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정치, 와 이리 더디노?"
        2011년 01월 09일 11: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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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만인보’를 시작하며

    그려주고 싶었다. 보잘 것 없는 재주라도 쓰임새가 있다면, 그려주고 싶었다. 이름 없는 이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내게는 축복이었다. 그들에게 진 빚을 이렇게 갚으려 한다. 이 세상을 재미있게 살게 해 준 모든 이들을 위해, 짓이겨져서는 안되는 그들 모두의 희망을 위해. 

       
      

     

    영도 한진중공업 ‘4도크짱’ 한상철 

    한상철, 그는 영도 한진중공업 4도크 생산지원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86년 조선공사 시절에 땜쟁이(용접공)으로 일을 시작한 지 25년 째다. 스물 다섯에 입사해 한진중공업에 오롯이 청춘을 묻었다. 지금 한진중공업은 작년에 이어 또다시 정리해고를 추진하고 있다. 400명을 해고하겠다고 을러대며,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위로금이나마 챙길 수 있다고 흔들어댄다.

    그바람에 벌써 50명 정도가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나이 든 정든 동료들이다. "퇴직한 조합원을 욕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욕 안해. 욕하는 사람을 욕하지. 그사람들 자기만 잘먹고 잘살라는 것도 아인데, 나가 봐야 가시밭길인 줄 뻔히 아는 사람들인데, 우찌 욕하노?"

    이제 조합원도 1,100명 정도 남았다. 한진중공업노조는 일사불란한 조직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노조위원장만 둘이 죽었다. 박창수, 김주익. 특히 김주익위원장이 85호 크레인에서 129일을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죽음을 자책하며 곽재규 조합원이 투신 자살을 한 사건이 있은 후 조합원들은 노조가 모이라면 모이고 싸우자고 하면 싸우는 충실한 조합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회사는 신규 선박을 단 한 척도 수주하지 않았다. 새로 수주하는 배는 모두 필리핀 수빅만에 새로 지은 조선소로 빼돌려 왔다. 자본이 둘러친 신성불가침의 영역 ‘경영권’이다. 의도는 뻔히 보이는데도 수주를 하지 못했다니, 종주먹만 휘두를 뿐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올 5월이면 그마나 남은 작업도 다 끝나 영도 조선소의 도크는 텅 비어버릴 것이다. "조남호 회장한테 치이가 전대 회장 조중훈이 그립다는 사람도 있다 아이가."

    "노동정치, 와 이리 더디노?"

    회사를 물려받은 재벌 2세 조남호는 조선소의 핵심이랄 수 있는 설계부문까지 하도급을 주어버렸다. 영도 조선소를 아예 문닫고 땅 장사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파다하다. 그게 아니면 조선소를 건설회사처럼 거의 100% 하도급 방식으로 경영하려는 것이거나…

    ‘4도크짱’ 한상철은 새해 벽두부터 4도크 자기 부서 함바에서 몇 일 째 숙식 중이다. 전기 패널을 대 놓은 장의자 바닥은 뜨겁고, 코끝에는 냉기 어린 바람이 흘러 잠자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어용노조를 갈아치운 이후 거의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앞장에서 싸웠다.

    "이 짓도 이제 지겹다. 누구는 투쟁하는기 힘들다 하는데, 힘들긴 머가 힘들어? 힘든 기 아이고, 지겨운 기지…"

    20여년을 다람쥐 쳇바퀴돌듯 임투, 단투, 정리해고 투쟁… 끝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정치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난 지방선거 때는 그 스스로 진보신당 시의원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길가에 좌판을 깔고 나 앉을 수 밖에 없는 남루한 할머니를 보고 그는 "진짜 당선되고 싶었다"고 했다. 평조합원으로 한진중공업 파업 현장을 지키는 ‘4도크짱’ 한상철, 그는 노동운동이 늘상 자본의 놀음에 뒷북이나 치는 것이 지겹다. 자본의 의도를 한 걸음 앞서 읽어내고, 세상을 주도하는 노동운동, 세상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노동운동을 넘어선 정치운동을 그는 내다 본 것이다.

    "그런데 그기 와 이리 더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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