지명을 둘러싸고 레임덕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언론은 여당의 반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레임덕 시작 혹은 레임덕 현상이었는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그 동안 집권여당의 행태를 본다면, 청와대 입장에서야 부적절한 여당의 행태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정당정치의 측면에서는 매우 적절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당 최고지도부의 이런 행태가 행정부 권력의 약화에 있다기보다는 매우 종속적인 당정관계 속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막다른 골목에서 취해진 행동이기 때문에 당청간의 일시적 충돌로 볼 소지도 많기 때문이다.

    ‘희망적 레임덕’

    또한 청와대와 여당 모두 이 사건의 확전을 경계하고 있다는 데서도 레임덕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매우 협소해 보인다. 오히려 현재 시점에서는 갈등의 발화지점은 당내가 될 가능성도 엿보이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최고위원은 "당당한 한나라당이 돼야 내년 총선과 대선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며 감사원장 사퇴권고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했다. 한나라당이 당당해질수록 청와대와의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레임덕은 대통령제의 숙명이지만, 잘못된 권력의지에 대한 저지와 새로운 권력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강력한 여당을 통한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 독주가 견제된다면, 역사상 매우 ‘희망적 레임덕’ 현상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4대강 사업추진과 각종 복지예산의 축소, 그리고 기존의 종속적 당청관계를 보았을 때,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청와대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4대강 사업과 한미FTA라는 양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물건너간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무래도 앞으로 “당당한 한나라당”을 확인하기 위해서 향후 국회에서 물리력을 동원한 안건 강행처리에 동참을 거부하고, 이를 어기면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 한나라당의 의원들의 행보를 살펴보는 데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당당한 한나라당

    이미 남경필 외교통상위원장은 한미FTA의 국회비준은 미국의회의 비준 이후에 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국회비준을 둘러싼 여야충돌의 부담에서 다소 벗어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정부의 우선 비준 요구와는 결을 달리했다는 것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다음은 위에 언급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명단이다. 비록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간의 행적을 볼 때 진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이들도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의 작은 변화를 추동할지도 ‘모를’, 그래서 희망적인 레임덕의 시동을 걸지도 ‘모를’ 인물들이기에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구상찬(서울 강서갑), 권영세(서울 영등포을), 권영진(서울 노원을), 김선동(서울 도봉을), 김성식(서울 관악갑), 김성태(서울 강서을), 김세연(부산 금정), 김장수(비례대표), 남경필(경기 수원 팔달), 성윤환(경북 상주), 신상진(경기 성남중원), 윤석용(서울 강동을), 이한구(대구 수성갑), 임해규(경기 부천원미갑), 정병국(경기 가평․양평), 정태근(서울 성북갑), 주광덕(경기 구리), 진영(서울 용산), 현기환(부산 사하갑), 홍정욱(서울 노원병), 황영철(강원 홍천․횡성), 황우여(인천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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