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출근 인사 "당신들 해고야"
비정규 170여명, 총장실 점거 농성
By 나난
    2011년 01월 03일 0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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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익대는 본관 건물 출입구에 시설 경비 청소 용역업체 2곳과의 계약만료 사실을 공고했다.(사진=이은영 기자)

3일 오전 9시, 50~60대의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이 홍익대학교 본관 6층 총장실에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2011년 새해 첫 월요일인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나선 고령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다린 건 다름 아닌, 해고통보였기 때문이다. 170여 명은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됐다.

"처음으로 파업가 불러봤는데 눈물난다"

이들은 지난 해 12월 다른 학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에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며 노조를 만들었다. “다 늙어 노동조합에 들어가고, 구호를 외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사람들. 짧게는 4~5개월, 길게는 10여 년간 일했던 홍익대학교에서 새해 벽두부터 버려진 이들은 총장실을 점거한 것이다.

고령의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보장”이라는 구호가 적힌 빨간색 몸띠를 서로에게 매어주며 “살다 이런 건 또 처음해 보네”라며 멋적은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태어나 처음 불러보는 <파업가>를 부르고 나서는 이들은 “눈물이 난다”며 “딱 우리 상황”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50~60대 나이 먹은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이렇게 ‘투쟁’에 나선 이유는 홍익대와 용역업체 간 계약해지 때문이다. 홍익대는 지난해 12월 31일자로 청소․시설관리 용역업체 2곳과의 계약을 만료했다. 원하청 간 논의에서 학교 측은 용역업체에 ‘기존 용역비 단가를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3개월의 용역계약 연장’을 요구했고, 용역업체는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지난 2010년 용역단가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은 81만 원(법정최저임금 85만8,990원)선이다. 4대 보험을 공제하면 75만 원선으로 떨어진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2011년 4,320원의 최저임금조차 반영하지 않은 채 3개월간의 단기 계약연장을 제안한 것이다.

근로학생, 총무과 직원 대체 투입

이숙희 공공노조 홍익대분회장은 “그래도 용역업체에서는 용역비 증가를 통한 임금인상에 동의한 반면 학교 측은 이마저도 거절했다”며 “결국 추운 날씨에 170여 명의 노동자는 길거리로 나앉으라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학교 측의 도를 넘어선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날 퇴직한 직영 청소노동자 5명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것은 물론, 근로학생과 총무과 직원이 짝을 지어 경비근무를 서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난 2일 밤에는 관리실 열쇠를 수거하는 것은 물론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기도 했다.

   
  ▲ 홍익대와 청소시설관리 용역업체의 계약만료로 170여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사진=이은영 기자)
   
  ▲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은 3일 오전, 학교 측에 고용승계 약속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접수(?)했다.(사진=이은영 기자)

홍익대에서 5개월째 경비업무를 해온 김윤식(58, 가명) 씨는 “내가 경비를 서던 곳엔 이미 학교직원들이 들어와 있다”며 “가족들과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노동조합 가입도 하지 않은 채 일하기에 바빴는데, 결국 학교가 나를 농성장으로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비 노동자는 “계약만료를 이유로 한 학교의 해고는, 젖먹이 아이를 내팽겨치는 엄마와 같은 것”이라며 “세입자를 내쫓을 때도 석달 전에 알리는데, 10여 년을 일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나가라니 말이 되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당장 살길이 막막하다"

갑작스런 해고는 당장 일을 쉴 수 없는 노동자들에겐 고통일 수밖에 없다. 남편의 건강 악화로 6개월 전 용역업체를 통해 청소 일을 하게 된 이소정(56, 가명) 씨는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생계에 타격을 입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다른 사람에게는 한 가족의 생계가 달린 직장을 마음대로 빼앗아 가는 건 너무하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간 홍익대 측은 한 달 식비로 9,000원을 지급하는 등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특히 이날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에 따르면 학교 측은 교수 연구실 이동 때마다 이삿짐을 운반하게 했으며,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눈을 치우게 하는 등 부당업무를 지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하다”는 말 한마디 못했던 고령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홍익대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이번 학교 측의 용역업체 계약만료에 대해 ‘노동조합 결성’을 이유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바로 잡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학교 측에 단체교섭과 용역비 인상 등을 요구했다. 그러자 학교 측이 용역업체 변경을 진행하며, 고용승계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5년째 홍익대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는 김명자(54, 가명) 씨는 “현재 소속된 업체 이전부터 일을 해오고 있지만 늘 고용승계가 된 것은 물론 작지만 매년 2만 원 정도의 임금인상이 됐다”며 “우리가 노조를 만들자 쓰레기 버리듯 우리를 버렸다”고 말했다.

   
  ▲ 한 청소 노동자가 민중가요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노조 만들자 쓰레기 처리하듯 한 것"

이날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본관 6층 총장실을 점거했지만 끝내 대화테이블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들이 “총장님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냐”며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문제다, 대화하자”고 요구하자 학교 측 관계자 4~5명은 총장실 문 앞을 가로 막고 “이렇게 단체로 올라오면 대화가 되느냐”며 해산할 것을 종용했다.

아울러 “총장이 170명을 해고하라고 지시했느냐, 누가 지시한 것이냐”는 노동자들의 물음에 관계자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는 것은 물론 “조합원들이 총장을 감금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재용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 조직차장은 “경찰은 ‘총장을 감금하고 있다며 공권력을 투입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대화’를 요구하고 있을 뿐 총장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현재 조합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본관 6층에는 경찰이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에는 홍익대 학생들도 함께하며 학교 측의 고용승계 없는 계약만료를 비판했다.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총장과의 대화가 성립될 때까지 본관 농성을 진행하며 학교 측의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지난달 29일 원하청 간 용역계약 만료로 인해 해고된 동국대 청소노동자 120여명이 농성 4일만인 지난 2일 학교 측으로부터 고용승계를 약속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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