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은 털리고 또 털릴 거다"
    By 나난
        2010년 12월 30일 10: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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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40년 전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시다 여공들의 고픈 배를 채웠던 청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거침없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그다. 그리고 그의 이름 뒤에는 자연스레 ‘열사’란 말이 따라 붙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엔 여전히 청년, 비정규직, 여성, 고령이란 이름으로 무수한 현대판 시다들이 존재하고 있다. 노동계는 “열사정신 계승”을 외치며 그가 몸소 실천한 ‘기득권을 버린 연대’를 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열사’라는 이름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에 <레디앙>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는 공동으로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2010년을 살아가는 각 세대와 현대판 시다들을 통해 ‘전태일’과 그의 ‘정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0대에서부터 50대까지 각 세대가 바라보는 ‘세대공감, 전태일’, 기륭전자, 동희오토 등으로 상징되는 비정규직 ‘현대판 시다와 전태일’, 다양한 세대를 통해 들어보는 ‘오늘 왜 전태일 정신이 필요한가’에 대한 시선 ‘전태일, 그리고’ 등 3가지 각기 다른 소재로 2010년 전태일을 만나보자. <편집자주>

    작년 겨울 <작은책> 강연회에서 이소선 선생님은 몇 번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 않고는 노동 문제 해법 없다”고 강조하셨다. “예전 시다들이 요즘은 다 비정규직인 거 아니냐”고, 몇 번씩 되풀이하시던 그 말을 생각하다가 해가 바뀌고 대학원 복학을 미룬 다음, 본격적인 비정규직 인생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비정규직 인생을 시작했다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인사이더는 못되는 비정규 인생이었으니 비정규‘직’ 인생을 시작했다고 굳이 말하긴 새삼스러운 감이 있으나, 나는 지난 사회생활 10년 동안 온통 키보드만 두드려서 먹고 살았다. 정규직 노동자로 사무실에서 일했던 적도 있고, 여기저기 글 써서 원고료 타먹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이지만 이 경우에는 특수고용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뭔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소크라테스도 아닌데 그냥 ‘뭔가 엄청 모르고 있구나’ 하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러다가 얼결에 기어들어간 2008년 여름의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그간 뭘 모르고 있었는지 조금씩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 년째 일하면서 조금씩 뭐가 이렇게 사람 목을 조르는지 그나마 알 것도 같고 말 것도 같다. 굳이 뭐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사람을 참 처참하게 취급한다는 거였다.

    사람이 죽을 만큼 굶으며 협상을 하자고 항의를 해도 마구 잘라도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너희는 애초에 경쟁에서 도태되었으니 협상은 무슨 협상 무슨 할 말이 있냐’고 참담하게 무시당하고, 또래나 후배들은 이력서를 쓰고 또 쓰면서 ‘내가 경쟁력이 없어서, 내가 열심히 안 했기에, 내가 더 노력하기 않았기’에, 하면서 참 열심히 산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수없이 제 탓을 했다. 이렇게 노력들을 하는데 어디까지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아예 무서웠다.

    사실 노력 좀 덜 하고 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 죽을 만큼 꼭 노력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노력 좀 덜하고 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대강대강 살 자유도 있는 게 자유 국가일 텐데, ‘신자유주의’에 들어 있는 ‘자유’라는 글자 안에 그 따위 자유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허용하는 자유는 죽도록 노력할 자유뿐이다.

    먹고 좀 살아 보겠다고 죽을 만큼 노력할 자유,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먹고 살 만큼 입에 들어오는 게 없어도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내 탓, 내 탓, 다 내 탓이로소이다 하며 더욱 노력할 자유, 그래도 안 된다면 다시 한 번 죽도록 노력하는 자유, 그것뿐이었다.

    신자유주의, 자유는 없다

    거기에 더하기 우리에게는 불만족할 자유가 있다. 먹고 사는 것 정도로 만족하는 건 신자유주의에 안 될 말씀, 자기 팔자에 대강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있어서야 신자유주의란 게 성립할 수 없으니, 내 자식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미증유의 수재라며 사교육비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속은 속대로 상할 자유, 돈 많이 번다는 친구 애인을 부러워할 자유, 부모님 빽으로 어디어디 취직한 친구를 부러워할 자유,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대강 뭐 이런 것뿐이다.

    이런 시대에 태일이가 ‘어려운 책을 읽고 싶은데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면, 일단 대학생 친구라고 해서 어려운 책 읽을 재주가 별 것 없는 건 둘째 치고, ‘어려운 책을 친구에게 읽어 달라고 하는 그 정신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스스로 공부해서 어려운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노력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시대니까,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서 요즘 재단사 하려면 CAD자격증 정도는 필수인데 너 그건 있냐’ 기타 등등,

    혹은 ‘굳이 대학생 친구가 필요하면 캠퍼스 근처에 가서 캔 커피라도 하나 사서 건네며 친구를 만들어 인맥관리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 또한 훌륭한 자기계발이기도 하다’, 혹은 ‘팔로우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 단 질문은 140자 이내여야 한다, 트위터 같은 편리한 소통의 도구를 손에 넣기만 하면 대학생 친구는 무슨 대학생 친구, 대학원생이거나 대학 교수 친구인들 안 생기겠느냐’, 뭐 이런 저런 훈수에 온통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는 건 비정규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막 대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일한다는, 그래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를 교체해서 그 자리에서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조용히 할 수밖에 없고, 네가 못났으니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지 않느냐는 시선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 잘 먹고 잘 살지 못할까봐 다들 겁에 질려서 누군가를 멸시하고 싶어 안달 난 세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딱 적당히 만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다.

    태일이가 바보회 친구들과 바보 되기를 자처하고, 굶주린 시다 소녀에게 풀빵을 사 준 이야기 같은 거야말로 40년 전 이야기다. 연대? 신촌에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실없는 농담이 나올 만큼 제일 무시당하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멸시하는 걸 보면 이젠 그냥 넘길 때도 됐건만 번번이 절망스럽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다

    ‘나는 형편이 안 좋아서 잠깐 일하는 것이지 너와는 다르다. 너는 그 모양 그 꼴로 평생 살 사람이니 같은 취급 하지 마라’,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내 자식은 이런 일 시키지 않을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모두 일하고 있지만 태일이가 누구에게 풀빵 사 주는 광경 같은 걸 봤다간 다들 아등바등 달려들어 태일이의 주머니 털고 다음 달 월급까지 저당 잡고야 말 것이다.

    ‘풀빵 먹고 나니 붕어빵이 먹고 싶다, 붕어빵 먹고 나니 잉어빵이 먹고 싶다, 잉어빵 먹고 나니 호빵도 먹고 싶다, 빵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이젠 목이 막혀서 시원한 거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하는 사람들에게 태일이는 털리고 털리고 또 털릴 것이다.

    ‘네가 남에게 빵을 먹이다니 먹고 살 만하니까 그러는구나, 그 빵 값 나를 다오. 내 자식 과외비를 하련다’, ‘남을 가엾게 여기는 바보로 살 여유가 있다니, 너는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정말로 바보구나, 오냐 내 배를 불려 다오’ 하면서 태일이가 스스로 죽기 전에 태일이를 죽이고야 말지도 모른다.

    ‘바보’ 태일이는 풀빵이든 뭐든 그가 가진 걸 먼지까지 다 털어가려 하는 사람들 등쌀에 어찌 견뎠을까. 만만하면 바로 등칠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고, 그럴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이 세계를 태일이라면, 어떻게 견뎠을까. 함부로 남에게 풀빵이라도 사줬다간 바로 사이다 값까지 털리고야 말 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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