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군바리들, 다 어디 갔나?"
        2011년 01월 03일 12: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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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연시, 신촌과 홍대, 강남 역을 활보하던 이들이 사라졌다. 거리가 한산하다. 사라진 그들의 이름은 ‘여대생’ 혹은 ‘커플들’이 아니다. 바로 그들의 이름은 ‘군인’이다. 꼭 군대를 갔다 온 예비역들이 냄새난다며, 혹은 “저기 사람과 군인들이 지나다닌다.” 하면서 약을 올리거나 말거나 군인들은 거리를 활보해왔다.

    요즘 군인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요즘 군인들 보기가 힘들다. 어쩌다가 지나치는 군인들의 계급장을 예비역인 나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들은 보통 ‘개구리’를 달고 있는 제대하는 군인들이었던 것 같다. 터미널에 가도 예전만큼 군인을 볼 수가 없었다.

    어차피 거의 석 달 넘어 한 번 나오는 ‘육군 아저씨’들이야 그렇다 치자. 6주에 한 번 정기외박과 연가 20여일까지 포함해 ‘너무’ 자주 나와 여기저기서 빈축을 사던 공군 병들도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해군 병들도 잘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매주 외출하고 있을 카투사들은 ‘사복’으로 돌아다닐 것이기 때문에 파악하기는 힘들다.

    12월 이십 며칠쯤에 국지도발 대비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해지되어 ‘진돗개 둘’이 되었다고 한다. 11월 23일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으니 거의 한 달 만인 것 같다. 하지만 매번 군대의 일이 그렇지만, 그 날짜는 ‘보안’이기 때문에 언제인지 명확하게 잘 나타나지는 않았다.

    진돗개 하나가 해지되면서 각 부대의 ‘피로도 누적’을 감안하여 ‘지휘관 재량’으로 휴가를 실시할 수 있게 허용했다고 했단다. 많은 예비역들은 알고 있지만, 이 조치들이 얼마나 지지부진하게 적용될지는 뻔한 일이다. 연말연시에 많은 현역 군인들이 ‘휴가’와 ‘외박’과 ‘외출’을 누리지 못했음은 명약관화다.

    제대휴가로 사회적응을 기획했던 많은 병장들은 덕택에 많은 모임을 포기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휴가 중 며칠을 잘렸을 것이다. 입대 후 연말에 여자 친구와 엄마를 기다리던 신병들은 하루하루를 더 숨죽이면서 ‘사제 물’을 기다려야 했다. 다른 계급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걸 국방부의 개념으로는 ‘피로도 누적’이라고 말하나 보다.

    ‘피로도 누적’

    하지만 이 ‘피로도 누적’은 풀리기 힘들 것 같다. 먼저, 2011년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장관 서신 1호’를 살펴보자. 김관진 장관은 ‘전투형 군대’로 한국군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강한 전사, 군인다운 군대’로 가야한다고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강한 정신무장’이 강군의 조건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간조선>이 선정한 ‘2010 올해의 인물’에 연평도 해병이 선정되었다. “안보의 최대 위협 세력인 북한의 기습 공격 당시, 침착하고 용기있게 대처해준 연평 해병 장병들의 믿음직한 모습이 선정 이유”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12월 30일 발언을 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횡성에서의 구제역 살처분에 35사단이 동원되어 열심히 해준 것을 독려하면서, 앞으로도 군대의 지원과 협력을 기대했다. 여기에 군대가 ‘4대강 사업’을 위한 대민지원에도 열심인 건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해서 지금 군대에서 군인이 해야 할 일들을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먼저 ‘강한 전사’가 되기 위해 ‘강한 정신무장’을 해야 할 것이며, 북한의 ‘기습’이 발생할 경우 연평도 해병처럼 침착하고 용기 있게 대처해야 한다.

    다른 한 편 매번 ‘대민지원’의 사항이 있으면 ‘열심히’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보태보자. 그렇게 하다보면 ‘휴가’는 ‘지휘관 재량’으로 시행할 수 있거나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군복 입은 ‘시민’에서 ‘전사’로

    지금까지 이 이야기들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게 당연한 이야기일까? 요 몇 년 전까지 정훈교육을 보다보면 군인에 대한 정의로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었다. 여러 가지 제약은 불가피하지만 군인들 자체는 ‘시민’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시민’이기 때문에 ‘인권’이 중요했고, 군대에서 ‘인권’이라는 말이 좀 격하게 보여서 조금 완화된 표현으로 ‘기본권’이라는 말들이 등장했었다. ‘군인의 기본권’이라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침해당할 수 없다는 것이 2005년 김일병 수류탄 투척 사건과 훈련소 인분 사건(논산 훈련소에서 육군 대위 중대장이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강제로 먹였던 일) 이후의 기본적인 합의였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합의가 완전히 박살난 것이다.

    먼저 ‘강한 정신무장’을 따져보자.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본의 태평양전쟁 시절이었다. ‘천황의 군대’라는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 ‘정신무장’이었다. 판단할 여지는 주지 않고, ‘강한 전사’가 되라는 것이 2011년 국방부 장관의 입장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군대의 모험주의와 대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차라리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의 이야기들은 군인 각각에게 정신무장을 시키는 20세기 초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더 안전한 방어체제를 위해서 무기를 사자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두 번째로 ‘대민지원’은 그야말로 군인을 ‘잉여 동원 인력’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앞의 ‘강한 정신무장’을 한 군인과 ‘대민지원’하는 군인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 적재적소에 필요한 구제역 살처분 인원을 공식적인 절차로 고용하거나 계약을 하는 것은 완벽하게 회피하고 군인으로 때우겠다는 심보이다.

    휴가 나오지 못한 그대들에게 위로를

    동시에 그러면서도 군인은 ‘강한 정신무장’을 통해서 영토/영해/영공 방위에 만전을 다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군인들이 강한 ‘사기’나 ‘자부심’을 가질 수가 없다. ‘피로도 누적’을 이러한 상황에서 피할 수 있을까? 할 일은 많아지고 구속은 많아지며 누려야 했던(당연히 누릴 수 있었던) ‘기본권’은 ‘지휘관 재량’으로 빼앗겨 버렸다.

    게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죽은 군인들을 자신의 아들로, 그리고 친구로, 형제, 연인으로 부르지 않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이 정부의 사람들은 그들을 ‘전사’로만 부르길 강요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군인들이 누군가의 아들, 친구, 형제, 연인으로도 볼 수 있기에 취했던 ‘기본적인’ 조치들(기본권)이 사라져가고 있다. 군인은 시민권을 상실했다.

    다시 군인들은 언제든 ‘초개와 같이’ 몸을 던질 준비를 위한 ‘강한 정신무장’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민지원’을 위해 자신들의 남은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있고, 자신들의 권리를 ‘재량권’으로 빼앗겼다. 다시금 <이등병의 편지>가 가슴 아리게 들릴만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다시금 군인이 사람이 아닌 존재로 쇠락하고 있다.

    그들의 구체적인 일상과 그들의 존엄성은 국방부의 검토 대상에서 다시금 삭제되었다. 그리고 점차 험악해지는 안보 상황들은 군대에 대한 군인 엄마와 군인 애인과 군인 형제와 다른 시민들의 개입을 점차 차단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좀 지나면 군대는 시민의 통제권 바깥으로 가게 될 것이다.

    휴가 나오지 못하는 그대에게 위로를 전할 수밖에 없다. 다시금 거리를 활보하는 휴가 나온 군인들이 너무 많아져 그네들을 놀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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