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리반, 삼오진 방식으로 해주겠다"
        2010년 12월 28일 07: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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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7일, 주식회사 용산역세권개발이 용산구 일대 개발을 위해 매입한 토지를 담보로 1867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조달한 개발자금은 총 8422억 원. 삼성물산이 빠지겠다는 제스처를 보내면서 주춤했던 용산개발이 다시 날개를 달게 됐다.

    딱 그만큼, 철거에 몰린 용산주민들을 압박하는 발소리가 가까워진 것이다. 이날, 서울 고등법원은 용산역세권개발을 위해 철거된 용산 남일당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 의장에게 5년 형과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8422억 원의 개발자금과 5년 형의 차이에는 광활한 고요함마저 느껴진다.

    8442억원의 개발자금과 벌금 100만원 사이

    법이 뭔가. 개인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규제하는 무지막지한 도구이다. 따라서 법제도는 모든 개인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민주? 공화? 시장? 복지 말인가? 그렇지 않다. 태생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단어보다 법이 우선해야 하는 가치는 법이 힘을 행사하는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하지 않는 행위야말로 바로 그것이 법이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사례처럼 우리 법의 실상은 사람들을 더 황폐하고 두려운 곳으로 내모는 일을 비호하는 데에 오용된다. 이런 뉴스를 빤히 지켜보면서 이 사회에 ‘제도의 지배’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인가.

    전철연 의장의 실형 선고, 현대차 노동자에 대한 사상 최고액의 손해배상청구, 쌍용차 노조에 대한 메리츠 증권의 손해배상청구 등은 전문가들이 법제도를 마구 조합해 자기들의 무기로 사용한 사례들이다. 이제는 쉰내까지 풍기는 이런 상황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내기 전까지 정치자원을 독점했던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적인 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누렸던 방식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가.

       
      ▲용산 철거현장의 용역깡패들. ‘돌솥'(붉은 원)을 들고 있던 용역이 용산 철거민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휘두르고 있다.(사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2.

    이 쉰내 나는 “폭력적인 법”의 최전선을 달리는 상징은 무엇일까? 2주 전, 휴대폰에 다급한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삼오진 용역들이 두리반에 들이닥쳤다는 두리반 활동가의 메시지였다. 철거용역회사 삼오진건설의 사장 등이 찾아와 협상을 운운했다는 것. 이어 이들은 영업 중인 두리반을 파괴한 지 정확히 1년만인 12월 23일, 다시 두리반을 방문해 “12월 31일까지 자진해서 나가지 않으면 ‘삼오진의 방식’으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철거용역의 폭력행위를 풀어 묘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철거용역회사에 대한 분석은 2009년 위클리경향의 특집기사(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5&art_id=19316)에 잘 나와 있고, 철거폭력은 <비열한 거리>나 <짝패>, <똥파리> 등만 보아도 실감나게 나타나 있다. 철거민들의 관점에서 본 철거촌을 다룬 작품으로는 김동원 감독의 수작 <상계동 올림픽>도 있지 않은가.

    연간 200억 매출의 용역깡패 회사

    ‘주식회사 OO건설’이라는 표기가 어색할 만큼 ‘용역깡패’ 이미지로 자리 잡은 철거전문업체가 서비스하는 주요 용역은 원래 비계구조물과 같은 비장물(공사에 방해가 되거나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을 철거하는 일이다. 정부에 의해 재개발 구역이 선정되면 해당 지역의 건물소유주가 조합을 구성하고 시공사를 선정하는데, 대부분 철거업체도 이때 선정된다.

    이처럼 거대한 사업이권이 달린 구역재개발사업에 투입되는 철거업체는 상당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 구역재개발사업이 거의 전량 대기업 건설회사의 땅따먹기가 되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라 철거회사도 자연스레 대기업과 오랫동안 일한 철거회사로 정해지기 마련인데, 삼오진건설 역시 그간 왕십리 뉴타운이나 보문 3구역 등 GS건설이 시공사로 있는 재개발 지역의 철거를 도맡아 오면서 연간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려왔다.

    3.

    전 국민이 철거폭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회에서 철거업체의 사장이라는 사람의 방문을 받고도 위협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철거업체와 그 뒤에 자리 잡은 대기업 건설사의 포진을 알았다면 ‘삼오진만의 방식’이라는 말에서 야만의 전개를 예감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원래 강제철거는 행정집행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황당하게 공권력이 용역업체를 동원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 경우도 폭력이 발생한다면 관할기관인 구청과 법원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이외에 용역업체 직원들이 나타나는 경우는 건물주의 권한으로 건물을 경비하기 위해 용역업체들이 파견되는 경우인데, 이 경우 농성진압이나 강제퇴거는 명백한 폭행이다. 하지만 재벌과 정부의 행보에서 그러한 ‘원칙’이 맡은 일을 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주권자 권리행사는 극히 예외적인 순간

    철거용역이 철거를 ‘집행’할 때 발생하는 위기의 순간을 두고 관은 “건물소유자의 권한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철거현장에서 사람이 들려나오든, 쇠파이프 같은 흉기가 휘둘러지든 공권력은 철거회사의 용역 ‘서비스’를 제공받는 현장을 방치할 뿐이다. 가끔은 이 만행을 지켜보는 사람들로부터 집행을 보호하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철거당하는 사람들은 완벽한 법의 진공상태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 진공상태는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장악되며, 그들의 질서에 헌법의 권리를 소멸당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우리가 가진 제도는 우리에게 극히 한정된 순간에만 작용한다는 것. 즉, 권력이 예외상태를 통해 통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극히 예외적인 순간에만 제도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이 인간을 포위하고 구타한 후 무력으로 퇴거할 수 있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느니 국민이라느니 이런 말은 가당키나 한 것인가? 복지나 진보라는 말은 가능하긴 한 것일까? 이 오래된 정신분열을 그만두고 싶다면, “폭력적인 법”의 최전선인 ‘용역깡패와의 전쟁’부터 선포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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