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대 노동자들이 울고 또 운다
    By 나난
        2011년 01월 06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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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쉰하고도 여섯인 노동자 박진봉 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한숨과 담배 한 개비로 차오르는 설움과 미안함을 억누르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옆에서 그를 바라보던 박무학(53) 씨의 눈에서도 이내 눈물이 흘렀다. 한 사람은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남았다. 

    휴게실에서 우는 노동자들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사진=이은영 기자)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 예고통보를 예고한 지난 5일, 박진봉 씨가 공구 반납을 위해 다시 찾은 회사에서 동료들을 만났다.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생산직 노동자 400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뒤인 지난해 12월 24일 희망퇴직을 신청한 그다.

    그의 방문으로 오랜만에 ‘후생처리파트 2직’ 박무학, 문영복(52) 씨 등 팀원들이 삼삼오오 현장 휴게실에 모였다. 반가운 마음에 얼굴에는 웃음을 머금었으나, 이내 갑갑한 현실에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박진봉 씨가 34년을 근무한 한진중공업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기까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생계문제가 당장 걸렸다. 56세의 가장에겐 무엇보다 처자식이 눈에 밟힐 수밖에 없다. 

    정년을 2년 앞둔 적지 않은 나이도 걸렸다. 정리해고자 명단에 들어갈 가능성이 누구보다 컸다. 지난해 352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에도 들었던 박진봉 씨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정년이 2년 남은 데다 회장이 독종이라 (정리해고 철회가) 가망 없을 것 같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선착순으로 따져도 정리해고 1순위입니다. 회사는 ‘그때까지 기다리면 손해가 많다’, ‘정리해고 되면 끝이지만, 희망퇴직하면 위로금이 있다’며 회유했고, 나는 꼬였어요. 사표 쓰고 나니 후회됩니다. 먼저 도망간 것에 대해 동료들에게 미안하고요.”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가 희망퇴직을 택한 이유에는 함께 일한 동료들 살리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비겁한 이야기겠지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희망퇴직에) 동참하면 남은 사람들의 자리를 보장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다”는 그는 “하지만 내가 너무 성급하게 사표를 쓴 것 같아 후회가 된다”며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주위에서 ‘왜 빨리 사표를 썼느냐’는 전화가 많이 와요. 그런 전화를 받으면 더 후회돼요. 동료들과 같이 갔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함께) 싸워 이기면 불명예스런 희망퇴직은 안 해도 되는데… 죄 짓고 간 것 같아 동생들에게도 미안합니다.”

    박진봉 씨가 눈물을 흘리니, 옆에서 지켜보던 박무학 씨의 눈시울도 붉어지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현장휴게실에 있던 옛 팀원들은 하나 둘 머리를 숙인 채 한숨만 토해냈다. 박무학 씨는 “형님이 우니깐, 나도 눈물이 난다”며 “내가 형님 심정이라도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30여년 세월이 적은 세월이 아닌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문영복 씨는 “형님이 자리 비켜주면 다 끝날 줄 알았죠?”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2009년 11월말 새롭게 꾸려진 ‘후생처리파트 2직’으로 배치되며 한 팀이 됐다. 모두 12명의 조선소 노동자가 “형님”, “아우”라며 한 가족처럼 지냈다. 제일 맏형인 박진봉 씨는 “처음엔 평생 몸담은 곳에서 쫓겨나 이곳에 왔기에 억울하기도 했지만, 같이 일하는 동생들이 잘 따라주고 팀워크가 좋아, 만족했다.”고 말했다.

       
      ▲ 박무학 씨는 “몸과 맘을 담았던 회사가 엄동설한에 그냥 나가라 한다”며 “늙고 병든 머슴은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말했다.(사진=이은영 기자)

    부둥켜 안고 울고, 세멘트 바닥에서 울고

    현재 후생처리파트 2직에서만 3명의 희망퇴직자가 나왔다. 때문에 이들이 쓰던 현장휴게실 한켠엔 이제 9개의 안전모만 남은 상태다. 남은 이들은 박진봉 씨를 비롯한 49명의 노동자가 이번에 희망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안다. 위로금 때문이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정리해고를 당했을 땐 그 위로금마저 없다. 더군다나 지난달 이들이 받은 임금은 휴업조치와 파업 등으로 30만 원 수준이었다.

    박무학 씨는 “다들 가족이 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며 “하지만 30여 년을 근무하다 쫓겨나는 상황에서 받는 위로금도 그리 많지는 않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했다. 문영복 씨는 “얼마 전 형님이 공장을 떠날 때, 가는 형님도 울고 남는 동생도 울었다”며 “형님들은 동생들을 남겨 놓은 불안감에, 동생들은 형님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회사 정문에서 형님과 동생이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서로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에요. 며칠 전에는 한 조합원이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어요. ‘너무 허망하다’며. ‘35년을 일했는데, 열심히 일만 하면 잘 살 줄 알았는데, 이 나이에 내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왜 투쟁을 외쳐야 하느냐’며 울었죠. 그렇게 허망한 겁니다.”

    현재 한진중공업엔 떠난 자와 남은 자가 서로를 마주하며 먹먹한 현실을 힘들게 견디고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른다. 힘겨운 나날이다. 이날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도 문영복 씨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애초 정리해고 예고통보가 이날이었기에 걱정스런 마음에 전화를 건 것이다.

       
      ▲ 후생처리파트 2직에서만 3명의 희망퇴직자가 발생하며, 애초 12개였던 안전모가 9개만 남았다.(사진=이은영 기자)

    “‘정리해고 명단발표 났느냐’고 전화한 거예요. 어제 저녁에도 ‘당신이 명단에 들어갔는데 속이는 거 아니냐’고 물었어요. ‘발표가 났느냐’고 묻는 말은 즉 ‘당신이 명단에 들어갔느냐’는 말과 같아요.”

    정리해고 명단발표는 철회된 것이 아니다. 노사 간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만 보류된 것으로, 대화가 깨지는 순간 언제든 ‘죽은 자’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무학 씨는 “명단발표를 보류하니 더 조마조마하다”며 “차라리 어느 쪽으로건 결정이 나면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겉으론 태연한 척해도 속으론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조마조마

    더군다나 다대포와 울산 공장 등이 연이어 폐쇄되는 과정을 지켜본 이들로서는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박무학 씨는 지난해 울산조선소가 폐쇄되며 영도조선소로 전환배치됐다. 비록 매일 오전 5시 30분에는 울산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출퇴근을 하는 고달픈 나날이지만 “그렇게라도 직장이 있다는 자부심 가지고 일해 온” 그다. 그의 잘려나간 오른손 검지 한 마디는 그가 조선소에 쏟아 부은 열정과 흘린 땀의 징표다.

    “조선소 대다수의 노동자가 난청은 기본으로 겪고 있어요. 전 손가락뿐만 아니라 팔도 수술했죠. 이런 몸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몸과 맘을 담았던 회사가 엄동설한에 그냥 나가라고 합니다. 늙고 병든 머슴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냥 가라고 합니다.”

    한진중공업 측은 “경영이 어렵다”며 지난 2009년 12월부터 정리해고를 요구하고 있다. 영도조선소는 2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수주도 하지 못했다. 임금이 비싸고, 단가가 높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30여 년의 세월을 조선소에서 보낸 노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진중공업 필리핀 법인인 수빅조선소와 비교했을 때 임금이 비싼 것뿐, 국내 다른 조선소 중 가장 임금이 적다고 말한다. 여기에 기술적인 면에서도 필리핀과는 상당한 차이가 보여 임금만을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진중공업보다 인건비가 조금 낮은 STX의 경우 최근 몇 년간 121척을 수주했으며, 한진중공업지회에 따르면 필리픽 수빅조선소가 연간 8척의 배를 건조할 수 있다면, 영도조선소는 22척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박무학 씨는 “영도조선소의 역사는 70년이 넘었다”며 “그 기간 동안 축적된 기술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회사, 노동자 ‘짜른’ 다음에 수주하겠다

    휴게실에서 이들을 만나기 전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우영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도 같은 뜻의 말을 했다. “수빅은 기술력 부문에서 한계가 있다”며 “한국의 노동자 1명이 하는 일을 8명에서 나눠하는 등 분업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회사가 정리해고 위협을 계속하고, 수주 0건이라는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공장을 비정규직 천지로 만들기 위한 의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통해 정규직을 축소한 다음, 수주량에 따라 유동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겠다는 것.

    이미 인천에 있는 율도공장엔 30여 명의 정규직만 존재하고 있으며, 나머지 2,000여 명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여기에 한진중공업은 국내 조선소 중 유일하게 지난해 핵심인 설계 부문을 외주화했다.

    이에 대해 사무실에서 만났던 최 사무장은 “회사 측은 ‘400명을 자르면, 수주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말이 안 된다”며 “수주를 한 뒤, 유휴인력이 발생했을 때 자른다고 하면 말이라도 되지만, 정리해고 후 수주를 하겠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000명 중 600명이 남은 상황에서 이후 수주된 물량이 1,000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과 방안은 없이, 오로지 정리해고만 하겠다고 주장하는 건 공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회사 측의 생산직 400명 정리해고 방침에 파업을 벌이며, 생활관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 수주물량으로 가득찼던 영도조선소의 블럭 조립장이 텅 비어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우리가 산업폐기물인가?

    결국 문제는 수주다. 회사 측은 지난 2007년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건설하며 노조와 △국내수주량 3년 치를 연속해 확보하고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해외공장이 운영되는 한 조합원의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특별단체교섭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무참히 깨졌다. 지난 2009년부터 영도조선소는 단 한 건의 물량도 확보하지 못했으며, 현재 건조되고 있는 물량은 오는 3월, 유지보수 등을 합해 길어야 5월이면 모두 끝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중공업 측은 최근 영도조선소에서 건조 가능한 3,8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수빅조선소로 수주했다.

    한진중공업지회에 따르면 수빅조선소가 수주한 것과 같은 3,800TEU급 컨테이너선이 영도조선소 2도크에서 건조 중이며, 3월 경 작업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 사무장은 “한진중공업은 컨테이너선을 세계에서 제일 잘 만든다”며 “영도조선소에는 기술력이 있다. 지난 2009년엔 영도에서 수주했던 배를 수빅에서 만든 적이 있듯 영도에서 건조할 수 있는 물량을 넘겨오면 된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은 대한민국 첫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 아시아 최대 수송함인 독도함, 해군 초계함인 PKM과 PKX, 국내 최초로 해저 광케이블선을 건조하는 등 ‘최초’, ‘최고’의 행진을 자랑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수천 명의 박진봉, 박무진, 문영복 씨의 땀이 있었다.

    문영복 씨는 말한다. “우리는 고부가가치 기술, 고기능 선박을 만들며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고령자를 내보내며 우리를 마치 산업폐기물로 여기고 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장이’라 부른다. 숙련공을 뜻하는 것이다. 박무학 씨는 “우리는 쇠를 만지는 ‘장이’”라며 “회사는 오랜 경력의 기술자인 ‘장이’를 귀하게 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지처럼 버리고 있다. 마음에 엉켜있는 울분을 토해내고 싶은데… 말을 하려면 눈물만 난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혼과 마음을 담았던 회사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뿌듯하게 공장 문을 나서고 싶었다"던 사람들. “한진중공업이 전부였고, 회사를 벗어나면 노숙자가 되고, 굶어 죽는 줄 알았다"는 사람들. 하지만 30여 년간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 왔던 이들에게 한진중공업은 “이제 그만 나가라”며 쫓아내고 있다. 수주물량으로 가득 찼던 영도조선소의 각 도크와 블럭조립장은 갈 곳을 잃은 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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