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세력은 '홍대 총학'이다
        2011년 01월 09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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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익대 미화/경비/시설 노동자들의 농성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결합하고 있다. 불안정고용과 작업장 내의 비인간적인 처우, 불법 파견 도급 같은 문제에 사학재단의 이해관계가 가세한 이 사건에 대해 사회의 각 분야가 공통적인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계약당사자는 원청 기업격인 사학법인 홍익재단. 작년, 산을 파헤치는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항의하는 가운데 중장비를 가동하거나 기습적으로 공사를 강행한 성미산 개발의 당사자이자, 주변 상인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도 않는 거대한 정문 ‘홍문관’을 세우고 고급레스토랑 등을 학내로 진입시킨 바로 그 당사자다.

    학교시장화와 무차별 개발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인 덕분인지 홍익재단은 재단적립금은 4,800여억 원에 달해 국내 사립대학 중 세 번째로 많다. 그런 덩치 큰 재단이 인간 이하의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같은 대학 노동자들의 요구에 전원해고로 답한 것이다. 세종대와 상지대 등으로 그 치부가 드러났던 사학재단의 교육시장화, 학교시장화 전략이 홍대에서는 노동탄압으로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2.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은 고용승계와 함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것. 빈곤한 계급이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빈곤한 것이라는 센(Amartya Kumar Sen)의 말처럼, 폭언이나 일상적인 해고 위협, 한끼 식비로 300원을 책정한 악질적인 계약이 학문을 나누고 학원민주화나 교육권 쟁취를 외치는 대학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응당 해당 대학의 구성원이 먼저 수치심을 느껴야 할 문제다.

    하지만 홍익대 사무처는 총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본관으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에게 마치 재벌총수를 보위하는 경호원처럼 욕설과 폭언을 내뱉으며 무력을 행사했고, 총장이라는 자는 ‘의료진과 휠체어’라는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퍼포먼스까지 감행해서 자신의 사회문화적 지위를 애써 부정했다. 대학총장이 같은 학교 노동자들의 항의를 피하려고 꺼낸 잔꾀가 휠체어라니! 이를 두고 한 활동가는 사학재단의 ‘바지사장’임을 인증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벌 코스프레’나 하고 있는 그들의 센스를 계산해볼 때, 수치심이라든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에 대한 책임감이라거나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것 같다. 게다가 대학의 사회적 지위라든가, 로컬생태계로서의 대학사회라거나 하는 고상한 의미를 가르치는 것도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일일 것 같다. 사실, 등록금 인상으로 상징되는 교육시장화와 난개발과 재단의 공격적 수익사업이 포함되는 학교시장화에 반대하는 그간의 목소리에 이들은 단 한 번도 손을 더한 적이 없다.

    대학에서 공유되는 학문이라는 것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올바르다면, 그것이 증명된 것은 거의 대부분 학생들의 움직임에 의해서였다. 같은 문제가 있었던 청주대와 동국대, 연세대 등에서 학생들이 나서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그들이 선의 빈곤론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그래서 올해 벽두부터 홍대에서 문제가 터졌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장 기대하면서 궁금해 했던 것도 홍익대 학생사회의 대응이었다. 그런데 홍익대 총학생회는 우리의 정치적 상식을 위협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의 기대와 완벽하게 반대되는 방향으로 전력질주하고 있다.

    3.

    1월 6일, 홍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에는 ‘총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 공식입장’이라는 타이틀의 문학작품이 올라왔다.(http://hongika.com/xe/notice/31106)

    애써 균형을 잡으려는 이 작품의 초반은 독자들에게 공정함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 글의 작가들은 결국 ‘교내 청소노동자 분들’을 ‘집회를 주도하는 외부사람’들과 분리시키며 자신들과 독자가 살아가는 사회의 질서에 대한 몰이해와 남루한 검색능력을 고백하고야 말았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단연 ‘외부세력’인데, 이 단어 하나로 이 작품은 다른 모든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윗글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처리한 것은 이 글이 한 대학의 학생회가 낸 공식적 입장표명이라고 이해하기에 상당한 무리가 있을 만큼 내용의 조악함을 자랑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표현 수위에 관대한 편이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해학이나 자기비하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방식을 추구하는 사조에 속할 것 같다.

    그 까닭에 고딕계열의 서체로 인쇄된 문서 아래에 친필로 적힌 직함과 성명, 서명이 병기된 것도 조악한 하나의 표현기법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모순을 허용하는 것은 예술작품에 국한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헛소리거나.

    “하지만, 학생의 환경을 지켜주셨던 노동자 분들이 아닌 외부 세력의 학내 점거나 농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라도 반대하는 입장이며, 학생들의 편의나, 학습에 지장을 주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링크된 글에 등장하는 ‘외부세력’이라는 표현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홍대총학생회가 말하는 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얘기하는 일종의 허언벽 같은 게 다소 있다고 진단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윗글이 올라오기 직전,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대여섯 명의 학생회 집행부가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집회에까지 난입해 “수업을 방해하지 말라”며 집회를 방해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후, 나는 홍대 총학생회가 생각보다 굉장히 위험한 세력이 아닌지 의심해보게 되었다.

    4.

    “수업방해”라. 학생의 권리는 어디에서 오는 건가. 이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어떤 병을 앓고 있으며,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권리가 가장 상위에 존재하는 양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신성한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윗글은 마치 외부세력에게 점령당한 영토를 되찾고자 하는 항일독립투사들의 선언문을 보는 듯하지만, 실상은 이들이 공동체 구성원의 여러 권리 중에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권리만을 정의롭게 만드는 괴뢰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홍익대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라는 집단이 서울 한복판에 ‘당신들의 천국’을 선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윗글의 요지는 홍대의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그 외부세력이 홍대 본관의 점거농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부터 오류가 있다. 농성주도자에 대한 서술 부분이다.

    현재 본관 사무처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은 전원 해고된 170여 명의 노동자들 중 노조에 가입된 140여 명이다. 여기에 홍대 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는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부지부의 노조활동가들이 함께 농성하고 있다.

    사실 총학생회가 문제를 삼는 대상은 이들 노조활동가들이다. 총학생회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자기 학교에서 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농성장에 끼어 있는 것에 의아해하며 “노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모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독려할 일이다. 헌데 공식발언에 책임을 갖는 대학의 총학생회가 노조활동가들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들의 활동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자치의 차원을 넘어선다. 윗글의 두 번째 오류인 이 대목은 사실상 정치적으로 굉장히 위협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우선, 이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서 홍대노동자들을 장악하고 있다거나 그들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거짓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은 동아리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결단을 요한다. 자기결심 없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좀 미신적이다.

    그리고 공공노조 소속 노조활동가들은 노동조합의 교섭권이 작동하는 원리에 따라 농성장에 온 것이다. 공공노조는 작업환경의 특성상 상위 노조에서 협상을 맡게 되는데, 이는 노동법이 보장하는 차원의 문제라서 만약 이 문제에 불만이 있다면, 홍대 총학생회는 입법투쟁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이처럼 대표단의 자필서명을 포함한 엄포를 공지사항에 내걸고, ‘가오’를 잡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5.

    지금까지 대학은 상대적으로 나은 로컬생태계로서 각 구성원들이 균형 있게 살아가는 공간으로 존재해왔다. 사회 전체의 가치를 로컬 단위에서 모범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학생의 학습권과 학원민주주의같은 학생의 권리가 안착되는 것은 물론, 사회가 제도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지원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윗글처럼 대학이라는 로컬생태계가 다른 사회와는 분리된 폐쇄적 영토라고 선언하는 순간, 학원민주주의나 정의, 로컬과 같은 일반적 가치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전제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원리가 홍대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처럼 홍대의 또 다른 구성원인 미화/경비/시설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고용보장과 처우개선을 요구할 권리도 사회적으로 당연히 보장되어 있다. 게다가 이 권리는 구성원의 생존에 대한 권리이므로 다른 모든 권리에 우선한다.

    한 끼에 300원이었던 식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를 “수업방해”라는 명목으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구성된 그 누구건 간에 한국사회의 구성원의 생존권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그들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외부세력”이다.

    6.

    홍익대 재학생, 졸업생, 홍익대에 입학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까지 떠든 이런 이야기가 모두 외부세력의 부당한 훈수처럼 들리는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욱 더 꽁꽁 문을 닫고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라. 이 사회는 여러분의 천국에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들의 그 어떤 권리도 지켜줄 근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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