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 원인, 여전히 '현재적 문제'
        2011년 01월 03일 04: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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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대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더 나아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통합 경로에 대한 ‘진언과 고언’들이 중원의 고수는 물론 장삼이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0년 말까지 진보정당들은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구성에 합의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아직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당사자들의 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경우 진보정당 통합의 핵심 두 주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당내 의견도 모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 당위론’만 무수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분열은 공멸이라는 문제의식과 대중의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때 정치적 조직으로서 치명적 ‘응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 논의를 가능하게는 만들긴 했으나, 셈법들이 다르다.

    진보양당이 분당이 괜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또다른 통합 역시 그리 쉬운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분당 원인이 해소돼야 실질적인 통합 논의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2012년을 준비하는 각 당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레디앙>은 통합논의가 본격 궤도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2011년을 맞아 구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후를 돌아보고 그동안 벌어졌던 통합논의의 흐름을 진단하며 향후 통합논의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하였다. 이 기획은 매주 2차례 모두 8회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주>

    2008년 2월 3일

    지난 2008년 2월3일 오후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 파크,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열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제출한 혁신안이 부결되자 그대로 당 대회장 밖으로 퇴장했다.(아래 사진) 이는 지난 8년 간 민주노동당을 함께 구성해 온 NL과 PD가 결별을 의미하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사진=진보정치

    그 후 2년, 지난 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만나 ‘진보진영 대단결’의 원칙을 확인했다. 이후 지방선거를 거치며 사회당도 진보대통합 논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분당까지 갔던 ‘아픈 상처’들은 불과 2~3년 새 모두 치유된 것일까? 당시 민주노동당을 분당까지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당시의 문제의식들은 현재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2010년,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당선 직후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분당 당시의 문제는 모두 덮고 갈 수 있다”고 밝혔고,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분당 당시의 문제의식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의 내부 노선 갈등은 2006년 북한의 핵실험과 일심회 사건을 지나면서 점차 증폭되기 시작하더니,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분당 당시 분당파들이 들고 나온 핵심 명분은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물론 당시 민주노동당 다수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것은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 부결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하기 전부터 민주노동당의 탈당 행렬은 시작됐다. 조승수, 김형탁, 한석호 등 이른바 선도탈당파들이 탈당 후 신당 창당을 선언했고 관망하던 노회찬 의원이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 부결 이후 신당에 합류했다. 비대위원장을 사퇴한 심상정 의원도 곧 신당 창당에 함께 해, 그해 3월 진보신당 창당에 이르게 된다.

    주요 지도부들은 찬성하지 않았지만…

    구 민주노동당의 주요 지도부를 구성했던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이 분당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점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아래로부터 물결을 형성하고 있던 주요 간부들과 평당원들의 탈당 러시를 이들도 막을 수는 없었으며, 끝내 그 격한 흐름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단병호 전 의원은 신당 흐름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해 자주파 진영의 한 인사는 “종북주의 논쟁은 진보진영에 자기 파괴적인 논쟁에 불과했다”며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운동진영을 친북도 연북도 아닌 ‘종북’으로 묶어버림으로서 진보진영 전체에 타격을 주었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자주적 개입 여지를 축소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정파 위주의 정당운용, 패권주의 등과 관련해서는 자주파 진영에서도 분명 반성할 여지는 남아 있다”며 “하지만 이것을 종북주의와 묶어버리면서 당을 파괴했고, 이후 보여지듯 한국정치에서 진보정치운동은 축소되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반면 김형탁 진보신당 과천시당 위원장은 2008년 진보신당 토론회에서 “종북주의는 단순한 의도적 표현이 아닌 민주노동당이 안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건드린 것”이라며 “신당파를 향해 ‘통일을 원하지 않느냐’는 허접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종북주의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선도탈당파 측 한 인사는 패권주의와 관련해 “용산 지구당을 자주파 인사들이 장악하는 과정, 2007년 대선에서 보여주었던 일련의 행동들은 민주적 당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라며 “패권주의는 종북주의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당시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었다”고 회고했다.

    헤어진 이유와 다시 만나야 될 이유들

    이와 같은 양 측의 입장 차이로 분당 당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감정의 골은 이미 건널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이러한 상호 간 감정은 양 당이 갈라진 직후에도 이어졌다. 분당 직후 벌어진 총선에서 양 측은 종북주의에 대한 논쟁을 이어갔으며 각 당 대변인들은 “자기 이마의 종북딱지”, “민노당 정책 보따리채 가져갔다”며 고강도 상호비판을 이어갔다.

    각종 선거를 지나면서 양 측의 이 같은 골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2009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울산북구 재보궐선거 후보단일화에 합의했지만, 그 과정은 지난하고 거칠었다. 단일화에 대한 여론과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노동진영의 압박이 없었다면 양 당의 단일화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통합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양 당의 분당에 대한 평가와 이를 공유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정희 대표는 "묻어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견해를 표명했지만, 이 같은 방법론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조승수 대표부터 "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진보대통합에 대한 압박을 안팎에서 받고 있는 진보양당으로서는 속셈과는 무관하게 이에 대한 응답을 해야하고, 양당 내부에는 통합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원론적 차원의 통합 필요성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생존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일부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기는 하다. 이정희 대표는 지난 해 8월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하자 “누구든 1%라도 전쟁의 가능성을 높여서는 안된다”며 “북이 말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넘어 해안포를 발사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도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민주노동당의 핵심 리더 가운데 한 명인 김창현 울산시당 위원장을 비롯한 당 내 핵심 인사들은 패권주의의 오류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통합을 향한 움직임들

    진보신당 내 몇몇 선도탈당파 인사들도 최근 적극적으로 통합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결볼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선도탈당파를 중심으로 구성된 현 진보신당 중앙당이 통합논의를 적극적으로 선도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분당에 앞장 선 인사들이 통합에도 선두에 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일부 당사자들은 ‘결자해지’를 말하면서 통합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선도탈당파 당내 주요 인사는 “상처를 벌려놓았으니 수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진보양당의 전직 지도부들도 통합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최근 민주노총의 진보양당 전현직 지도부 6인 회동 제안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일부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대표직을 이임하며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의 불이 잘 번질 수 있도록 부채질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으며 심상정 전 대표는 국민참여당까지 고려하는 범 진보 대통합 정당을 구상하고 있다.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 원내대표는 이미 대표적인 통합파 인사들로 알려져 있는 것도 양당 통합을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진보 양당 모두 이 문제에 관한 한 당원들의 견해를 상당 수준 반영하면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다수 당원들과 일반 국민들의 여론 등을 수렴해서 당론을 도출해낼 수 있는 각 당 리더급 인사들의 책임있는 태도가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분당 원인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통합의 길로 접어들기 전에는 분당의 원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종북과 패권’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다룰 수밖에 없다. 분당에 대한 평가를, 단지 미래 지향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과거의 문제’로 치부하기에 이 문제는 너무 ‘현재적’이다. 봄 눈 녹듯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공유 지대를 만들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분당 당시의)문제의식은 남아있지만 3년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것을 객관화시켜서 토론도 하고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은 되었다고 본다”고 밝히며 “그런 차원에서 민주노동당과의 1대1통합이 아닌 다른 제 진보진영과 새로운 통합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인사는 “분당 당시 제기되었던 문제들, 특히 종북주의라는 규정으로 진보진영 운동을 축소시키고 동지들을 매도했던 행위에 대해서도 해결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진보대통합을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통 큰 단결’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들에게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보다는 미래지향적 단결력을 보이는 것이 더욱 큰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진보진영의 한 인사는 "분당 원인으로 지목됐던 패권주의의 경우 민주노동당 쪽에서 이를 성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지만, 제도만 가지고는 될 수 없다"면서 통합 논의 과정에서의 신뢰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종북주의’의  경우 "이 표현의 정의에 대해 합의가 될 수 있을 것인지부터가 어려울 수 있다"며 "진보로서는 사상의 완전한 자유를 기본으로 해야 하며, 과거에 발생했던 비정상적 내부 정보 유출과 유통 등은 사상의 자유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데에 원칙적 합의를 하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던 10년

    분당의 원인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이나 성찰 없이 통합을 주장하는 흐름이 대세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왜 분당했는지, 왜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전자에 깊이 있는 토론과 평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선거 일정 때문에 그냥 넘길 정도로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1997년 겨울, 1년 전에 있었던 노동법 개정 투쟁을 위한 전국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운동의 오랜 숙원이었던 정치세력화가 ‘국민승리21’과 대통령 후보 권영길로 구체화됐다. 이어 대선 패배와 3년 후인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창당,  2004년의 화려한 등장, 창당 8년 만의 분당, 분당 후 3년 시작되고 있는 진보대통합 논의.

    지난 10여 년 동안 진보정당이 보여준 궤적은, 따지고 들면 다 그럴 만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대중의 시선으로 볼 때, 충분한 신뢰를 보내기 어려운 정치조직이며, 자신들이 미래를 걸고 투자를 할 만한 정당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춥고 배고파도 길게 보고 진보정당 운동을 해나가야 된다는 의지와, 이번에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복원이 어려울 정도의 치명적 상처를 입고 정치 무대에서 고별을 고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진보정당 진영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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