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들의 복지 전쟁 시작됐다
        2010년 12월 24일 05: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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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복지’의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진보정당은 오래 전부터 ‘복지혁명’을 외치면서 이를 강조해왔으며, 최근 민주당도 ‘좌로 한클릭’ 하면서 ‘보편복지’를 들고 나왔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도 아버지 박정희 시대를 호명하면서 ‘복지’를 접합시키고 있다. 

    정파들의 복지 전쟁

    각 정파들이 복지의 기치를 휘날리고 있지만, 그 주장과 내용을 비교 평가할 만한 실한 알맹이들은 별로 없는 편이어서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정파도 ‘복지’ 담론을 피해가지 않는 것은, 피해 갈 수 없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향후 주요 선거에 ‘복지’는 판을 주도하는 의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불과 2년 전 총선 당시만 해도 시대를 지배한 것은 ‘개발’과 ‘성장’이었다. 한반도 대운하라는 토건발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뉴타운’ 광풍은 한나라당을 국회의 2/3를 차지하는 공룡 여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복지’가 ‘개발’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복지를 강조해왔던 진보정당들은 물론, 민주당은 아예 당 강령을 ‘중도개혁’에서 ‘복지국가’로 바꾸었으며, 대표적 성장론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박근혜 복지-한국형 복지’를 들고 대권행보를 시작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 역시 22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에 들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1년도 예산안 속에 복지가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야권으로부터 쏟아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으로서도 이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4대강 개발의 ‘총수’인 그 역시 언술 차원에서나마 ‘복지’를 강조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복지담론의 확장은 사회적으로 복지에 대한 수요 증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는 “이제 어느 정치인도 복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복지가 예전처럼 용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책적으로도 우선순위가 될 수 있는 기반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복지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복지국가’를 주장한다고 해서 이들의 복지론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각 정당,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복지의 형태에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 차이를 놓고 ‘복지국가’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복지와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는 서로 다르며,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도 차이는 드러난다. 

    우선 가장 차이점은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다. 그리고 이 차이점의 최전선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무상급식’ 논란이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야권의 무상급식 공약이 대중적으로 설득력을 얻어가면서 한나라당 측에서는 이것을 두고 “부자들에게도 무상급식을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최근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을 예산안에 반영시켰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언론매체 광고를 통해 보편적 복지인 무상급식을 비판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차등적으로 복지를 적용하는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언급할 만큼 구체적인 복지정책의 내용을 들고 나오지는 않은 상태다. 박 전 대표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들고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박 전 대표의 복지국가론은 선별적 복지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일관되게 밀어붙여왔던 ‘따뜻한 보수’ 이미지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출발선상에서 동등한 기회를 주는 ‘사회투자국가’ 정도의 담론으로 보이며, 그것으로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기회의 균등을 만들기 위해 ‘지원’ 수준에 머무르는 복지론으로는 현재 위기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국가 시스템 자체를 복지와 성장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복지’는 립서비스

    심상정 진보신당 고문도 23일 라디오 전화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복지누수를 말했는데, 당연히 복지누수는 막아야 하지만 우리나라 복지 현실에서 과연 누수가 핵심 과제냐에는 견해가 다르다”며 “우리 복지현실이 취약해 당장 혜택을 못 받는 사각지대 너무 많은 것이 핵심으로, 누수보다는 복지재원 자체가 너무 작은 것이 문제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복지국가’는 그나마 이런 수준의 평가도 받기 어렵다. 영유아 무상 예방접종 등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등 기존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축소-조정에 나선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복지국가를 언급하는 것은 단지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의 여론을 의식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정부가 주장하는 복지예산은 보금자리 주택 등에 대한 건설비용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상이 대표는 “토목 관련 사업을 복지예산으로 분류하는 국가는 없다”며 “통계 자체가 왜곡된 것이며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OECD에서 우리 복지 예산은 최하위 수준이란 사실은 변함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무상급식 외 복지정책을 제시한 바 없어 민주당의 복지를 정확히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기철 교수는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당론으로 내세웠지만 그 내용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고문도 2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박 전 대표의 복지론에 대해 “철학, 비전, 대안이 없는 빈수레 같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지적에 일면 공감대는 있지만 그 수레나 그 수레나 비슷한 수레들”이라며 “민주당의 그간 내놓았던 특히 복지대책과 박근혜 의원의 복지대책이 도토리 키재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 재원 마련 구체안 제시 못해

    현재 모두가 복지를 언급하는 상황에서 복지국가의 진정성을 척도 할 수 있는 기준은 ‘재원마련’ 문제다. 부자감세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역시 ‘부자감세 철회’만 주장할 뿐, 재원마련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법인세, 소득세 증세법안을 마련한 상태이며 진보신당은 사회복지세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심상정 고문은 “복지는 한마디로 재정이며 재정은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며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복지를 거스르는 정책에 매진했고 박 전 대표도 감세정책을 관철시켜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심재철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역시 24일 <CBS>라디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론에 대해 “복지를 얘기할 때는 그 돈을 어디서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이냐를 반드시 따져 같이 움직여야 한다”며 “세금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주겠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진보신당은 복지국가의 기틀을 위해 ‘노동’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21일 정책논평을 통해 “비정규직 850만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는 현재 사회양극화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으로, 사회복지정책을 잘 제시해도, 경제정책과 상호보완이 없으면 사회양극화 문제 해결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고문도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정책의 경우)주 내용이 출산, 양육인데 더 중요한 고용, 과학, 교육 문제는 빠졌다”며 “사회양극화를 완화시킴으로써 복지수요를 줄이는 게 더 중요한 만큼 고용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야 하는데 이번에 전혀 대안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상이 대표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강하니 정치가 움직이는 것”이라며 “우리 나라 경제구조가 복지의 과소 때문에 생산적인 발전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수준에 맞는 복지 포지션을 갖추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면적 사회복지를 통해 국민들의 삶의 부담과 불안을 해소해주는 시스템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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