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대교 기어서 건너, 온몸 투쟁했는데”
    By mywank
        2011년 01월 04일 03: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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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점거농성을 하면서 우동민 동지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우리 앞으로만 달려가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같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우 동지는 정말 ’나쁜 동지‘이다. 같이 가자고 해놓고서는 먼저 갔지 않느냐.”

    같이 가자던 동지, 먼저 세상 떠나

    지난 해 12월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등을 촉구하며 돌입한 인권위 점거농성 중 발병한 폐렴증세로 세상을 떠난 장애인활동가 우동민 씨(44세)를 떠나보내며, 농성을 함께 했던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사무국장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4일 오전 고인이 1주일간 된 투쟁을 벌였던 인권위 앞에서는 그를 애도하는 ‘장애해방 열사장’이 엄수됐다.

       
      ▲우동민 활동가 ‘장애해방 열사장’에 고인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태어난 지 3일 만에 고열로 뇌성마비 장애가 생긴 이후, 38살이 되던 해 가정과 장애인시설을 떠나 뒤늦게 자립생활을 시작했던 고인은, 차별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세상과의 짧은 인연을 마감했다. 고인은 지난 2005년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으며, 숨지기 직전까지 이 센터에서 대외협력 간사를 맡으며 투쟁의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한강대교 기어가며 차별에 저항 

    고인은 지난 2005년 정립회관 민주화투쟁, 2006년 활동보조인 제도화,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투쟁, 2007년 장애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2008년 석암재단 비리척결 및 탈시설 권리쟁취 투쟁, 2009년 장애인 예산확보 투쟁, 2010년 장애등급 폐지 투쟁 등에 나선 바 있다.

    특히 고인은 지난 2006년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요구하며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서 서울 한강대교를 건너는 투쟁에 나서는 등 온몸으로 차별에 맞서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고된 투쟁은 그의 건강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해 12월 6일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등을 촉구하며 돌입한 인권위 점거농성 중 고인에게 폐렴증세가 발병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사건이 발생됐다.

       
      ▲고 우동민 활동가 ‘장애해방 열사장’ 참가자들이 고인을 기리는 추모발언 등이 이어지자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이원교 소장이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후 병세가 잠시 호전됐던 고인은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다시 투쟁의 현장으로 나섰다. 하지만 고인은 지난달 8일 한나라당의 장애인활동지원법 ‘날치기 통과’를 규탄하기 위해 열린 국회 앞 기자회견 및 한나라당사 항의방문에 참가한 뒤 다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으며, 지난 2일 오전 10시경 급성 폐렴증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했다.

    4일 ‘장애해방 열사장’ 현장에서 만난 지인들은 그를 “곰처럼 우직하고, 투쟁 현장에는 항상 앞장섰던 사람”이라며 고인을 생전 모습을 기억했다. 고인과 인권위 점거농성을 함께 했던 서성남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형님이다. 인권위 점거농성 때에도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묵묵히 투쟁했다. 항상 투쟁 현장에서 앞장섰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곰처럼 우직, 투쟁에 항상 앞장서"

    지난 2005년부터 자립생활센터 생활을 함께 한 신인기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차별에 맞서 싸웠고 집회 현장에도 빠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같은 자립생활센터에서 생활한 김정 활동가도 “지난 2006년에는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을 했던 분이다. 자신의 온몸을 바쳐 장애인을 차별하는 제도를 바꾸려고 했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장애해방 열사장’ 현장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대형 펼침 막이 내걸렸다. 여기에 있던 사진들은 ‘언어 장애’를 겪은 고인이 말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고 온몸으로 차별에 저항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인에 대한 약력 소개와 추모 발언 등이 이어지자, 행사장 곳곳에서 참석자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원교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추모 발언을 통해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을 친구로 지냈다. 또 자립생활센터가 만들어질 때부터 같이했다”며 “말은 없지만 많은 고민을 했던 친구였다. 그의 활동 모습을 영원히 가슴에 담겠다”고 말했다.

    장향숙 인권위 상임위원도 참석

    같은 자립생활센터의 김기정 사무국장은 “고인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게 ‘언어 장애’였다. 정말 좋은 친구였는데, 그를 생각하는 마음을 어떻게 말이나 글로 다할 수 있겠느냐”고, 명숙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고인이 지난해 11월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자리에 함께했고 촛불문화제 때에도 함께했다. 이 모습을 찍은 디지털카메라에는 아직도 고인의 모습이 담겨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장애해방 열사장’에는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 등 약 50여명이 참석했으며, 장향숙 인권위 상임위원(민주당 추천)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발인된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에 화장된 뒤 이곳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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