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 좀 쓰는 분들, 우리를 도와달라"
        2011년 01월 10일 12: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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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지난 6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와 관련해 환경미화원 3명에 대해 무혐의 처리하기로 했다. 당초 사법처리하겠다던 경찰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해운대 지역 구의원으로서 그동안의 경과 과정을 생생하게 보고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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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마시다 말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가다

    2010년 10월 1일 오전 11시경 김문령 보좌관에게 전화가 왔다.

    "김의원, 해운대 우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뉴스에 나오는데?"
    "또 장산에 산불 난 거 아니야?"
    "아니, 주상복합 아파트라는데. 뭐, 화재진압이야 금방 안 되겠냐."

    나는 그 때, 센텀 리더스마크 44층 건물에서 지인의 소개로 세무사 K씨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신세계백화점과 벡스코가 들어서 있고 해운대구청 이전 부지가 있는 이곳에, 기업 입주를 위한 산업용지 활성화 대책 및 조례 제정에 앞장서 준다면 이 지역에 입주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나 심포지엄을 K 세무사 자신이 조직해 보겠다는 취지였다.

    나는 시큰둥했다. 기업 측에서 원하는 것들은 대개 나의 재량을 벗어나 있거나 탈법적인 경우가 많다. "네, 뭐 한번 알아보지요." 수준의 대답만 하면 되고, 빨리 불편한 그 자리를 벗어나길 원할 뿐이었다.

    찰나, 세무사무소 전면 유리창 밖으로 초고층빌딩 한 채가 재난영화 <타워링>에서 본 듯한 형태로 격렬하게 건물 중심부에서 불이 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반도 채 마시지 않은 식은 커피를 옆에 두고 황망하게 해운대 마린시티 내 우신골든스위트로 다급하게 내달았다.

       
      ▲사진=부산소방본부 

    화재진압 기기의 부실과 주민의 분노

    도착한 화재현장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4층에서부터 화마는 건물 중앙을 중심으로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고, 인화성 외벽 판넬 철재물이 강한 바람에 휘날리며 사방으로 날아가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경찰의 폴리스라인 뒤로 수많은 인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화재 현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입주민으로 추정되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는 “아이고, 이걸 어째!”를 연발하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 경찰, 소방서, 구청 관계자들은 이미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 엄청난 사태를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안절부절 할 뿐이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것은 현재의 고층 사다리차는 아파트 20층, 일반건물은 15층 높이인 최대 52m까지 사용되지 못하기에, 38층까지 퍼지고 있는 우신골든스위트의 불길을 잡는데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다.
    소방관과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승용차로 30분이나 족히 걸릴 성지곡 수원지에서 헬리콥터로 물을 받아 고층에 살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늦장 대응하는 소방서와 화재진압 기기의 부실함과 무력함에 주민들 사이에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집을 비운 오전 11시라서 망정이지, 만약 오후 11시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엄청난 인명피해를 상상하니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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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들을 입건하나?

    10월 28일, 해운대경찰서에서 우신골든스위트 화재에 대한 종합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발화지점은 4층 청소노동자 탈의실 출입문 바깥 바닥에 놓여 있던 속칭 ‘문어발식’ 콘센트에서 단락현상으로 발생한 전기스파크가 화재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업무상 실화 및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관리소장 정모씨, 방화책임자 전기과장, 환경미화원 3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건축법 위반 혐의로 시공사 대표 강모 씨 등 7명을 입건하다는 수사발표였다.

    이 결과가 발표되자 다음 아고라에서는 공공운수노조 준비위(네티즌 아이디로 서명담당자가 되어 있어서 노조가 앞장서서 했다는 사실은 이후에 알게 되었다)에 의해서 ‘해운대 화재 청소노동자 사법처리 반대’ 청원 서명이 시작되었다.

    화재가 발생한 4층은 피트층(건물 유지에 사용되는 층으로서 전선이나 난방용 배관, 하수도관 등이 모여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층)인데, 이 층을 2006년 6월부터 재활용품 분류 작업장과 미화원 탈의실로 불법 증축 및 용도 변경되었던 것이다. 피트층은 대부분 건물 지하에 설치되는데 주상복합 건물의 경우에는 상가와 주거공간이 분리되면서 우신골든스위트는 4층에 피트층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햇볕도 들어오지 않고 환기도 잘 안 되는 불법용도 변경된 피트층의 7.26평(대략 남성용 4평, 여성용 4평)에서 건물 관리인의 지시 하에, 추석 이후인지라 청소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고의 혹은 과실로 불을 낸 것도 아니고 단지 4층 업무공간에서 화재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어느새 화재 최초 신고자에서 화재 책임자로 입건처리된 것이었다.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문어발식 콘센트의 경우도 경찰조사 결과 관리소장에 의해 관리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왜 청소노동자들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입건처리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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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경찰서를 찾아 형사과장을 만나다

    다음 아고라에서 ‘해운대 화재 청소노동자 사법처리 반대’ 청원 서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해운대 경찰서에 연락을 해서 담당자와 통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형사팀장도 형사과장도 개인휴대폰으로까지 연락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화덕헌 구의원(진보신당), 김문령 보좌관과 함께 사전 약속도 없이 무작정 해운대 경찰서로 찾아갔고, 다행인지(?) 그곳에서 담당 형사과장을 만날 수 있었다. 불법용도 변경된 청소노동자들을 경찰이 왜 검찰로 사법처리 요청을 한 것인지 경위를 따졌다.

    "저희도 힘없고 나이 드신 분들을 사법처리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발화가 있었다면, 발화의 주체자를 저희들 입장에서는 밝혀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혹시 그분들 연락처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조사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에 그분들 연락처를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이 이번 화재사건에서 무고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선처(?)를 부탁한다는 수준에서 일단 입장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불현듯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어구가 생각났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성명서 발표와 함께 기자회견 조직을 준비했다.

    11월 3일 오전 10시 부산 동부지청 앞에서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공공노조,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노동인권연대 공동 주최로 ‘우신골든스위트 화재사건 청소노동자 사법처리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위반하고, 소방시설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은 사업주를 사법처리해야지, 불법용도 변경된 곳에서 눈칫밥 먹고 일한 청소노동자들을 동시에 사법처리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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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좀 쓰시는 분들이 제발 도와달라"

    우선 입건된 청소노동자들과 연락이 닿는 것이 우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신문 송진영 기자도 ‘청소노동자들의 연락처를 알 수 없느냐’ 라고 연락이 왔지만, 외려 나는 송기자에게 기자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연락처를 알아 달라고 부탁했다.

    문득 생각하니 구청 관계자에게 연락처를 알아달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 하에 청소노동자 분들의 연락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세 분의 청소노동자들과 연락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해운대구의회 의원 김광모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마음의 심려가 많으시지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여하튼 제가 조금이라도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요.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50대 후반과 60대인 세 분의 청소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어깨가 푹 늘어져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삶의 풍파가 그윽한 얼굴에는 근심과 회한, 분노와 원망이 혼재되어 있었다. 커피를 반쯤 마시자 조금 마음을 나에게 열어주는 것 같았다.

    세상 살아 가면서 이번처럼 억울한 일은 처음 경험한다고 말했다. 이 분들은 앞으로 진행될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며 힘 좀 쓰시는 분들이 제발 도와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한 분은 열여덞 번이나 경찰서에 조사를 다녔는데, 왜 화재신고자인 자신들이 어느 순간 입건 대상자가 되었는지 분통을 터뜨렸다.

    "해운대 구의회 및 구청과 잘 협조해서 여러분들이 무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론의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언론사 인터뷰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십시오. 특히 행여나 사측이나 다른 곳에서 압력이 들어온다고 절대 위축되지 마시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꼭 저에게 연락 부탁 드리겠습니다."

    동부지청 앞에서의 기자회견 이후 지역 언론사에서 지속적으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공공노조 김경민 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분들을 현장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냐는 것이었다. 가능하다고 했으며, 다음 날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4시 우동 홈플러스 인근 커피숍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 날의 인터뷰는 성공적이었다.(인터뷰 기사는 ‘레디앙’이나 공공노조에서 발행하는 ‘꼼꼼’에 실렸다)

    국면을 전환시킨 공공노조 인터뷰

    우신골든스위트 청소노동자들과의 현장 인터뷰 이후, 사법처리 반대여론이 그야말로 소나기처럼 빗발쳤다. 다음 아고라에 올린 ‘해운대 화재 청소노동자 사법처리 반대’ 서명에 순식간에 5천명이나 서명에 동참하였고, 11월 28일에는 불과 20일 만에 목표인 1만 명을 넘어섰다.

    인터넷 포털 뉴스에서 메인 탑으로 기사가 나오자, 지역 및 중앙 언론사에서 걸려온 전화로 필자의 핸드폰은 불이 날 지경이었다. 부산일보 김성일 기자는 사회면 톱 기사로 보도하겠다고 했으며, 국제신문의 모 기자와 함께 보안경비실을 뚫고 직접 현장에 그 분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지역의 민영방송국뿐만 아니라 SBS와 MBC PD수첩에서도 청소노동자 현장인터뷰가 가능하지를 계속 나에게 타진해 왔다.

    하지만, 공공노조와의 현장인터뷰 이후 언론사 및 방송국의 인터뷰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내 추측으로는 사측의 압력 내지는 재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서 1시간을 넘게 설득했지만 이 분들은 죄송하지만 세 사람의 의견이 다 틀려서 더 이상 인터뷰를 못하겠다고 했다. 여론작업이 중요하다고 재차 설득했지만 나로서도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 약간의 배신감과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수많은 투쟁 속에서 사측의 압력과 노동자의 분열로 수많은 패배를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려 지기도 했다. 하지만, 곧 나는 나약한 내 마음을 추스렸다.

    평생을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왜 결성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용역업체의 의해 민간위탁으로 채용되어 눈칫밥만 먹다가 잘리면 별 저항 없이 또 다른 일자리로 전전하는 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인터뷰와 외부 접촉을 피한다고 힘없는 청소노동자에게 회의감을 느끼고 책임감을 전가한 나야말로 얼마나 옹졸하고 진정성이 부재한 운동에 매몰되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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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구청 의회사무국을 통하여 검찰로 사건이 언제 송치되는지를 수차례 확인을 했다. 하지만, 12월 초에 송치될 것이라는 사건이, 12월 중순으로 연기되고, 한 해를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 사건송치가 지연되는지를 비공식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알아본 결과 이유인즉슨, 경찰도 검찰도 이 사건에 대하여 곤혹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청소노동자 사법처리에 반대하는 빗발치는 시민들의 여론, 더 나아가 전 국민의 여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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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토론회 풍경

    이 와중에 12월 9일 국회에서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단, 김진애, 조승수, 홍희덕 의원실 공동주최’로 ‘한 평 반의 휴게권리, 해운대 화재사건을 통해 본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실태 및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발제는 나와 조성애 공공운수노조(준) 동지가 맡았고, 토론자로 국토해양부 김일환 건축기획과 과장, 고용노동부 정진우 산업보건부 과장, 신복기 공공노조 이화여대 분회장, 김상길 새건축사협의회 정책위원장, 정최경희 이화여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참석했다. 그리고 정당, 사회단체, 노조 관계자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50~60명 남짓한 대학교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이 참석했다. 

    나는 해운대 화재사건 경과보고 뿐만 아니라 ‘해운대구 관내 다중이용 건축물 안전점검 실시결과 보고서’를 참고자료로 해서, 초고층 빌딩에서 얼마나 많은 비인간적인 불법용도변경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것의 대다수가 청소노동자 대기실이나 재활용 분류 작업장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말했다. 또한 사업주가 산업안전법을 위반하더라도 벌금 내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청소노동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대개 공무원이나 전문가 그룹의 의견이라는 것이 현행법상으로는 상위법과 충돌하거나 상위법 부재로 인해서 입법 가능성이 없으며, 현재의 산업안전법 규칙을 잘 준수하도록 관리지도해야 된다는 의견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나에게 마지막으로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여기 계신 청소노동자 분들에게 요청 드립니다. 대학이든, 공공기관이든 어디든 간에 청소노동자들의 권리쟁취 실현을 위해 노동조합 결성에 연대지원 하십시오. 두 번째, 비록 제가 구의원일 뿐이지만 조례제정과 관련된 입법 활동을 하다 보면 구청 집행부에서 항상하는 말이 있습니다.

    참석 공무원 "구의원이 어떻게 그런 얘기를"

    상위법이 부재하다, 국가사무인지 지방 행정사무인지 모호하다 등등의 이유로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입법 활동에 항상 소극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신축건물 건축 인허가 시에 일하는 사람들의 휴게공간을 합법적으로 설치하지 않으면 건축허가 내주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간단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관련 전문가 분들이 복잡하게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발언에 대하여 참여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3시간의 토론회를 마치고 발제자 및 토론자들이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모 공무원이 낮지만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입법자인 구의원이 참내, 어떻게 알면서도 그런 발언을 하시지요?"
    "입법관련 공무원들은 참내, 왜 항상 법률의 혼선만을 줄곧 되풀이 하시죠?"

    그리고, 나는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대학관계자들의 행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기억하며, 분노와 책임감에 무거워진 어깨를 움츠리고 서둘러 KTX를 타고 부산으로 곧장 내려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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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축하전화를 돌리다

    새해부터 여러 차례 해운대 경찰서에 연락을 취했다. 담당 형사팀장은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 와중에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집단해고 사태가 발생했다.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막말을 하는 연대 ‘막말녀’ 사건도 화재에 올랐다.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윤리적으로는 평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어느새 심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의 실태가 사회적 이슈로 계속 떠오르자 MBC 2580에서 취재 연락이 왔고, 곧 이어 MBC 부산뉴스에서도 취재요청이 들어왔다. 2580팀과는 우신골든스위트를 배경으로 돈 있는 자들이 산책을 하는 조선비치호텔과 동백섬 앞에서 촬영을 끝냈다. 아무리 부산이라지만 겨울 바닷바람이 에워싸는 해운대의 1월은 몹시도 추웠다.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우습게도 동전 던지기의 확률에 대한 상념에 잠겼다.

    "제발 기소유예 판결이라도 나면 좋을 텐데. 혹시 사법처리라도 되면 앞으로 이 투쟁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 내가 온전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때, 문자 한통이 들어왔다. 공공노조 선전부장이었다.
    "해운대 청소노동자 무혐의 처리되었음. 고생하였음."

    아아! 무혐의라니! 기소유예도 아닌 무혐의라니!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난 이미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청소노동자 분들에게 축하의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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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령 보좌관이 ‘해운대 화재사건 청소노동자 무혐의 처리 환영논평’을 쓰고 있을 때 공공노조 윤춘호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일이 잘 되어서 다행입니다."
    "제가 공공노조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이 잘 된 것은 트위터와 다음 아고라 등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공노조의 온라인 선전활동이 매우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부산에 내려가면 꼭 찾아뵙지요. 다 같이 고생합시다." 
    "네,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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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MBC 이두원 기자와 해운대 화재사건 청소노동자 무혐의 처리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 기자와는 앞으로 초고층빌딩 난립(5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의 31%가 부산에 있다)과 건물 청소노동자의 휴게공간과 관련한 심층취재를 기획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 또다시 몸이 떨리며 심한 감기기운이 도지는 것이 느껴진다. ‘부산 해운대에 언제 이런 칼바람을 동반한 추위가 있었던가?’라고 생각한다. 패딩 점퍼 지퍼를 목 끝까지 채우고 후드 티를 머리 위에 뒤집어쓴다. 그리고, 승용차의 주차 위치를 찾으려 둘러보는데, 신축 중인 60층 건물 뒤 고물상 앞에서 김치 쪼가리에 찬밥을 얹어 먹는 할머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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